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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가구의 윤회





원목 재활용 통한 디자인 실험 ‘업사이클링 가구’



헌 가구는 ‘문화로놀이짱’ 공장에서 해체돼 새로운 디자인의 가구로 다시 태어난다. 하영호(43) 공장장이 나무를 깎고 있다.





‘업사이클링’이 최근 디자인 업계의 화두다. 업사이클링은 재활용(리사이클링)을 업그레이드했다는 뜻이다. 헌 물건을 다시 쓰기보다 이를 재료 삼아 아예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의 제품을 만드는 걸 말한다. 국내외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영국의 실험적 디자인 전시회인 ‘디자이너스블록’ ‘런던안티디자인축제’ 등에 업사이클링 가구가 대거 등장하고 스위스 가방업체 ‘프라이탁’은 방수 천·폐타이어 등에서 나온 자재로 가방을 만들어 한 해 수만 개를 판매한다. 국내에서는 업사이클링 의류·가방 등이 젊은이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널리 알려졌다. 요즘은 업사이클링 가구를 만드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공방을 만들어 헌 가구만 뜯어 새 가구를 만드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이도 있고, 옛 느낌 물씬 나는 작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도 있다. 그들이 만드는 업사이클링 가구를 보고 왔다.



글=이정봉 기자 ,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구 네 개 해체하면 새로운 제품 하나









헌 문짝으로 만든 수납장(左). 하지훈 교수가 철거된 카페의 목재를 수거해 만든 테이블과 벤치.(右)





2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임시주차장 안 낡은 벽돌 건물 앞에 헌 가구 4개를 실은 1t 트럭이 도착했다. “와, 이런 걸 어디서 구했대?” “여기 봐, 열쇠 구멍도 있네” 대여섯 명의 젊은이가 낡은 책장·책상을 둘러싸고 환호했다. 일식 주방장이 싱싱한 횟감을 보듯 눈빛이 반짝였다.



이들은 사회적 기업 ‘문화로놀이짱’의 직원들이다. 이 업체는 헌 가구를 수거해 와 해체한 뒤 다시 새로운 디자인의 가구를 짜는 일을 한다. 가구 업사이클링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가구를 ‘1/4 하우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네 집의 가구를 해체하면 한 집에서 쓸 만한 새로운 가구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손상된 부분을 손질하고 서로 다른 형태의 가구의 부분끼리 짜맞춰야 하므로 새 디자인의 가구로 완성하기까지 품이 많이 든다. 가구 하나를 만드는 데 보통 일주일 걸린다. 이렇게 만든 가구는 4인용 식탁이 35만~45만원, 의자는 10만~15만원이다. 가구는 모두 원목으로 만든다. 가구를 수거할 때부터 원목 가구만 받는다. PB(particle board)·MDF(middle density fiber) 등 가공 목재로 만든 가구는 자르고 다듬을 때 속에 있던 유해물질이 나온다. 원목으로 만들기에 품질은 나무랄 데 없는 편이다. 이곳에서 만든 가구의 모양은 단순했지만 오랜 세월에서 우러져 나온 은근한 향을 풍겼다.



안연정(33) 대표는 “생활 폐목재의 경우 3% 정도만 재활용된다”며 “일반인들도 폐목재로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를 쉽게 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안 대표와 함께 일하는 목수들은 홍대 인근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다.



업사이클링 가구 디자인이 특출난 것은 아니다. 대신 가구에는 다리 한 짝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해체한 가구에는 이를 수거해 온 곳과 폐기된 이유 등을 기록해 둔다. 새롭게 만들어진 하나의 가구에는 목재들이 각각 거쳐온 삶의 궤적이 녹아 있다. 젊은 예술가 집단답게 반짝이는 아이디어도 엿보였다. 최근에는 가구를 만들고 남은 자재를 다듬어 아이패드용 거치대를 만들기도 했다. 아이패드를 올려놓아도 안정감이 있었고 모양도 깜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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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재료는 없다









새 가구로 환생한 헌 가구에는 옛흔적이 남아 있다.



계원디자인예술대 가구조형학과 하지훈(39) 교수는 지난해 가을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카페가 철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카페를 뜯자 목재 바닥재와 인테리어로 쓰던 한옥 통나무 등이 나왔다. 그냥 버려질 운명의 자재다. 하 교수는 이 자재들을 가져가 가구를 만들기로 했다.



하 교수는 통나무를 다듬고 목재를 깎아 근사한 테이블과 벤치를 만들었다. 세월의 향기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다리 모양을 바꾸지 않았고 표면의 거친 질감을 깨끗이 마감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 나쁜 재료는 하나도 없다”며 “단지 나쁜 디자인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벤치는 한 백화점에 전시해 팔렸고, 벤치는 그가 집에서 쓰고 있다.



업사이클링에 뛰어드는 디자이너들도 늘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환경을 살리는 기술’로 각광받고 있지만, 디자이너들이 나서는 데는 따로 이유가 있다. 디자이너들은 쓸모없는 재료로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예술가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별거 아니지만 자신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어한다”며 “도전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재범(29) 디자이너는 지난해 홍익대에서 폐기하기로 했던 도서관 의자를 수거했다. 1979년부터 썼던 의자는 일부는 부서졌고, 조립 부분이 헐거워 삐걱댔다. 그는 의자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 망가진 부분만 손을 봤다. 대신 옻칠을 하는 강희정 작가가 의자 바탕에 색을 입히고 옻칠을 해 모던한 느낌을 살려냈다. 유럽의 어느 집 식탁에 둬도 어색하지 않을 법했다. 정 디자이너는 작업을 연장해 전남 순천 성남초등학교의 버려진 의자의 철골 부분만 따로 떼어낸 뒤 용접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철제 의자를 만들기도 했다.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장인기 과장은 “국내 업사이클링 가구는 아직 시작 단계”라며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차츰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국내에도 조만간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디자이너의 작품들은 서울 인사동 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전시·판매되고 있다.





업사이클링 옷·가방·액세서리











업사이클링은 패션·액세서리 분야에 적용되면서 국내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해진 옷, 떨어진 가죽 소파, 철거된 현수막 등을 수거해 옷·가방·액세서리를 만드는 업체들이 생겨나면서부터다. 버려지는 것을 알뜰하게 챙겨 쓰는 ‘착한’ 업체들인 줄로만 알기 쉽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의 디자인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헌 소재로 만들지만 가격은 싸지 않은 편이다. 수거해 온 소재를 일일이 손으로 해체·재가공해야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연예인에게 업사이클링 의류를 협찬하기도 한다. 2009년에는 탤런트 이민호, 지난해에는 에픽하이가 업사이클링 업체 ‘리블랭크’의 옷을 입었다. 리블랭크는 헌 천·현수막·가죽 등으로 옷·가방 등을 만드는 사회적 기업이다. 서울 삼청동, 신사동 등의 편집 패션매장에서 살 수 있다. 가격은 수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다양하다.



 ‘에코 파티 메아리’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업사이클링 업체로 꼽힌다. 재활용품을 사고파는 ‘아름다운 가게’가 너무 낡아 버릴 수밖에 없는 제품을 다시 활용하기 위해 2006년 만들었다. 2007년 아동복을 활용해 만든 고릴라 인형 ‘릴라씨(사진)’가 히트를 쳤다. 에코 파티 메아리의 황용운 간사는 “자식한테는 새 옷을 입히고 싶은 엄마의 마음 때문에 아동복은 유난히 재활용률이 떨어지는데, 소재 자체가 워낙 좋아 버리기 아까워 인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방수천·가죽 등의 소재로 가방을 만드는데 5만~15만원에 판다. 서울 인사동에 매장이 있다. ‘터치포굿’에서도 기업·학교 등에서 버리는 현수막·광고판을 수거해 가방을 만든다. 가격은 3만~7만원. 서울대·연세대·홍익대 앞에 매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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