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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김일성·장쩌민 회동처럼 남북 대화 분수령 될까

만 20년 전인 1991년 10월 12일 중국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 방중에 나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이곳에 도착해 중국의 장쩌민(江澤民·강택민) 공산당 총서기의 영접을 받았다. 열차편이었다. 일정은 관광지인 서우시후(瘦西湖) 유람과 문화유적 탐방이었다. 장 총서기가 동행했다. 이곳은 장 총서기의 고향이다. 그 다음날. 두 사람은 다시 수리공사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장 총서기는 김 주석에게 오찬을 베풀었다. 10월 4일부터 시작된 김 주석 방중의 고별 행사였다. 두 정상은 인근 난징(南京)역으로 이동해 작별했다. 김 주석의 마지막 방중이 됐다. 김 주석의 양저우 일정에는 당시 공산당 판공청 주임이던 원자바오(溫家寶·온가보) 총리가 내내 수행했다.



양저우서 장쩌민 만난 김정일

 22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과의 도쿄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발전상을 이해시키기 위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청했다”고 한 이가 바로 원자바오다. 그 시각 방중길의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는 양저우를 향하고 있었다. 그는 사흘 동안 숙박을 않고 특별열차로 달려 이날 저녁 양저우에 도착해 장쩌민 전 총서기를 면담했다고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전한다. 원자바오를 매개로 한 대(代)를 이은 만남이다. 그동안 7차례의 방중 기간 중 이렇게 긴 무정차는 없었다. 가뜩이나 뇌졸중 후유증이 있는 그가 이런 강행군을 한 것은 셋째 아들 김정은의 후계 안착 문제를 비롯한 긴급 현안과 역사의 무게 때문이라는 게 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중앙일보 5월 23일자 1면>



 김정은(27) 후계 구도는 북한에선 급물살을 탔다. 김정은은 지난해 9월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오르면서 후계자로 사실상 확정됐다. 그러면서 북한이 추진한 것이 김정은의 단독 방중이다. ‘김일성 생일(4월 15일) 직후’ 등 구체적 일정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의 단독 방중은 이뤄지지 못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은 “중국 지도부 내 일각에서 후계자 김정은에 대한 냉랭한 기류가 감돌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김정은이 김정일과 맞먹는 수준의 경호·의전을 요구하자 “2인자로서의 직위도 갖지 못하고 어리다”는 등의 이유로 중국이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의 장쩌민과의 양저우 회동은 김정은 후계 안착을 위해 장쩌민의 파워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베이징 소식통은 전한다.



 김 위원장의 양저우 방문은 또 다른 차원에서도 주목된다. 20년 전 김일성-장쩌민 회담은 북한 역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와 소련 붕괴 직후 김일성이 기댈 곳은 중국뿐이었다. 중국 지도부는 당시 김일성에게 개혁·개방을 주문했다고 한다. 김일성의 이 방문을 계기로 북한은 그해 12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에 서명하고, ‘나진·선봉(나선) 자유무역지대의 설치’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의 북한 상황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핵실험과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경제·식량난과 외교적 고립을 겪고 있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합의를 전제로 한 김정일의 방한을 제안했다. 나선 설치도 20주년을 맞는다. 원자바오의 김정일 방중 초청에는 남북대화를 촉진하고, 북한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뜻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대를 이은 양저우 방문의 귀착점은 머잖아 드러날 전망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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