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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의 시시각각] 한국어 못하는 베트남 신부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또 참극이 빚어졌다. 바로 사흘 전이다. 경북 청도군에서 남편(37)이 베트남에서 시집온 14세 연하의 부인을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다. 숨진 ‘베트남 신부’ 곁에는 생후 19일 된 아기가 누워 있었다. 상상하기조차 끔찍하다. 도대체 몇 번째인가. 2008년 남편과 시어머니의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여성, 2010년 결혼 1주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여성도 베트남 출신이었다. 게다가 결혼이주 여성이 베트남 출신뿐인가. 비극이 터질 때마다 우리 대사가 주재국 정부와 피해 가정에 사과하고 얼마간의 위로금을 전달하는 것으로 죄책감을 더는 일이 언제까지 되풀이돼야 하는지 답답하다.



 마침 그제 국회에서 김성동 의원(한나라당)과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이 공동 주최한 ‘바람직한 다문화사회를 위한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김 의원이 직접 발제한 ‘다문화시대의 새로운 역사 리더십’ 논문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는 우리 다문화정책의 문제점으로 소수 문화집단에 대한 일방적(one way) 정책, 시혜 위주의 전시행정, 부처별 업무 중복과 국가전략 부재를 들었다. 예를 들어 금년도 다문화 지원 예산은 여성가족부·교육과학기술부·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행정안전부 등 9개 부처에 887억원이 책정돼 있다. 부처가 저마다 나서니 지원사업 21개, 교육사업 16개, 문화사업 6개가 뒤죽박죽이다. 여성가족부가 ‘여성 결혼이민자 일자리 지원사업’을 펴면 고용노동부도 ‘결혼이민자 취업지원 민간위탁사업’을 벌이는 식이다. “정책조정을 위해 총리실 산하에 다문화가족정책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재작년 설치 이래 단 3차례 회의가 열렸을 정도로 유명무실한 위원회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고 김 의원은 꼬집었다.



 각자 고유 업무를 앞세우니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다문화가정 지원이 전국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남의 한 군(郡)에서는 몇 년 전 다문화 담당자가 지역 경찰서에 소환돼 조사받았다. 군내 결혼이주 여성의 주소·전화번호 등 신상정보를 갖고 있는 게 불법이라는 이유였다. 법무부가 인권보호 차원에서 정보 유출을 엄격히 막기 때문이다. 그나마 농촌에서는 파악이 쉽지만, 서울 같은 대도시는 지금도 법무부 방침 때문에 구청조차 체계적인 다문화 지원사업을 펼치기 어렵게 돼 있다. 종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담당 부처를 새로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있는 예산과 인력이라도 효율적으로 쓸 시스템을 구축하라.



 특히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교육기회 평등’을 강조하고 싶다. 핵심은 엄마와 아이의 한국어 교육이다. 국어에서 처지면 다른 모든 교육에서도 처지고, 먼 장래까지 심각한 불이익을 받는다. 엄마의 한국어 실력이 떨어지면 아이는 이미 유아기부터 ‘교육기회의 불평등’ 처지에 빠지고 만다. 경북 청도에서 살해당한 베트남 신부도 한국어를 거의 못했다고 한다. 외국인 주민 통계를 보면 초등학교 나이인 7~12세 다문화가정 어린이 중 80.8%가 실제 학교에 다니지만, 중학교 나이에는 60.6%, 고등학교 땐 26.5%만 다닐 정도로 진학률이 급격히 떨어진다. 독일의 경우 이주민 가정 자녀를 위한 독일어 조기교육에 대단한 정성을 쏟고 있다. 그런데도 외국인 학생의 학업 중도 탈락률이 독일인 학생의 2배다.



 정부도 나름대로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쏟는다지만 아직 멀었다. 국립국어원이 만든 ‘여성 결혼이민자와 함께 하는 한국어’ 교재를 보면 한글 자음·모음에서 시작해 그야말로 ‘교과서’적으로 꾸며져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아이가 아파요” “배가 고파요”처럼 가장 ‘급한’ 한국어부터 가르쳐 달라는 요청이 많다고 한다. 이주 연차와 출신국, 필요에 따라 교재를 다양화해야 한다. 다문화가정 자녀를 학교에서 내쫓는 거나 마찬가지인 지금 상황을 방치하면 머지않아 사회 곳곳에서 더 큰 비극들이 발생할 게 틀림없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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