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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 덕에 스타 된 청록다방·곰세탁소 …

영월에 사람을 만나러 갔다. 풍광 좋은 강원도의 여행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영월만큼 오랜 세월 동안 기구한 사연이 쟁여 있는 곳도 드물다. 잘 알려진 역사이거나 잘 모르는 일화거나, 역사책에 등장하는 인물이거나 아무도 모르게 살다 간 민초이거나, 이 첩첩산중의 산골 마을은 걸음마다 그들의 흔적과 조우한다. 그들의 흔적을 좇아 영월을 돌아다녔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1 영화 ‘라디오스타’의 명소 청록다방. 시골 다방의 운치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배우 박중훈이 사인한 테이블도 놓여 있다. 읍내 다방답게 커피 2000원, 쌍화차 5000원으로 저렴하다.







# 이장이 20년 바친 ‘작품’ - 모운동마을



모운동(募雲洞)마을은 산속에 들어앉은 탄광촌이었다. 해발 700m 산중턱에 걸터앉아 있어 아침마다 구름이 모인다 하여 모운동이라 불렸지만, 모운동은 이름처럼 낭만적인 마을은 아니었다.



  모운동은 1989년까지 옥동탄광의 마을이었다. 탄광은 만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한때는 인구 1만을 헤아렸다. 영월 읍내에도 없던 극장이 있었고 요정만 4개가 있었다. 남편을 찾아 모운동에 처음 들어서는 여인은 네 번 놀랐다고 한다. 도무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첩첩산중에 놀라고, 그 아래 휘황찬란한 불빛에 놀라고, 아침에 일어나면 텅 빈 마을에 놀라고, 어딜 봐도 똑같이 늘어선 판잣집에 놀랐다고 한다.



 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 마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해 4월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광부들은 흩어졌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오늘 모운동 인구는 50명에 못 미친다. 마을 언저리 시멘트 동발(굴에 세우는 지지대)에는 이끼가 덮였다.



  마을을 바꿔놓은 건 김흥식(56) 이장의 야무진 꿈이었다. 2006년 행정안전부에서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게 계기였다. 안 쓰던 농협 건물을 뜯어고쳐 마을 역사를 담은 자료관으로 삼았다. 집마다 걸어둔 우편함에는 산새들이 둥지를 틀었다. 구름이 머문다는 모운동이라는 동네 이름도 김 이장이 영월의 옛 기록을 뒤져 찾았다.



 마을의 백미는 잿빛 담벼락에 그려진 동화 주인공이다. 집 담벼락에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미운 오리 새끼 등 동화 속 주인공의 그림이 앙증맞게 그려져 있다. 이장 김씨는 “유치원 교사였던 아내가 밑그림을 그리고 주민들이 손수 색칠했다”고 말했다. 한 담벼락에 그려진 벌거벗은 임금님은 여전히 밑그림 상태다. 모운동의 마을 만들기는 아직 진행형이다.









2 단종이 묻힌 장릉의 소나무숲.













3 다른 조선의 왕릉과 달리 단종의 능은 그의 삶처럼 단출하다. 4 청령포 안 단종의 어소 쪽으로 담장 너머 허리를 굽힌 소나무.







● 모운동마을 정확한 행정구역은 영월군 김삿갓면 주문2리다. 김삿갓 묘역과 생가터가 있는 김삿갓 유적지가 신작로 건너편에 있다. 김삿갓 유적지를 올라가는 길은 개울을 10번쯤 건너는데, 한 발짝 건널 때마다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넘나든다. 영월 사람들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축지법이 가능한 길”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모운동마을 가는 길은 다음과 같다. 중앙고속도로 제천IC로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로 들어온다. 읍내에서 88번 지방도로를 타고 김삿갓면으로 향한다. 동강대교를 지나 20㎞를 간 다음 주문교를 건넌다. 이어 산길을 따라 4㎞쯤 올라가면 마을 입구가 나온다. 영월 읍내에서 하루 네 번 버스가 다닌다.









5 영월 맨션에 그려진 배우 안성기·박중훈 인물화. 6 라디오스타에 ‘외상값이 있다’고만 등장한 곰세탁소 주인 엄기중씨. 영화에 얼굴은 비치지 않고 상호만 출연했지만 마을의 스타가 됐다. 7 모운동 마을 김흥식 이장네 집. 이 마을의 우편함도 주민들이 직접 나무로 짜서 만들었다. 8 그림과 함께 모운동 마을 곳곳에는 12개의 아담한 벤치도 놓여 있다. 벤치를 찾아다니다 보면 마을을 한 바퀴 다 돌 수 있다.



# 주민을 동상·그림 주인공으로 - 요리골목



광부로 북적이던 휘황한 불빛은 걷힌 지 오래다. 한때는 식당으로 붐벼 ‘요리골목’이라 불렸다. 지금은 식당이라고 해봐야 띄엄띄엄 예닐곱 개가 전부다. 대신 동네 주민의 해사한 얼굴과 독특한 그림이 골목을 환하게 메우고 있다.



 벽화의 주인공은 이 거리에 살고 있는 주민이다. 골목 첫머리 ‘미락회관’ 담장엔 할머니와 며느리가 그려져 있다. 식당에 들어서면 그림의 주인공 박길선(80)씨와 강애자(56)씨가 주방에서 여전히 파와 부추를 다듬고 있다. ‘강산회관’ 앞 동상(사진)의 모델인 박영숙(60)씨는 매일 아침 손자를 유치원에 배웅한다. 실제 모델의 삶을 슬쩍 기웃대는 재미가 있다. 기발한 착상의 벽화와 가게 간판도 흥미로운 볼거리다.



 요리골목 끄트머리 영월맨션 벽에는 배우 안성기와 박중훈의 얼굴 그림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요리골목 주변은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지이기도 하다. ‘청록다방’에 이제 ‘김양’은 없지만, 마담 아주머니는 아직도 카운터를 지키고 앉아 있다. 영화에 외상값을 갚지 않는다고 나온 ‘곰세탁소’ 아저씨는 그 자리에서만 47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 물론 외상값은 없다고 한다. 아쉽게도 KBS 원주방송국 영월중계소는 문이 닫혀 잡초만 무성했다. 하지만 별마로천문대에 올라서 내려다보는 영월 읍내 전경은 영화가 줬던 감동을 그대로 전해준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 하나. 영월에는 극장이 없다. 그래서 청록다방 주인 김경애(51)씨는 “영화를 보러 제천까지 다녀왔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곰세탁소 주인 엄기중(74)씨는 “평생 영화 한 편 본 적이 없다”고 담담히 말했다.



● 요리골목 영월 읍내에 있다. 영월은 단종이 사약을 받은 관풍헌을 중심으로 읍내가 형성돼 있다. 청록다방은 관풍헌에서 30m 떨어진 사거리 귀퉁이에 있고, 요리골목은 다방에서 안쪽으로 30m 더 들어가면 나온다. 곰세탁소·사팔철물점 등 ‘라디오 스타’에 나왔던 명소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읍내에서 영월중·고교 방면으로 가다 봉래산길을 오르면 별마로천문대 표지판이 나온다.











# 슬픈 역사의 흔적 - 단종 유적지



청령포는 영월의 랜드마크다. 동강이 굽이 돌아 삼면이 물로 막혀 있고 뒤로는 육육봉 절벽이 가로막아 자연의 감옥을 형성하고 있다. 단종이 왜 여기로 유배를 왔는지 직접 보면 이내 알 수 있다.



  청령포는 소나무로 유명하다. 수백 년 묵은 소나무 700여 그루가 장관을 이룬다. 청령포는 소나무에도 사연이 전해온다. 일제는 다른 지역에서는 소나무를 마음껏 베었어도 청령포 소나무는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태백선 기차를 타고 청령포를 지날 때는 일본군이 군모를 벗고 예의를 갖췄다는 얘기도 전해내려온다.



 청령포 소나무 중 관음송(觀音松)이 있다. 두 갈래로 갈라져 하늘 높이 솟구친 모습이 위엄이 있다. 그 둥치에서 어린 단종이 울음을 쏟아냈다고 한다. 신기한 건 청령포 소나무는 한결같이 어소(御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담장 안으로 고개를 디밀고 있는 것도 있다. 빛을 더 받으려는 식물의 본성 때문이겠지만, 영월에서는 나무도 왕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청령포 일대 단종 유적지는 반경 200m 안에 있다. 단종이 묵었던 어소, 왕비 송씨를 그리며 돌을 쌓았다는 망향탑, 한양을 바라봤다는 노산대, 모두 그 안에 있다. 그 반경은 금표비에 새겨진 것과 거의 일치한다. 금표비에는 “동서로는 300척, 남북으로는 490척 밖으로 드나들지 못한다”고 적혀 있다.



  단종이 묻혀 있는 장릉은 읍내 가까운 곳에 있다. 사약을 받은 뒤 며칠 간 떠돌던 단종의 주검을 지방관리 엄흥도가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을 무릅쓰고 몰래 수습해 모셨다. 단종 폐위를 둘러싼 사화로 처형된 268명의 이름이 능 아래 장판옥 안 위패에 새겨 있다.



● 단종 유적지 청령포는 영월 읍내에서 3㎞ 거리에 있다. 표지판이 잘 돼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영월 읍내에서 가는 버스가 있다. 서울에서 출발했다면 제천IC에서 88번 지방도로를 타고 오다 청령포 교차로로 들어서면 된다. 입장료는 성인 2000원, 청소년 1200원. 배로만 들어갈 수 있는데, 비가 와 물이 불면 배가 못 뜬다. 장릉은 읍내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평창 방면으로 2㎞를 가면 나온다. 시내에서 버스가 10분 간격으로 다닌다. 입장료 성인 1400원, 청소년 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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