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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약동 느껴지는 순간 삶의 아름다움 찾았다”

천장 조명이 어두운 무대 한구석을 둥글게 비춘다. 수동 타자기가 놓인 간이책상, 접이식 의자, 악보대가 주황빛 불빛 아래 드러난다. 27일 오전 9시, 서울 이화여대 음악대학 지하 리사이틀홀. 진화심리학자를 시작으로 작곡가·천문학자·시인·디자이너·건축가·화학자·풍수학자·화가·무용가·사진가가 차례로 단상에 올랐다. 아무리 봐도 공통점을 찾기 힘든 인물들이다. 한 가지는 있다. 길게는 50년, 짧아도 20년 세월을 통해 각 분야 최고의 경지에 이른 ‘명사’들이다. 이들이 이날 ‘인생의 아름다움’을 논하기 위해서 모였다. 굳이 정리하자면 대가(大家)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의 통섭이다. 11명의 발표자 모두가 전공이 다른 학술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행사는 ‘통섭(consilience, 統攝)의 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가 마련했다. 아름다움을 논하는 자리였지만, 미(美) 자체를 학문의 대상으로 연구하는 미학자는 초대되지 않았다. 최 교수는 “미학자를 부르지 않은 건 아름다움을 학문으로 논할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전 원고도 없었다. 최 교수는 “육성으로 참석자들이 말하는 추구·성과·좌절·혜안·득도 등에 대해 들으며 청중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아름다움에 대해 정리해 보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의 주제인 아름다움에 대한 대가들의 해석은 다채로웠다. 공통점도 있었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배틀(battle)’을 하는 게이머 같았다.

첫 발표자인 진화심리학자 전중환(42) 교수는 아름다움을 진화론으로 해석했다. 그는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을 배회했던 잡식성 영장류의 적합도를 증가시켰던 것들”이라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역임한 작곡가 이건용(64) 교수는 남도의 산하를 굽이쳐 도는 섬진강 사진과 함께 태평소 소리를 들려줬다. 그는 “내겐 아름다운 사물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체험한 순간이 존재한다. 일상에서 벗어난 순간, 삶의 대책 없는 슬픔과 약동이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외나로도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 원장인 홍승수(67) 서울대 명예교수는 소년 시절 만났던 무지개를, 민현식(65) 한예종 건축과 교수는 ‘바람과 햇빛에 끊임없이 출렁이는 나뭇잎의 물살’을 노래했다. ‘생 춤’의 무용가 김현자(64)씨는 구도의 경지로 치닫는 춤을 얘기하며 “변화하는 것만이 실로 아름답고, 변화함으로 해서 다시 생기를 얻는 것은 아름답다”고 역설했다. 무대엔 변화의 상징으로 얼음덩이를 올려놨다.

시인 김혜순(56)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대형 화면 한가운데 귀(耳)를 띄워놓고 산문시 같은 원고를 읽어내렸다. 하루 종일 소리의 고문에 시달리는 시인의 귀를 얘기하며 “투명하게 고요한 침묵을 그리워한다. 나는 밖의 소리로부터 버림받고 안의 소리를 얻는다. 침묵의 음악을 듣고 시의 건축이 자란다”며 아름다움의 순간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오전 9시부터 시작한 행사는 오후 6시30분까지 이어졌다.

최재천 교수는 “아름다움은 전형적인 통섭형 주제”라며 “이보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주제는 쉽지 않다”고 정리했다. 11명의 발표자를 관통하는 아름다움의 개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흐릿하게나마 잡히는 게 있다면 변화하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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