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분수대] 영웅의 추락





한때 카이사르는 로마 공화정의 희망이었다. 매력적인 화술과 도발적인 행동으로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카이사르는 군 사령관으로도 역사상 어떤 명장에 뒤지지 않는 큰 전과를 거뒀다. 그의 공으로 로마 영토는 북해 연안에 이르렀다. 기원전 49년, 보수 귀족층을 대변하던 원로원이 위협을 느끼고 소환령을 내리자 카이사르는 기다렸다는 듯 대군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돌진했다.

 카이사르를 지지하던 대중은 열렬히 환호했지만 권력을 독차지한 그는 더 이상 귀찮은 공화정을 원하지 않았다. 젊은 날의 영웅이 독재자로 변신한 데 실망한 브루투스가 암살을 감행했으나 역사를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내전 끝에 카이사르의 종손(從孫) 옥타비아누스가 제위에 오르고 로마 민주정치는 막을 내린다.

 영웅이 괴물로 변신한 예는 우리 역사에서도 드물지 않다. 12세기 고려의 용장 척준경(拓俊京)이 대표적이다. 젊은 날의 척준경은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타고난 용맹과 무예로 예종 때의 여진 정벌과 9성 개척에 절대적인 공을 세웠다. 도원수 윤관이 그의 재주를 높이 사 신분을 무시하고 양아들로 삼았을 정도다.

 하지만 예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척준경은 세도가 이자겸의 수족으로 변신, 궁에 난입하고 반대파를 학살하는 등 악행에 앞장섰다. 뒷날 인종의 심복에게 설득돼 이자겸을 제거하는 역할까지 맡지만 결국 정지상에게 탄핵당해 권력을 빼앗기고 귀양가는 신세가 된다.

 무엇이 척준경을 타락시켰을까. 그의 멘토였던 양아버지 윤관의 추락이 ‘올바르게 살아 봐야 별 수 없다’고 느끼게 한 건 아닐까. 여진 정벌의 영웅 윤관은 문신들의 득세로 북동 9성을 여진에게 돌려주고 화친을 맺은 뒤 “쓸데없는 전쟁으로 국력을 소모한 죄”까지 추궁당하는 쓸쓸한 노년을 맞았다.

 한때 ‘모래시계 검사’로 기대를 모았던 젊은이가 세월이 흘러 비리 사건의 주역으로 지목됐다. 감사원 역사상 현직 감사위원이 연루된 사건은 처음이라 한다. 만화 주인공 배트맨을 얼굴 없는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 ‘다크 나이트’는 “영웅인 채 젊어서 죽을 것인가, 늙어 악당이 될 때까지 살 것인가”라는 탄식으로 끝난다. 영웅이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회에선 정의감에 불타는 젊은 영혼들이 부귀영화의 유혹을 오래 견디지 못하는 법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송원섭 jTBC 편성기획팀장

▶ [분수대] 더 보기
▶ [한·영 대역] 보기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