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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이홍훈 대법관 가족에게 박수를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




“사표 낸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다들 말렸습니다. 대법관 해야 할 거 아니냐면서 한번 더 참으라고들 했어요. 며칠 밤을 고심했지요. 그런데 아들하고 딸이 그럽디다. ‘아버지, 개업 안 하시면 저희들 시집·장가는 어떻게 보내실 겁니까.’ 그 말 듣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한 법원장 출신 변호사는 “생각해보면 그때 사표 내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로서의 삶도 보람이 있고,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법원·검찰에 근무하다 변호사 개업을 하는 이들을 보곤 한다. 10년, 20년에 걸쳐 판검사로 일한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사회 활동하는 것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들에게도 직업 선택의 자유 내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검찰 최고위직을 지낸 인물이 퇴직 후 곧바로 비리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는 소문을 접하면 당혹감을 갖게 된다. 고위 법관 출신이 법복을 벗자마자 까마득한 후배 판사가 재판하는 법정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혼 서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새로운 이성에게 달려가 구애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많은 이가 너무 빨리, 너무 쉽게 변신한다. 변신의 이유 혹은 명분으로 드는 건 대개 ‘가족’이다.



 지난주 월요일(16일) 이홍훈 대법관과 인터뷰를 하러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 들어섰을 때, 그의 퇴임 후 계획이 가장 궁금했다. 퇴직 직전 근무했던 법원·검찰청 사건을 1년간 맡을 수 없도록 한 이른바 ‘전관예우 금지법’의 첫 적용을 받게 됐기 때문이었다. 또 사전 취재를 통해 노모를 모시고 사는 그의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대법관에게서 “전관예우에 대한 국민의 염려가 담긴 법인 만큼 나부터 감수하겠다”는 결심을 들었을 때 기자의 머리엔 그의 가족이 스쳤다. 대법관 퇴임 후 1년간 10억, 20억원은 벌 수 있다는데, 법을 지키지 않더라도 처벌하는 규정이 없는데…. 그의 결정을 가족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인터뷰는 계속됐고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34년 판사 생활, 행복하셨습니까.” 그는 행복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보람과 긍지는 있었지만 집사람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많이 아팠습니다.”



 그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면서도 결국 법과 명예를 선택했다. 우리가 박수를 보낼 사람은 이 대법관만이 아니다. 가장의 결단을 받아들인 그의 가족도 박수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 그 박수 소리는 물질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가치를 위해 땀 흘리고 있는 판검사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격려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가난 속에서 사형수들의 형과 아버지로 살다간 사도법관(使徒法官) 김홍섭(1915∼65)의 길을 따르기는 힘든 일이다. 다만 사직서 잉크가 마를 때까지는 돈벌이를 자제하는 문화가 법조계 전통으로 자리 잡길 기대해본다. 법을 다루는 이들의 삶이 존경을 받을 때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도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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