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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검사들, 가정 포기하고 일한다? 그렇게 못났나”

여성운동에 평생을 헌신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페미니즘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전 세계 여성운동계의 ‘왕언니’ 글로리아 스타이넘(77)은 예쁘고 유쾌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농담을 즐기며 매력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 웃음엔 뼈가 있다. 스타이넘이 누군가. 1960년대부터 인종 및 남녀 차별 철폐 운동에 앞장서온 페미니즘계의 스타이자 산증인이다. 뉴욕 타임스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스럽다(Gloria Steinemesque)’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그가 1971년 공동 창간한 잡지 ‘미즈(Ms.)’는 여성을 결혼 유무에 따라 ‘미스(Miss)’와 ‘미세스(Mrs.)’로 나눴던 차별을 부숴버렸다. 오늘날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엔 니카라과에서 인도까지 각지의 남녀 팬들이 남긴 ‘당신은 내 인생의 멘토’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가득하다. SBS 주최 서울 디지털 포럼 참석차 방한한 그를 단독 인터뷰했다.

-한국의 검찰총장이 “남자 검사는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집안일을 포기하고 일하는데, 여자 검사는 애가 아프다고 하면 일을 포기하고 애를 보러 간다”고 발언했다.
“한국의 남자 검사들이 못났다고 광고하는 발언 아닌가. 검사는 정의 구현의 선봉에 서는 존재다. 인생의 기본 터전인 가정을 등한시해야만 일을 잘할 수 있는 존재들이 과연 그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 아니다. 가정을 포기하는 건 기본적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거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균형이다. 그리고 그 균형은 남녀가 함께 맞춰야 한다. 한국에선 검찰총장이 선출직인가 지명직인가?”

-대통령 지명직이다.
“그럼 지금이라도 시민들이 탄원서를 넣어 의사 표시를 해야 하지 않겠나. 불평만 해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어떤 일에 대해 분노를 느낄 때, 그 분노를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바람직한 변화가 가능하다. ‘화’를 나 홀로 속으로 삭히면 혼자 우울증만 걸릴 뿐이다. 자신의 분노를 다른 이와 나누고 연대해야 사회 변혁은 가능하다.”

-‘일하는 엄마들’이 큰 화두가 됐다.
“한국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육아 부담은 두 배, 가사 부담은 세 배에 달한다고 하더라. 여성이 직장과 가정이라는 두 개의 일터에서 모든 부담을 지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한국 여성들이 ‘출산 파업(baby strike)’을 하고 있는 건 당연하다. 내가 만난 한국여성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열정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괜히 그럴 이유가 없다. 여자는 하인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남녀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육아·가사)을 남자들은 못 한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그렇게 프로그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어떤 여성은 아이를 낳은 후 육아 부담을 견딜 수 없어 한 달간 가출을 했다. 돌아와보니 남편이 아기를 아주 잘 돌보고 있더란다(웃음). 모성애가 더 강하다는 믿음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연구 결과도 이미 나왔다.”

-남자들은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그 점부터 잘못됐다. ‘도와준다’는 건 원래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 선의로 남의 일을 해준다는 의미다.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육아와 가사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국가의 미래도 밝다.”

-한국에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란 인식이 있었는데 많이 달라졌다.
“(웃으며) 결국 중요한 건 ‘땅’이지 않나. 먹을 것을 경작하는 곳도,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곳도 이 ‘땅’이다.”

-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도 있는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만들어낸 웃기지도 않는 말이다. 여성은 천성적으로 남들과 공감하길 원하고 협력을 추구하는 존재다.”

-하지만 본인에게도 ‘적’이었던 다른 여성들이 있었을 것 아닌가.
“물론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난 어려서부터 엄마를 돌보면서 어찌 보면 ‘엄마에게 엄마 노릇을 하며’ 자라왔다. 이혼한 엄마가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우울증까지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여성을 돌보는 존재’라고 자신을 규정하며 자랐고, 이것이 다른 페미니스트들과도 충돌하는 경우가 있었다.”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너무 착했던 게 후회된다’고 했던데.
“지금도 그렇다. 70년대, 80년대엔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일은 잔뜩 해놓고 (미국) 민주당에 최종 결정을 맡기는 식이었다. ‘아빠에게 의지한 성실한 딸’이었던 셈이다. 좀 더 직접적인 하나의 정치 세력으로서 대중과 호흡했으면 좋았을 거다. 하지만 차별 철폐 운동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돌처럼 단단한 차별을 없애려면 힘을 모아 조금씩 그 돌을 쪼아내는 수밖엔 없다. 때론 회의감도 들겠지만, 나를 믿어라. 변화는 온다.”

- ‘얼굴도 예쁜 페미니스트’라고 인식이 되어 있다. 플레이보이 클럽의 ‘바니걸’로 위장취업해 쓴 폭로 기사로 유명했었다. 지금도 멋진 스타일이 눈에 띈다.
“여성이 아직도 자신의 마음이나 머리가 아닌 외모로 평가받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어떤 신문사 편집국에선 나를 보고 ‘멍청한 금발머리는 필요없다’고 퇴짜를 놓은 적도 있다. 여성에게 외모는 무기이면서 한계다. 하지만 나는 아름다움이 좋다. 나 스스로를 치장하는 것도 좋아한다. 패션과 스타일은 다르다. 패션이 브랜드 중심의 세계라면 스타일을 지킨다는 건 나를 표현하는 일이니까.”

-지금도 올해가 77세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비밀이 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답변이 너무 평범한가(웃음). 페미니스트들이 (남자들 관점에서지만) 못생기고 자신을 가꿀 생각은 안 하고 진지한 괴물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페미니스트로서 난 신나고 즐겁고 행복하게 일해왔다. 훌륭한 애인도 여럿 있었고, 그들은 지금 나의 친구들이기도 하다.”

-왜 페미니스트를 두려워할까.
“남성들이 찔리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인종차별도 백인들이 ‘흑인들을 내버려두면 결국 우리를 몰아내고 억압할 것’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존재했다.”

-결혼 제도에 비판적이다가 2000년 데이비드 베일(‘다크 나이트’ 영화배우 크리스천 베일의 아버지)과 결혼해 충격을 줬다.
“난 데이비드를 ‘남편’이 아니라 ‘내가 결혼한 친구’라고 불렀다. 당시 데이비드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미국 영주권이 필요했고 뇌임파종을 앓고 있었다. 결혼으로 영주권은 물론 건강보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 결정이었다. 그는 2003년 사망했지만 우린 서로를 존중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렸다. 물론 결혼 전에 불행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난 결혼 전에도 행복했다. 지금도 그렇고.”

-유방암 투병을 하기도 했는데.
“선고를 받는 순간 들었던 생각은 ‘지금까지의 인생, 참 좋았다’였다.”

-소원이 있다면.
“언젠가 대학 캠퍼스에서 이런 대화가 들려오는 것. 나이 지긋한 교수가 ‘옛날엔 피부의 멜라닌 색소량이라든가 타고난 성별에 의한 차별이 있었단다’라고 하면 남녀 학생 모두가 ‘에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구석기 시대가 어디 있어요?’라며 웃는 거다. 그리고 더 이상 페미니즘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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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