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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3인의 평전으로 본 삶의 전략

전쟁 영웅과 영화 감독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 또 기업가는 어떤가. 분야는 달라도 조직을 이끌려면 치밀한 전략과 고도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영화의 왕’을 자처한 제임스 캐머런은 무엇보다 팀워크를 강조했다. 세상을 읽고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동서고금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세 권의 평전(評傳)을 통해 전략의 정체를 탐색해본다.






마셜
나서지 않는 리더십으로 승리를 설계한 2차대전의 영웅

마셜 H 폴 제퍼스·앨런 액설로드 지음
박희성·박동휘 옮김
플래닛미디어
387쪽, 1만9800원


맞아. 조지 마셜(George Marshall·1880~1959)이 있었다. 신간이 환기시켜 주듯 제2차 세계대전이 탄생시킨 미국의 걸출한 군사영웅 중 마셜(육군 참모총장·국방장관)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보통은 유럽연합군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나, 영화 ‘패튼 대전차군단’의 조지 패튼이 더 친숙하겠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다. 아이크란 애칭으로 불렸던 명장(名將) 아이젠하워는 치아를 다 드러낸 채 웃는 친숙한 이미지로, 기동전의 명수였던 패튼은 왕 괴짜로 미국 대중의 가슴에 남아있다.

 더 유명한 이는 더글러스 맥아더. 유럽전쟁을 책임진 아이크와 달리 태평양전쟁을 지휘했던 그는 “위대하지만 역설적인 인간”이었고, “예술가와 전사(戰士)를 합친” 문제적 인물이었다. 그를 영웅으로 묘사한 『아메리칸 시저』의 저자 윌리엄 맨처스터도 그 점을 인정한다.




‘먀셜 플랜’으로 유명한 미국 장군 조지 마셜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다. 아이젠하워나 맥아더에 비해 명성은 떨어졌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끌어낸 주역이자 위대한 전략가였다. [플래닛미디어 제공]

 그럼 마셜은 뭐지? 맥아더·아이크·패튼 셋을 합친 것보다 중요한 전략가이자, 2차대전 승리의 숨은 설계자라는 게 신간의 관점이다. 전쟁터를 누비진 않았지만, 워싱턴에 앉아 천하를 읽었고, 전후 평화질서까지 창출해낸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와 매번 비교되는 게 맥아더다. 1880년생 동갑내기로 별 다섯 개, 즉 원수 계급장을 각각 달았던 둘은 서로를 뱀을 보듯이 싫어했다. 스타일과 성격이 다른 탓인데, 맥아더는 미 역사상 최다 수훈(22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반면 마셜은 외국에서 받은 걸 합쳐도 17개. 맥아더가 웨스트포인트(미 육사) 출신인 데 비해 마셜은 버지니아군사학교 졸업생이라서 젊을 적엔 상대적으로 가려졌다. 진급도 늦었다. 소위 임관 14년 뒤에야 소령 진급을 했고, 중위 계급장만 9년을 달아야 했다.

 하지만 대기만성형의 그는 ‘말년 대박’을 터트렸다. 195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이다. 마셜플랜으로 전후 유럽 부흥에 기여한 공로 때문인데, 미 군인 출신으로 노벨상을 받은 건 그가 유일하다고 이 책은 밝히고 있다. 화려한 스토리나 무용담은 덜하지만, 왜 그가 위대한 전략가이자 진정한 리더인지를 드러내는 대목은 꽤 설득력 있다.

 눈여겨볼 점은 그는 내내 ‘끼어있는 존재’로 활동한 점이다. 군 경력도 야전사령관보다 참모로 성장했다. 전쟁 중에도 대통령을 보필하는 한편 영국의 처칠, 소련의 스탈린 같은 연합국 거물을 상대했다. 전후 국공내전에서 싸우던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과 장제스(蔣介石·장개석) 사이의 중재도 그가 했다. (그가 실패했던 유일한 역할임). 한국전쟁 때도 그러했다. 대통령 트루먼과 맥아더는 확전이냐 제한전이냐를 놓고 “서로를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368쪽)거렸다.

 “뭘 원하시는지 말씀해주시죠. 전 그걸 하겠습니다.” 국방장관직을 맡아달라는 트루먼에게 마셜은 군통수권자의 의중을 새삼 확인했다. 직후 각종 항명의 증거를 모아 단칼에 맥아더 목을 내리쳤다. 그런 그는 2차대전 승리의 핵심 인물이라서 나치 독일에 맞서려면 유럽에 통합군사령부 체계가 필요하다고 봤고, 이걸 끝내 관철시켰다. ‘영국의 자존심’인 몽고메리 장군 대신 아이젠하워를 사령관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때도 몽고메리를 소외시키지 않는 섬세한 조율과 배려를 잊지 않았는데, 그게 마셜 리더십의 실체다.

 “마셜에게는 불굴의 정신과 비전이 있었다. 그 중 최고 미덕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현지 최고사령관들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트루먼은 전쟁 종결 직후 그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를 테면 아이젠하워 등에게 미션을 주면서도 불필요한 간섭이라고 판단되면 자신의 입술을 깨물곤 했다는데, 그런 태도가 몸에 뱄다.

 신간 『마셜』은 A마이너스급이다. 사람냄새가 덜 나는 게 좀 흠이다. 하지만 부럽다. 역사학자 마틴 판 크레펠트가 『전쟁본능』에서 지적한 대로 마셜·맥아더·아이크 등은 ‘군사적 지성’이고, 그들에게 기꺼이 경의를 표하는 저들의 풍토 때문이다. 군사적 지성을 한 수 아래라고 예단하는 것 자체가 21세기적 풍토이고, 한국적 상황이다. 소설가 괴테나 시인 월트 휘트만 등은 인류사의 각종 걸출한 전사(戰士) 앞에 깍듯한 경의를 표했다. 그와 달리 우리가 군대·전쟁이란 소멸해버릴 구시대의 유산이라고 냉소한다면, 그건 혹시 조선조 문약(文弱)의 전통 때문이거나, 한국전쟁 이후 61년 유지돼온 평화에 취한 탓은 아닌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마셜』은 전쟁·군대의 세부적인 것에 탐닉하기보다 그 안의 숱한 문제적 인간 사이의 부딪침과 20세기사를 군대의 관점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고급저술이다. 현대 기업환경에 적용해도 훌륭할 듯하다.

조우석(문화평론가)






제임스 캐머런
팀워크 통해 상상을 현실로 엮어내는 SF의 제왕

제임스 카메론
더 퓨처리스트
레베카 키건 지음
오정아 옮김, 21세기북스
368쪽, 1만5000원


“나는 세상의 왕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영화 ‘타이타닉’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고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가상 세계의 창조주다.” 영화 ‘아바타’를 만든 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는지도 모른다. 그가 만든 판도라라는 환상적인 행성과 나비족이란 외계인 캐릭터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한 창작물이었다. ‘에이리언2’ ‘터미네이터’ ‘타이타닉’에 이어 ‘아바타’까지…. 카메론의 영화는 항상 관객을 경이로운 상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제임스 캐머런

 이 책은 그가 이런 작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놀랄 만큼 상세하게 보여준다. 미국 LA타임스 영화기자인 저자는 “벽에 붙은 한 마리의 파리처럼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제작진을 지켜봤다”고 표현할 만큼 아바타의 제작과정을 상세히 관찰했다.

 또 터미네이터 주연을 맡았던 아널드 슈워제네거,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피터 잭슨 감독 등 캐머런의 지인과 그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던 스태프 등 50여 명을 만나 인터뷰했다. 캐머런 가족들로부터는 SF 영화에 푹 빠졌던 그의 어린 시절 얘기를 들었다. 그 결과 캐머런의 독창적인 삶과 영화세계를 마치 옆에서 보며 그린 듯한 매우 흥미로운 초상화(평전)가 나왔다.

 이 책에서 묘사한 캐머런은 과학적 사고와 예술적 감각이 함께 발달한 ‘르네상스형 인간’이다. 그는 미래형 헬리콥터의 착륙방식 같은 난해한 기술문제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다. 또 한편으론 ‘아바타’에 나오는 외계의 숲이 한밤중에 어떤 모습으로 빛을 내야 하는지를 예술가들에게 설명하는 미적 감각을 가졌다.

 중요한 장면에선 카메라를 직접 들어 찍고, 필름편집 작업을 한다. 미래의 우주선처럼 영화에 나오는 가상의 장비나 캐릭터를 창조할 때는 전문가 뺨 치는 스케치 실력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현장에서 배우와 스태프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의 편집광적 기질을 발휘한다. 마음에 안 들면 한 장면을 수십 번씩 다시 찍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엔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캐머런은 “팀원들의 존경은 이 세상의 어떤 칭송보다 중요하다”며 리더십을 강조한다. 개인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중요하지만 이를 현실로 구현하려면 결국 팀워크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캐머런의 작품을 한 편이라도 봤다면 이 책이 풀어놓는 제작과정의 뒷얘기는 실제 영화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것 같다.

정철근 기자





이완용
부조리한 현실에서 실리 찾은 리얼리스트

이완용 평전
김윤희 지음, 한겨레출판
313쪽, 1만6000원


이완용(사진). 누구나 다 아는 매국노. 을사오적(乙巳五賊) 중에서도 맨 앞에 꼽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김윤희 교수(경원대)는 ‘매국노 이완용’이 “100년 전 다른 양반 관료들과 달리 선진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이었다”고 진단한다.





 나아가 “현실을 받아들여 실리를 추구했던 그에게서 우리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는 현대인의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뛰어난 ‘도구적 합리성’을 발휘해 을사늑약·강제병합을 주도한 이완용을 ‘매국노’ 틀에 묶어두는 대가로 대한제국 정치체제와 그 정점의 고종, 당대 지식인들, 일반 민중은 일종의 면죄부를 얻게 됐다. 매국노 이완용은 100년 넘도록 국가, 또는 민족구성원이란 소속감을 지탱시켜 주는 ‘배제된 타자’ 역할을 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우리 안의 이완용’을 아프게 꼬집는다. 탁월한 시선이다.

 잘 쓴 평전답게 논지 전개가 탄탄하고 설득력 있다. 읽는 동안 ‘내가 이완용이라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라고 끊임없이 자문(自問)하게 만든다.

 이완용은 “세상에서 제일 처신하기 힘든 세 자리가 있다. 쇠약한 나라의 재상과 파산한 회사의 청산인, 빈궁한 가정의 주부가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쇠약한 나라의 재상’으로서 그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을사늑약 때는 어차피 사태를 뒤집을 수는 없다고 보고 조약문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고치려고 노력했고, 강제병합을 맞아서는 국호와 황실의 이익을 보장받으려 애썼다. 그는 현실에 분노하기보다 현실을 조망하고자 했다. 냉철한 그에게는 분노해야 할 현실이 없었다.

 당초엔 친일파와도 거리가 멀었다. 독립협회 발기인이자 초대 위원장이었고, 정치 상황에 따라 친미·반일, 반러, 친러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친일파가 된 것은 을사늑약 체결 즈음이었다.

 저자의 한마디가 날카롭다. “오늘날의 이완용은 ‘매국노’로서보다 ‘부조리한 현실에 분노할 줄 모르는’ 인물로 비판돼야 할 대상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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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