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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그루밍해 주다 손가락을 물릴 수도 있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인간의 언어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수렵, 목축 같은 생산활동을 위한 필요에서 언어가 탄생했다는 게 일반적 정설입니다. 사냥감을 발견했거나 위험을 알리는 신호가 필요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옥스퍼드대 인류학과 로빈 던바 교수 같은 이는 다른 주장을 합니다. 인간의 언어가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영장류의 털 손질이 발전한 결과물이라는 거지요.

 던바 교수는 침팬지나 고릴라들끼리 서로 털을 골라주고 이를 잡아주는 그루밍(grooming)에 주목했습니다. 그것이 위생상 필요해서라기보다는 기분 좋은 신체 접촉을 통해 집단의 친밀성을 키우고 유지하는 게 주목적이라는 거지요. 그런데 영장류 집단의 개체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그루밍으로 집단의 친밀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성대를 사용해 의사전달을 하는 방법을 창안해 냈고 그것이 언어로 발전했다는 결론입니다.

 그 다음 얘기도 재미있습니다. 털 손질 대신 만들어낸 최초의 언어는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집단의 친밀감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만큼 처음의 언어는 대부분 집단 속의 ‘남 얘기’였다고 던바 교수는 설명합니다. 그런 기능이 쭉 이어져 오늘날에도 인간들의 대화는 결국 남에 대한 잡담, 즉 가십(gossip)이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던바 교수의 이 같은 주장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 이용자들의 행태를 살펴볼 때 더욱 설득력을 갖습니다. 얼핏 쓸모없어 보이고 때론 공허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SNS에 현대인들이 그처럼 열광하는 것은 우리의 DNA에 남아 있는 사회적 그루밍의 아련한 추억 때문이 아닐까요? 자기 얘기도 아니고 책이나 신문·잡지에서 본 명언 명구들을 부지런히 퍼나르는가 하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대체로 유명인- 이름으로 그 사람이 한 얘기나 할 법한 얘기들을 지어내 옮기는 걸 달리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일상에서 겪었거나 느꼈던 가십 수준의 잡담으로 팔로어나 친구들의 털을 가볍게 쓸어주면, 상대는 또 다른 잡담으로 댓글을 달아 보답을 합니다. 그것이 귀찮으면 그저 ‘리트윗’ 또는 ‘좋아요’ 단추를 꾹 눌러주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엉킨 털을 풀어줄 수 있습니다. 오래전엔 편지, 이후엔 문자와 e-메일이 그 역할을 했지만, SNS는 훨씬 덜 수고를 들이고도 훨씬 많은 이가 털을 한꺼번에 골라줄 수 있는 효율적인 사회적 그루밍인 거죠.

 하지만 늘 함정은 걷기 편한 길에 있게 마련입니다. 함정을 피하려면 던바 교수의 얘기를 더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집단이 커져 버려 불가능해진 그루밍의 역할을 대체한 언어라도 한계가 없을 순 없지요. 던바 교수는 어떤 종(種)의 개체가 이루는 집단의 크기는 사고 작용에 관계하는 대뇌 신피질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따르자면 한 인간 개체가 꾸릴 수 있는 집단의 크기는 150명 정도라는 거지요. 현대인 한 사람이 면식을 트고, 잡담을 하며 지내는 사람 수가 그 수를 넘기 어렵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이 150을 ‘던바의 수’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SNS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적어도 수백 명, 후딱 수천 명을 넘기고, 수만, 수십만 명의 팔로어를 가진 사람도 적잖습니다. 하지만 그 수가 함정입니다. 사회적 관계가 넓어질수록 관계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꼭 던바의 수가 진리는 아닐지라도 그 밖에 있는 팔로어나 이웃들 중에는 내 그루밍을 호의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불쾌하게 여길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얼마 전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한 스포츠 아나운서도 그루밍해 주던 손가락을 물린 경우가 아닐까요. 혼자서는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한 줄기 위안을 얻고 힘이 되는 한마디를 듣고자 절망적인 털 고르기 언어에 매달렸다가, 도리어 더 큰 상처를 받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린 게 아닐까요. 그런 사회적 그루밍이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얼굴을 맞대고 속내를 털어놓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실물 친구’ -어쩌다 이런 표현까지 써야 할 지경이 됐는지 모르지만-를 찾았더라면 안타까운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허수의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내 고민을 듣고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여줄 사람은 1768번째 팔로어가 아닙니다. 내가 불특정 허수들에게 신경을 쓰느라 잠시 한눈을 팔아도 내 앞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내 친구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허상을 좇느라 진실을 잃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이훈범 중앙일보 j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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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