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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싸우며 쓴 1200쪽, 손·발톱도 빠졌다





5년 만의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들고 돌아온 최인호



소설가 최인호씨의 새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현대소설이다. 정체성 혼란을 겪는 금융회사 직원 K가 2박3일간 방황 끝에 자아를 찾는 얘기다. 최씨는 “세월의 순리에 따라 역사소설, 종교소설 등을 많이 썼지만 내 소설의 본령은 현대소설”이라며 “암에 걸렸기 때문에 이번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여백미디어 제공]





소설가 최인호(66)가 돌아왔다.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여백미디어)를 들고서다.



우리 시대 베스트셀러 작가인 최씨는 2008년 5월 덜컥 암에 걸렸다. 침샘 부근에 탈이 났다. 다시 그의 빛나는 작품을 볼 수 있을지, 걱정하는 소리가 컸다.



하지만 그는 초인적 의지로 번듯한 소설 한 권을 내놓았다. 지난주 최씨의 소설 원고를 미리 구해 읽었다.



23일 오전 한 시간 동안 그를 전화로 만났다. 최씨의 목소리는 탁했지만 힘이 넘쳤다. 낙천적 성격이 느껴졌다. 그는 자주 웃었다. 그래도 긴 통화는 힘들어했다. 15분 통화하고, 10분 쉬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했다.



 







최씨는 여전히 원고지에 펜을 고집한다.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른다. 서울 작업실에서의 집필 모습.



-건강한 사람은 항암치료의 고통을 모른다. 손·발톱이 빠질 정도로 힘들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그런 와중에 작품을 썼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소설 쓰기란 불가능하다. 엄살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집중적으로 써 두 달 만에 1200쪽을 썼다. 나도 어떻게 썼는지 신기하다. 쓸수록 몰입이 됐다. 내가 병실에 누워 환자 노릇만 한다면 미라와 다를 게 없다. 작가로서 살아있음을 노래하는 방법은 글쓰는 것뿐이다. 화가라면 그림 그리고, 발레리나라면 춤을 췄겠지. 글 쓰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 더 어려운 것 같다. 내 생명을 노래한 것이다. 억지로 쓰려고 했으면 안됐을 것이다.”



 -의사가 말리지 않았나.



 “물론이다. 아는 신부님도 말렸다. 하지만 나는 글 쓰지 않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한다. 생명이 있을 때 노래하는 것이다. 꽃이 눈치 보고 피나. 새가 박수 쳐 줘야 노래 부르나.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이 뭐냐고 물으면 이번 작품이라고 답하겠다. 엄동설한에 매화꽃이 핀 것 같다. 그래서 요즘 기분이 좋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썼다. 전체 판매량은.



 “내가 ‘피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어선지, 이번에 무지무지하게 아프며 생각해 보니 뭘 그렇게 많이 썼나 싶더라. 자기 작품 얼마나 팔렸다고 얘기하는 작가 볼 때마다 뭘 그런 걸 세고 있나, 영향력 있는 작가라는 거 드러내려는 건가,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한 번 따져봤다. 모두 합쳐 한 1000만부 이상 팔리지 않았나 싶다. 참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 느꼈다.”



 -작품 얘기를 해보자. 기존 작품들의 매력적 요소가 조금씩 들어 있는 종합판 같다. 초기 대표작 ‘타인의 방’처럼 견고하던 일상에 갑작스런 균열이 온다. 주인공 K의 시니컬한 시선은 중편 ‘무서운 복수(複數)’를 연상시킨다. K가 용산 창녀촌 찾는 장면은 『겨울 나그네』 같다.



 “중국집 주방장과 작가는 직접 나서는 게 아니다. 나는 작품 설명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작품은 완성하고 나면 작가의 것이 아니다. 좋은 작품이라면 비난에도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고, 나쁜 작품이라면 일시적인 칭찬에도 곧 죽어버릴 것이다. 종교적인 비유를 한다면, 붙잡힌 예수에게 사람들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냐고 묻자 한 율법학자가 내버려두라고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다시 살아날 것이고, 사기꾼이면 죽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성적인 묘사가 자주 나온다. 과거 이우범 화백과 짝을 이뤄 중앙일보에 연재한 『적도의 꽃』 같은 작품을 연상시킨다.



 “성적인 요소는 이번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한 90% 정도,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쓰게 되더라. 섹스는 현대인의 소통과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한 400쪽쯤 썼을 때 자꾸 성적인 이미지가 떠올라 영적인 지도신부이자 재불(在佛) 화가인 김인중 신부께 여쭤봤다. 내가 가톨릭 신자이고 이렇게 아픈데 왜 그런 이미지가 자꾸 떠오르는지 모르겠다고. 작품 설명을 듣더니 신부님께서 ‘예언자적인 작품이군요’ 하시더라. 그래서 용기를 얻었다. 이번 작품에서 세기말적 풍경을 그려보고 싶었다. 지진이 주요 테마 중 하나인데 희한하게도 집필을 끝내고 나니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요즘 세상을 한 번 봐라. 정의란 이름 아래 수백 만 마리의 소·돼지를 살처분한다. 뉴욕의 빌딩이 무너졌고, 빈 라덴을 쏴 죽였다. 최근 저축은행 사태는 비극 중에 비극이다. 이런 죄악이 각종 명분으로 치장된다. 나는 소설에서 그런 것들을 ‘아름다운 죄’라고 표현했다. 죄는 죄일 뿐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죄 때문에 세상이 시든다.”



 -소설이 빨리 읽힌다. 문장이 군더더기가 없다.



 “작가 특유의 문장은 바뀌지 않는다. 작품마다 거기에 맞는 문장이 있을 뿐이다. 나는 장편 『길 없는 길』의 문장을 좋아한다. 이번에는 짧은 문장으로 쓰고 싶었다. 작가는 항상 뾰족한 글씨를 밟고 서 있어야 한다. 가장 뾰족한 연필이 가장 가는 금을 그린다.”



 -문장철학이 있다면.



 “친하게 지내는 배우 안성기가 하루는 ‘형님, 제 연기가 요즘 자꾸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라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랬다. ‘좋은 연기 하려고 하지 마라. 거짓 없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라. 그러면 좋은 연기는 자연적으로 나온다.’ 작가도 마찬가지다. 만년필에 파란색 잉크 넣으면 파란 글씨 나온다. 머릿속이 거짓말로 차 있다면 거짓된 글이 나온다. 굉장히 도덕선생 같은 얘기지만 실제로 그렇다.”



 -옛날 얘기 좀 묻고 싶다. 예전에 평론가 김현과 결별한 후 문단과도 불편해진 것으로 아는데.



 “내가 문단에서 퇴출된 게 아니라 스스로 탈퇴한 거였다. 데뷔 초기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스물일곱에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진 『별들의 고향』을 쓰자 반응이 엄청났다.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현대적 성인동화’라며 극찬했다. 한데 당시는 상황이 좋지 않을 때다. 유신 때다. 내 작품이 정권의 눈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업주의 호스티스 문학이라며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어느 날 평론가 김현이 그러더라. 나 때문에 출판사 입장이 곤란하게 됐다고. 당시 나는 문학과지성사의 대표적인 작가였다.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곧 문단에서 탈퇴했다. 나는 체질적으로 어디 소속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반체제가 아니라 ‘비체제’다. 헤밍웨이가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문단이 작가의 고독을 일시적으로 달래줄 수는 있지만 작품을 쓰는 데는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당시 내 철학이 그랬다. 내가 보기에는 문단은 요즘도 주식동향 살피는 주식거래소 같다. 권력이 있고 먹이사슬이 있다. 당신에겐 미안하지만 작가는 신문사 문학담당 기자와 우정을 쌓을 필요가 없다. 나는 젊은 작가 중 김연수나 김영하를 좋아한다. 그들에게 그런다. 절대 비교급은 되지 말고 최상급이 되라고. 나는 좋은 작가 만나면 처음에는 닮은 인형을 만들어 바늘로 찌르다가 나중에는 업어주고 싶다. 국내에는 업어줄까 말까 고민 중인 작가가 몇 있다. 요즘은 중국작가들이 좋다. 쑤퉁(蘇童)을 만나면 업어주고 싶다. 일본의 하루키는 좋은 작가가 아니다. 약간의 국제적 감각은 있는데 치열한 작가는 아니다. 본 받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몸 상태는.



 “암 걸리기 전까지 나는 아파 본 적이 없다. 재수 없는 사람들이 병원 간다고 생각했다. 입원하고 나서 어린아이들이 아픈 거 보고 슬퍼서 운다. 내가 대신 아프고 싶을 정도다. 독일 시인 릴케의 시 ‘엄숙한 시간’ 중에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우는 사람은/까닭없이 이 세상에서 우는 사람은/내가 슬퍼 울고 있다’라는 대목이 있다. 성경에서도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모두 진리다. 아픈 환자가 있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이 건강을 노래할 수 있는 거다. 멋있게 얘기하는 거 아니다. 나는 지금 수도원에 피정 와 있다. 평생 여기서 매 시간 노래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찌 보면 비생산적인, 웃기는 짬뽕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 세상 어딘가에서는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는 거다. 절대 남에게 불쌍해 보이면 안 된다. 환자가 스스로에게 연민을 가지면 안 된다. 암이나 감기나 똑같다. 그리고 기뻐해야 한다. 내가 걱정한다고 병이 낳는다면 24시간 걱정하겠다. ”



 -『길 없는 길』 등 중앙일보에 소설을 다섯 번이나 연재했다. 병이 나으면 또 할 생각 있나.



 “고맙다. 하지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지금 이순간이 있을 뿐이다. 신이 허락한다면 하고 싶다. 그때는 원고료 많이 내라.”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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