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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의 ‘마음아 아프지마’] ‘자식 잘되는 게 인생 목표였어요 …’

어느 날 한 40대 후반 여성이 클리닉을 방문했다. 첫 정신과 방문이었는지 다소 긴장해 있던 그녀와의 대화다.

 “만사가 귀찮아요. 외롭고 허전하고요.” “인생의 목표가 뭐예요?” “자녀가 잘되는 것이었어요.” “왜 과거형으로 대답하세요?” “정말 딸이 잘되는 게 제 인생의 목표였어요. 최선을 다했고요. 특목고도 가고 곧장 미국 명문대도 들어갔어요.” “그럼 좋지 않으세요? 따님과 동일시를 하신 듯해요.” “맞아요. 동일시했어요. 그런데 막상 좋은 대학 들어가니 주변의 평가는 ‘딸이 똑똑해서 알아서 간 것 아니냐’는 거예요. 게다가 딸이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는데 엄마를 일류병 걸린 속물 취급하는 거예요. 너무 섭섭하지만 얘기할 수도 없고 가슴이 텅 빈 것 같아요.”

 마음이 아팠다. “새로운 인생 목표를 세워보자”고 조언한 뒤 다음 진료시간을 잡았다. 그녀는 자녀에게 올인해 일류 대학은 얻었으나 자녀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 듯했다. 자신의 인생 목표인 자녀와 심리적 이혼을 할 때 느끼는 고독감, 이른바 ‘빈 둥지 증후군’에 빠진 것이다. ‘자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누가 봐도 아름다운 모성의 모습이나 삶의 공허로 끝을 맺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래 진료를 마친 뒤 필자가 주관하는 중앙자살예방센터 미디어위원회 첫 회의에 참석했다. 남성 중견 언론인들이 참석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대화가 오갔다. “나도 무엇이 옳은 삶의 방향인지 모르겠는데 자녀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공부 얘기만 하고 자녀와 부모 간에 진솔한 대화가 없으니 전문기관에서 그 부분을 대체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1980년대 국제학회에서 애완동물을 반려동물로 격상한 선언문이 생각났다. ‘인간이 순수함을 잃어 인간이 전달할 순수함을 대신 전달하는 애완동물을 반려동물로 승격한다’. 요즘 해외에선 반려 로봇까지 나왔다. 자식에게 실망한 치매 노인들이 한결같은 반응을 보이는 반려로봇에 위로를 받고 그 로봇이 고장 나면 상실감까지 느낀다고 한다. 인간끼리 순수함을 전달할 수 없어 애완견과 로봇이 대신한다는 슬픈 이야기다.

 세리 터클 MIT 교수는 반려로봇이 인간과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 관계의 발전이 상대방의 지능이나 의식보다 시선 맞추기와 같은 단순한 호응 반응에 근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철학적 동질감보다 반사 수준의 공감에서 더 친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자존심 상하긴 하지만 부모-자녀 사이의 대화에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아닐 수 없다.

 부모와 자녀는 가치관이 매우 다른 시기를 함께 보낸다. 청소년 자녀들은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며 매우 철학적인 가치관을 가진다. 이에 비해 부모는 생존을 위해 달려가야 하기에 매우 실용적인 가치관에 빠져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가치관적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녀의 생존과 번영을 향한, 희생적 모성애에 뿌리를 둔, 어머니의 실용적 가치관이 자녀의 눈에는 일류병에 빠진 속물의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는 이유다. 바빠서 얼굴 보기도 어려운 데다 지시적 어투만 구사하는 아버지에게 속내를 털어놓기 또한 어렵다.

 상이한 가치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호응과 공감에서 찾을 수 있는데, ‘열린 질문(open question)’과 ‘반향적 경청(reflective listening)’이 있다. 의사가 “계속 담배 피우면 오래 못 산다”는 식으로 잔뜩 겁주며 말하는 지시적 접근은 오히려 담배를 더 피우게 하는 역효과를 내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 아실 텐데 끊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같은 열린 질문이 공감에 기반한 동기 부여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공부해”가 아닌 “공부하기 힘들지, 왜 힘들며 공부해야 할까”가 열린 질문이다. 반향적 경청은 자녀가 하는 이야기를 잘 이해하고 표현 이면에 담긴 의미를 끄집어내 되돌려 줌으로써 공감을 강화하는 것이다. 중간에 말을 끊고 부모의 의견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 “네 말 알겠는데 세상이 그런 게 아니야”라기보단 “그렇다면 네 말은 엄마, 아빠들이 자녀들의 복잡한 마음과 상황을 잘 모르고 너무 밀어붙이기만 한다는 뜻이구나, 맞아” 하는 것이 반향적 경청이다. 열린 질문과 경청만 잘해도 자녀들에게 ‘우리 부모는 나와 통한다’는 일류 부모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한 가지, 최소한 일 년은 이런 대화를 해야 자녀가 마음을 연다는 것. 사랑도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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