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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 직후 미군이 준 액체, DMZ 철책에 뿌렸다”





양구 21사단 근무한 강평원씨 주장



강평원씨



“미군부대에 묻혀 있다는 고엽제는 비무장지대(DMZ) 내 사계청소(射界淸掃·사격 시야 확보를 위한 장애물 제거)용이었습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미군기지인 ‘캠프 캐럴’에 묻혀 있다는 고엽제의 용도를 놓고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그 용도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 경남 김해에 사는 강평원(63·당시 18세)씨는 26일 김해시내 한 커피숍에서 군 복무 시절 고엽제를 직접 사용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1966년 11월부터 69년 11월까지 3년 동안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 중동부 전선에서 국군 21사단 66연대 1대대 3중대 소속 하사로 근무했다.



 그는 68년 6월 초 공병부대가 철책을 설치하면 분대원들을 지휘해 철책 전방 50m까지 잘 보이도록 나무와 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나무는 폭약을 터뜨린 뒤 치웠다. 문제는 풀이었다. 워낙 무성해 벨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군 흑인 사병이 픽업트럭에 싣고 온 드럼통의 액체를 경유와 2대 1로 섞어 분무기에 넣어 뿌렸다. 이 액체를 뿌리자마자 풀잎은 갈색으로 변한 뒤 말라 죽어갔다. 귀찮은 풀 베기 작업에서 해방된다며 사병들은 즐거워했다. 작업을 할 때 나무 베기보다 수월한 액체 뿌리는 작업은 주로 고참들이 맡았다. 이 액체가 고엽제인 줄은 아무도 몰랐고 ‘풀 죽이는 약’으로만 알았다. 사병들은 방독면이나 장갑 등을 착용하지 않았다.



  강씨의 중대는 이 작업을 두 달 정도 했지만 ‘시계(視界) 불량처 제거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중동부 전선에서는 이듬해 7월까지 계속됐다. 그는 "액체를 뿌린 곳에는 제대할 때까지 나무·풀이 자라지 않았다. 뛰어놀던 노루·멧돼지·새 등도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강씨가 고엽제를 뿌리던 그해 초에는 북한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1월 21일)과 미 해군 푸에블로호 납치사건(1월 23일)이 일어나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한국군과 미군은 북한 침투를 막기 위해 휴전선 155마일(약 250㎞) 전 구간에 철책을 설치하고 요새화 작업을 벌이면서 고엽제를 사용한 것이다. 그는 경북 칠곡군 미군기지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 고엽제는 휴전선에서 작업이 끝난 뒤 남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철책 앞 시야 확보를 위해선 고엽제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고엽제 사용으로 전방경계가 철저해지면서 북한의 육로 침투가 중단됐다. 지금의 환경의식으로 당시 고엽제 사용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면 안 된다.”



 강씨는 제대 후 얼굴에 붉은 반점이 나고 심장병으로 고생하다 2000년 고엽제 후유증 환자로 등록돼 국가보훈처로부터 환자수당을 받고 있다.



김해=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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