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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추방한 노무현의 삶 … 묘에 그걸 담았다”





봉하마을 묘역 설계한 건축가 승효상







노무현 전 대통령은 “운명이다. 화장해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유서를 남겼다. 2009년 5월 23일 서거 직후 구성된 ‘아주 작은 비석 건립위원회’는 묘역 조성에 고인의 유지(遺旨)를 어떻게 반영할지 고심을 거듭했다. 위원회에 참여해 묘역 전체 공간디자인을 맡았던 건축가 승효상(59·이로재 대표)씨를 지난 10일 서울 동숭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노 전 대통령의 너럭바위 묘. 출처=『노무현의 무덤-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연합뉴스]



-어떻게 묘역 설계를 맡게 됐나. 노 전 대통령과 사이가 각별했나.



 “지지는 했지만 개인적 인연은 거의 없었다. 광화문광장 복원 문제 등으로 두어 차례 뵙고 설명을 드린 정도다. 서거 직후 유홍준(명지대 교수·전 문화재청장)씨가 전화해 ‘작은 비석’을 만드는 위원회에 참여해 달라고 했다. 장례식(영결식·5월 29일) 전날 저녁 내 사무실에서 첫 위원회가 열렸다. 정기용(건축가·올해 3월 11일 타계) 선생도 위원회에 참여했는데, 그는 이미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를 설계한 처지라 묘역까지 맡기를 꺼렸다. 자연스럽게 내가 설계하게 됐다.”



 -묘역 면적이 약 1060평(3505.61㎡)이다. 유서는 ‘아주 작은 비석’이라고 했다. 일부에서 너무 크다거나 고인의 뜻에 어긋난다는 말이 나왔다.



 “묘 자체는 불과 5평(약 16㎡)이다. 나머지는 살아 있는 우리들을 위한 공간이다. 대통령은 ‘아주 작은 비석 하나’라고 하셨지만 아무 자취도 남기지 않는다면 모르되 비석이든 무덤이든 놓이는 한 엄청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 점을 감안했다. 유홍준 교수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라고 표현하더라. 검소하지만 누추해 보이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도 뉴델리에 있는 간디의 묘역 넓이가 얼마인지 아나. 30만 평(약 99만㎡)이다.”



 -권양숙 여사 등 유족들도 의견이 있었을 텐데.



 “내가 고민한 것은 규모보다는 ‘형식’이었다. 평지에 박석을 깔고 내후성 강판으로 벽도 세운다니까 유족들도 아주 낯설었을 거다. 전통적 묘를 생각했을 테니까. 권 여사께서 대단히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 주셔서 감탄했다. 걱정도, 할 말도 많았을 텐데. 권 여사는 공사 중에는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1주기 추모식 때 묘역을 처음 보셨다. 나보고 ‘정말 고맙다’며 만족해하셨다.”









승효상씨가 2009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의 전체적인 모습을 구상해 스케치한 그림. 출처=『노무현의 무덤-스스로 추방된 자들을 위한 풍경』, [연합뉴스]



 -묘역 조성의 컨셉트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추방한 모두를 위한 풍경’을 염두에 뒀다. 노무현의 삶의 방식이 그랬다.”



 -스스로를 추방한다? 좀 어렵게 들린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권력과 지성인』이란 책에서 지식인에 대해 정의한 게 있다. ‘지식인인 한, 스스로 경계 밖으로 추방하여, 관습적인 논리에 반응하지 않고, 모험적 용기의 대담성에, 변화를 재현하는 것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에 반응하는 자여야 한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바로 그렇다. 그는 ‘어떻게’보다는 ‘왜’를 따졌던 분이다. 노무현은 정치인으로서는 대단히 낯선 존재다. 친숙함에 대해 계속 반기를 들고, 스스로 낯설어함으로써 따지고 되묻고, 옳으면 실천하고 아니면 다시 반기를 드는 사람이었다. 친숙해지면 더 이상 지식인이 아니다. 스스로를 객관화해야 한다. 노무현이 그랬다. 사실 건축가도 그렇게 돼야 하는데….”



 -스스로도 그런 지식인이 되려고 노력하나.



 “항상 시각을 달리하려고, 나를 타자화(他者化)·객관화하려고 훈련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이 나에게 지식인상(像)에 대해 물으면 ‘속에 작은 분노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분노거리를 만들어라’고 말한다. 그래야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으니까.”



 -묘역에 박석을 깔자는 아이디어를 냈다는데.



 “박석에 글을 새겨 깔되 돈을 받고 팔자고 제안했다. 박석 한 개에 5만원씩 받기로 하고 1만 개를 준비했는데 며칠 안 돼 다 팔려 나갔다. 홍보도 안 했는데. 참여하지 못한 분들의 항의가 빗발쳐 5000개를 더 마련했다. 박석 값만으로 공사비의 절반을 충당했으니 나도 꽤 기여한 셈이다.”



 -묘역 설계비는 얼마나 받았나.



 “무료로 했다. 나중에 권 여사님이 금일봉을 주셔서 정말 감사히 받았다.”



 -금일봉은 얼마였나.



 “(웃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지금 살아 있는 분들 중에서 사후에 무덤을 만들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



 “누구든 부탁해 오면 하겠다. 단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은 빼고.”(그는 그 전직 대통령에 대해 “구태여 이름까지는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종합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에서 승효상 대표와 나눈 대화를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QR코드 리더기를 작동시킨 뒤 화면 중앙 네모 창에 QR코드를 맞추면 동영상이 뜹니다.



 -돌아가신 분 중에서는.



 “기회만 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를 하의도에 새로 만들어 드리고 싶다. 국립묘지와는 진정성이 다를 것이다.”



 -건축가로서 상도 많이 받았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영구 소장될 정도로 해외에서도 유명하다. 가장 걸작으로 자부하는 작품은.



 “…없다. 그동안 실수도 많았고 창피하다. 제일 가기 싫은 게 내 작품 준공식이다. 다 허물고 싶을 때도 있다.”



글=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승효상=1952년 부산 출생. 경남고, 서울대 건축과를 거쳐 오스트리아 빈공대에서 공부했다. 김수근(1931~86)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건축을 익혔다. 양덕성당·경동교회·수졸당 등 많은 작품들로 호평받았고, 파주 출판단지 1단계 조성사업 코디네이터로 활약했다. 현재 건축사무소 이로재 대표. 2011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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