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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파리서 만난 한국 친구 이별 아쉬워하는 한시 써줘 감동

미국과 함께 G2(미국+중국) 시대를 열고 있는 중국은 요즘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중심엔 ‘중국 국가한판(國家漢辦)’이 있다. 국가한판을 7년째 맡고 있는 쉬린(許琳·56·사진) 주임은 소프트파워 보급의 사령탑이다. 그는 2006년 설립된 공자학원(孔子學院)본부 총간사도 겸임해왔다. 그는 매일 10~15시간 일하는 ‘철낭자(鐵娘子·철의 여인)’다. 산시(山西)성 출신인 그는 16세부터 3년간 자전거공장 노동자로 일하다 상하이 푸단(復旦)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교육행정 관료로 일해왔다. 쉬 주임은 대구 계명대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공자학원 연구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3박4일간 방한했다. 이 행사에는 아시아 지역 공자학원 60여 곳에서 일하는 중국 측 실무책임자 170여 명이 참석했다. 28일 오전 대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도 600여 년 전부터 유교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배울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인가.
첫째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이다. 다른 하나는 ‘화합이 가장 중요하다(和爲貴)’는 것이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다투지 않고 내 의견을 보류하는 거다. ‘和’는 ‘웃는 얼굴이 부를 가져다 준다(和氣生財)’고 말할 때도 쓰인다. ‘和’는 다른 면으로 봤을 땐 중용이다.

-북한에는 공자학원이 몇 곳이나 개설됐는가. 쉬 주임은 중국 언론 인터뷰에서 2020년까지 공자학원 숫자를 1300개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북한에는 공자학원이 단 한 곳도 없다. 우리에겐 어느 나라로부터 공자학원 개설 요청을 받아야 공자학원을 설립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러나 북한은 요청한 적이 없다. 우리는 공자학원과 공자학당(課堂)을 운영하는데, 공자학당은 초등·중학교 교과목을 가르치고 공자학원은 각 대학에 설립한다. 현재 101개 국가·지역에 공자학원 340개, 공자학당 400여 개가 설치돼 있다. 한국에는 17개 대학에 공자학원이 있다. 문제는 전 세계 400여 곳에서 공자학원 개설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업무가 벅찰 지경이어서 숨 돌릴 틈이 필요하다.”

-중국 정부는 2003년부터 ‘조화사회’를 표방하며 충(忠)·효(孝) 같은 유교적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 사회에서 유교 이념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인민 생활의 질은 많이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가치관 또는 인생 목표는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다. 내가 1983~84년 파리 유네스코에서 연수할 때 한국 친구들이 입던 양복과 펜·시계 같은 것이 좋아보였다. ‘중국은 언제 한국처럼 될 수 있을까’ ‘우리도 빨리 한국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에겐 그런 목표의식이 없다. 그들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무엇인지 가르칠 필요가 있다. 2500여 년 전에 형성된 공자사상은 중국 윤리관념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중국인의 피 속에 흐르는 DNA를 작동시켜 충과 효를 가르치려 한다.

-중국어 학습 열기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중국어 학습자는 얼마나 되나.
최소한 4000만 명쯤 된다. 화교 인구가 3600만 명인 데다 각급 학교나 공자학원 등에서 배우는 사람까지 합치면 5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중국 정부는 중국어 공인시험으로 비즈니스 중국어 시험(BCT)과 신HSK를 운용하고 있다. BCT는 기업 현장의 언어를, 신HSK는 중국 유학·연수를 가려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앞으로 둘을 어떻게 차별화해 나갈 것인가.
신HSK는 구HSK와 비교할 때 난이도를 많이 낮추었다. 예전엔 문제가 너무 어려워 내가 시험을 봐도 좋은 성적을 못 낼 정도였다. BCT 같은 경우엔 비즈니스맨이 물건값을 흥정하고, 은행 대출을 받을 때 필요한 내용 등을 측정하면 된다. 하지만 시험을 돈을 찍어내듯 상품화하고 싶지 않다. 올 하반기에 BCT 역시 난이도를 재정비한 뒤 중국 대학들에 입학기준 채택을 권할 작정이다. 특히 경제·경영 분야를 공부하려는 학생에게 BCT 성적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40여 년간 일과 가정을 성공적으로 꾸려온 비결은 뭔가.
“나는 두 가지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일로 성공했다면 하루 8시간만 일했어야 했다.(웃음) 가정에서도 그렇다. 대학 동기인 남편은 인공위성 관련 엔지니어인데, 결혼 첫날부터 지금까지 불평·불만이 많다. 하지만 다툴 때 다투지만 행복하게 잘 지내는 편이다. 가끔 일요일에 내가 집에 있으면 오히려 남편이 ‘왜 밖에 안 나가느냐’고 묻는다. 아들은 은행에 다닌다. 내가 정부 쪽에서 일하라고 권했지만 ‘월급이 적다’며 거부하더라.

-중국의 여권(女權)은 한국에 비해 아주 강한 편이다. 한국 여성에게 충고할 말이 있다면.
사실 난 한국 여성처럼 살고 싶다. 여자라면 누구나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욕심이 있다. 중국 남성들은 한국·일본 여성 같은 부드러운 여성상을 원한다. 현대 여성이라면 일과 가정을 겸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성은 가정을 관리해본 경험이 있어 남성보다 더 세심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가 ‘먼 곳을 보지 못하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 근심거리가 생긴다(人無遠慮必有近憂)’고 말한 것처럼 눈앞의 일만 생각하다간 곤란해진다.

-쉬 주임은 이번에 세 번째로 방한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80년대 파리 연수 당시, 한국 친구 두 명이 있었다. 한·중 수교가 되지 않았을 때다. 그중 한국 교육부에서 나온 친구는 헤어질 때 중국 시 한 편을 써줬다. 북송시대 이지의(李之儀)가 쓴 시구였다. ‘나는 장강 위에서 살고, 그대는 장강 밑에서 사네. 날마다 그대 생각하나 보지 못하고, 장강의 물만 함께 마시네(我住長江頭 君在長江尾 日日思君不見君 同飮一江水)’라는 글이었다. 너무 감동적이어서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됐다. 한국엔 2005년 처음 와봤다. 백화점 구경을 하면서 옷값이 너무 비싸다고 느꼈다. 두 번째 땐 부산에 갔다. 중·한 사이엔 아직 환경·교육·문화 등 다방면에서 차이가 크다. 특히 한국에선 사람과 환경이 조화롭게 관리돼 인상적이다. 대구에 와서 숨을 내쉴 때 폐가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대구 계명대에 오니 마치 친척을 맞이하듯 환대해 주었다. 한국이 중국보다 오히려 유교 문화를 더 잘 계승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 ‘겨울연가’에서 봤던 제주도는 너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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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