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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은퇴가 두려운 한국의 중년

말레이시아·중국·대만과 영국·미국·프랑스에서 ‘은퇴’는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인의 55%는 은퇴란 말에 경제적 어려움부터 떠올렸다고 한다. HSBC보험그룹이 17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 외에도 두려움과 외로움을 떠올렸다. 대부분 부정적인 인식이다. 이유야 빤하다. 돈 들어갈 일은 아직도 많은데, 가진 것은 달랑 집 한 채에 평균 저축도 3400만원에 불과하다. 베이비붐 전후 세대의 초라한 초상(肖像)이다.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사회보장 시스템도 돈 걱정의 배경일 것이다. 성장가도를 달리다 저성장에 접어든 경제상황이 심리적 위축을 유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지나치게 자식에 ‘올인’하는 사회문화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통계청 자료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 2인 이상 가구의 가계소비지출 항목에서 교육비의 비중이 13%나 됐다. 식료품·비주류음료(15%)에 이어 두 번째다. 사교육비에 연간 21조원을 퍼부은 결과다. 2003년만 해도 교육비 비중은 11%로 교통비보다 낮은 네 번째였다.

 어디 그뿐인가.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평균 결혼비용이 남성 8087만원, 여성 2936만원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돈을 벌어 해결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 부모의 부담이다. 교육비에 허리띠 졸라매고, 시집·장가까지 챙기느라 허리가 휘는 것이다. 더욱이 자녀의 사회 진출 연령도 늦어지고 있다. 대학생의 4년 졸업률이 50% 수준이다. 청년실업에 대비해 스펙 쌓는다며 어학연수다, 인턴이다 졸업을 늦추는 것이다. 여기에 결혼도 늦어져 30대에도 부모에게 신세 지는 ‘캥거루족(族)’이 많다. 반면 정년은 55~58세이고, 그나마 ‘사오정(45세 실직)’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러니 어떻게 은퇴가 자녀로부터 해방이요, 자유일 수 있겠나.

 그런데 수명은 늘어난다.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0세다. 은퇴 후에도 25년 안팎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건강도 문제다. 늙으면서 병원 신세를 질 일이 많아진다. 하지만 저축은 미미하다. 지난해 소득 대비 저축률은 2.8%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6.1%)의 절반도 안 된다. 자녀 뒷바라지에 저축할 여력도 없고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지금은 고령화 사회를 넘어 ‘100세 장수’를 외치는 시대다. 은퇴 이후가 행복하고, 힘차게 ‘장수 만세’를 외치려면 스스로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최근 의사 아들을 상대로 부양비를 청구한 부모에서 보듯이 자녀가 더는 ‘노령보험’이 아니다. 지나친 교육열과 끝없는 챙기기는 자녀의 독립심을 해치는 독(毒)이자 행복한 인생항로의 암초일 수 있다.

 물론 정부도 꼼꼼하게 고령사회를 준비해야 한다. 노인의료시설 확충 등 고령시대에 걸맞은 복지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장수시대가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리스크’가 아닌 축복이 되고, 은퇴가 ‘자유’를 뜻하게 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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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