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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25) 아찔한 유혹





‘어떤 스캔들도 만들지 않겠다’
배우로서 평생 지킨 소신이다



부산 다대포에서 촬영한 ‘아낌없이 주련다’의 러브신. 신성일과 이민자의 매력이 잘 드러나 있다.





영화배우로서 철칙이 있다. 아내 엄앵란 외에 어떤 여배우와도 사랑을 나누지 않는다는 소신을 평생 지켜왔다. 스캔들로 몰락한 선·후배를 숱하게 봤기 때문이다.



 1962년 여름 최선을 다해 ‘아낌없이 주련다’를 촬영했다. 서울 세트(레스토랑 신) 촬영 직후 ‘러시(rush) 필름’(편집 전 필름) 시사회가 종로 단성사에서 열렸다. 조명기사·촬영기사·감독·스태프·출연자·제작자들만 보고 에러를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장·단점이 그대로 노출되기에 웬만한 배짱으론, 특히 나 같은 신인배우가 낄 수 없는 자리였다.



 어떤 평가가 나올지 몰라 불안감이 커졌다. 점심 무렵, 차태진 극동흥업 사장이 시사회에서 돌아오자마자 날 불렀다. 보자마자 내 등허리를 탁 치고 “성일아, 잘 했어” 하면서 5만원을 주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날 거들떠 보지도 않던 스태프들 얼굴에서도 나에 대한 호감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틀 후 부산 다대포 촬영이 예정돼 있었다. 가회동 하숙집까지 걸어가면서 ‘이 작품은 생각 이상으로 성공하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낌없이 주련다’의 해변 러브신은 부산 송도와 다대포에서 촬영했다. 버터 랭커스터·데보라 카 주연의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에 필적할 만큼 아름답다는 평을 받았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진주만에 근무하는 상사와 부대장 부인과의 사랑 이야기다. 하와이 해변의 러브신이 백미였는데, 부산에서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여인과 아르바이트 대학생의 사랑을 다룬 ‘아낌없이 주련다’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내 상대역은 ‘한국의 에바 가드너’라 불린 이민자였다. 쌍꺼풀에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그녀는 당시 30대 중반으로 여인으로서의 농익은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영화배우 김진규와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때라 배우로서의 감정표현도 풍부했다. 이민자를 보면 그 큰 눈 속에 빠져들 것 같았다. 그녀의 두툼한 입술은 남자의 입술을 요구하는 듯 보였다. 풍만한 몸매이면서도 허리와 다리는 날씬했다. 또 남자를 완전히 매혹시키는 목소리였다. 그녀의 매력은 약 10살 아래인 나를 만나면서 스크린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 때 내 나이 25살. 나와 이민자는 송도에 있는 여관 겸 음식점 2층에 따로 숙소를 배정받았다. 2층에 나와 이민자 사이에는 미닫이 문 하나밖에 없었다. 촬영이 끝나면 이민자는 나를 불렀다.



 “미스터 신, 안마 좀 해줘요.”



 대선배의 요구였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 안마를 하다 보니 아찔했다. 은근한 유혹이었을지도 몰랐다. 이민자가 살며시 잠드는 기색이 보이면 나는 1층으로 내려가 맹인 안마사를 불러왔다. 그러면 그녀는 세상 모르고 잤고, 그 과정은 2박3일로 끝났다. 나는 ‘톱스타가 돼야 한다. 여기서 자제 못하면 내 자신에게 진다’며 유혹을 느낄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지금도 그 때를 돌아보면 백 번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혹은 한 순간이다. 만약 그때 무너졌다면, 한때 반짝하고 잊혀진 배우들처럼 지금의 신성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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