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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사농공상’의 재해석







황창규
지식경제 R&D전략기획단장




독일의 메르켈 총리,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일본의 하토야마 전 총리…. 이들에겐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국가들의 전·현직 지도자라는 사실 외에도 공통점이 또 있다. 모두 이공계 출신이다. 실용적 사고의 이공계 전공자들은 통상 ‘명분’보다는 ‘효용’을 중시하며 관념론적 사고와는 거리를 둔다. 정치 무대에서 이공계의 약진과 꼭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정치의 흐름이 소모적 분쟁과 대립을 부르는 ‘이념 싸움’보다는 ‘실용’과 ‘실리’를 따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도 분명하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이 생각난다. 색깔이 검든 희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되듯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나라를 발전시키면 된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문화 대혁명을 겪은 중국의 최고 정치지도자가 고난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지금 겉으로는 사회주의지만, 안으로는 시장경제의 도도한 물결을 온몸으로 빨아들이는 중국을 목격하고 있다. 중국엔 유독 이공계 출신 정치지도자가 많다. 며칠 전 방문한 ‘베이징지놈연구소’의 인사는 DNA 염기서열분석 비용이 3~4년만 있으면 1000달러 수준으로 떨어져 상용화가 멀지 않았다면서, 정보기술(IT)이 강한 한국과의 협력을 강력하게 희망했다. 그렇다. 세상은 지금 변하고 있다.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 ‘경제대국’이라는 자존심에 집착했다면 그들이 나에게 이런 제의를 쉽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윈-윈(Win-Win)’할 수만 있다면 이 분야의 원천기술에 목말라 있는 우리도 이 제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예전 우리에게는 ‘사농공상’이라는 뿌리 깊은 직업 구분이 있었다. 선비가 가장 상위며, 먹고사는 데 필요한 ‘농’, 생필품 생산을 담당한 ‘공’의 순서다. ‘상’은 이득을 추구하는 부류라 해서 천시했다. 그런데 ‘상’이 없으면 ‘사농공’이 무용한 시대로 변했다. 오래전부터 나는 원천기술과 응용기술을 구분하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시장과 고객의 요구를 외면한 원천기술은 공허하며, 원천성을 갖추지 못한 응용기술 역시 사상누각이기 때문이다.



  과학벨트. 독일·일본 등과 비교해 상당히 늦었지만 이제 집터는 찾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다. 어떻게 하면 온 나라를 과학하는 분위기로 만들 것인지, 어떻게 하면 최상의 과학정책으로 국부를 창출할 것인지 등을 이제부터 과학자들이 고민할 차례다. ‘돈 되는 원천기술’ ‘핵심 특허 기반의 응용기술’ 등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놓쳐선 안 되는 것들이다.



  다음 달 7~9일 연구개발(R&D)전략기획단 주관의 ‘글로벌 R&D 포럼’이 서울에서 열린다. 전 세계 동반 성장을 위해 R&D를 어떤 방식으로 조직화할 것인지, 또 과학 투자의 이념적 굴레를 벗고 실익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한 해법은 뭔지를 탐색하기 위해 15명의 세계 석학과 국내외 R&D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댄다. 이 포럼을 계기로 신흥개발국이 선진국의 R&D 성과를 공유할 기회가 주어지기를, 선진국 역시 세계 균형발전을 위해 R&D 관점에서 무엇을 더 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길 기대한다.



  다산 정약용은 일찍이 ‘사’가 농사를 직접 지어야 국부가 창출된다고 했다. 사농공상의 신분 구분 없이 능력에 따라 인재를 골고루 등용할 것을 조정에 요청하기도 했다. 연암 박지원은 양반에게 상업 진흥과 무역에 나설 것을 독려했다. ‘사농공상’이든 ‘상공농사’든 각자 직역의 충실한 수행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최대화하는 것이 벌써 200년 전에 일부 깨인 선비들이 던진 고언이었다. 이념을 벗어던진 중국이 맹렬하게 추격하는 지금, 과학 한국을 위한 새판 짜기의 중요성이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황창규 지식경제 R&D전략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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