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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지급불능 상태 … 구제금융 효과없다”





서울 온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국가경제위원장 인터뷰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로런스 서머스(57) 전 미국 국가경제위원장의 이력은 화려하다. 재무장관, 하버드대 총장, 국가경제위원장을 지냈다. 올해 초 돌연 그가 공직을 떠났다. 하버드대 교수로 복귀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자리를 원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서란 소문이 무성했다. 그가 경제포럼 참석차 서울을 찾았다. 떠나기 하루 전인 22일(일요일) 오후 중앙일보가 그를 단독으로 만났다. 몇 마디 수인사를 주고받은 뒤 다짜고짜 물었다.



 -갑자기 국가경제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백악관 내 권력다툼 결과였나.



 “결코 권력다툼은 없었다. 내가 2009년 초 국가경제위원장 자리를 맡을 때 ‘공직은 2년 정도만 더 하겠다’고 생각했다. 국가위기 상황이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요청해 위원장을 맡기는 했다.”



 서머스는 인터뷰 시작부터 ‘권력 투쟁’이란 표현이 등장하자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표정을 다시 잡고 차분하게 답변했다.



 -스스로 물러났다는 말인가.



 “그렇다. 애초 오바마 대통령에게 ‘2년 이상 위원장 자리를 맡을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2010년 8월엔 ‘새해(2011년)엔 하버드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가능한 한 오래 머물러 줬으면 좋겠다’고 말렸지만 올 1월에 그만뒀다.”



 서머스는 공직에 있는 동안 러시아 채무위기, 아시아 금융위기, 미국발 금융위기를 경험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어떻게 굴러갈지를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인물이다.



 -유럽 재정위기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 것 같은가.



 “내가 유럽 위기를 예측할 처지에 있지는 않다. 나는 최선을 희망하면서 최악을 대비해야 하는 게 위기 대응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시적으로 돈줄이 막힌 문제(유동성 위기)와 갚을 능력을 상실한 상황(지급불능 상태)을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왜 그런가.



 “유동성 위기 순간엔 정부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면 효과적이다. 반면 지급능력을 상실한 경우엔 구제금융은 효과가 없다. 유럽의 리더들은 현재 상황이 유동성 위기인지, 아니면 지불능력을 상실한 것인지 체계적으로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그리스는 어떤 상태인가.



 “판단하기 아주 어렵다. 그렇지만 시장은 점점 그리스가 지급불능 상태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스가 지급불능 상태라면 유럽의 구제금융 처방은 효과가 없다. 채무 구조조정(워크아웃) 등이 효과적인 처방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는 유로(euro) 시스템 위기의 도화선일 수 있다. 그리스가 빚을 갚지 못하면 유럽 은행들이 먼저 깊은 상처를 입는다. 이어 신용파생상품 시장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과연 유로 시스템은 이 사태를 견딜 수 있을까. 서머스는 “내가 보기엔 유럽 리더들이 유로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으로 확고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의지만으론 사태를 해결하기 어렵지 않을까.



 “유럽 리더들은 현재 재정적자와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추상적인 원칙을 고집할 게 아니라 실용적 처방을 과감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유럽 정치인들의 리더십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미래지향적이다. 유럽 리더들이 유로 시스템을 지키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길 희망한다.”



 서머스는 유럽 정치리더들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다. 평소 직설적으로 말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긴 했다. 미국 국내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오바마의 2기 경제팀이 꾸려진 지 서너 달 지났다. 누가 중심인가.



 “티머시 가이트너(50) 재무장관이 리더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재무장관을 맡고 있다. 그가 현재 경제팀 리더다.”



 -국가경제위원장이 정책 방향을 결정하지 않는가.



 “분명히 가이트너가 경제팀 리더다. 가이트너는 아주 강단 있고 아주 효율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실용적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분야의 경제정책을 이끌고 있다.”



 -가이트너가 부채한도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 법에 따르면 의회는 정부의 부채한도를 정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현재 많은 사람이 대화하고 타협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부채한도를 지렛대로 사용하고 있다.”



 -백악관과 공화당은 상대를 공격하기만 하지 않는가.



 “상대를 협박하거나 위협해서는 풀리지 않는다. 많은 미국인들은 장기적으로 연방정부의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더 거둬 재정문제를 줄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건강보험 부담을 합리적으로 줄이고 세금체계를 고쳐야 한다. 현재 미국 조세제도엔 세금을 피할 수 있는 허점이 너무 많다.”



 부채한도 문제를 말할 때 서머스는 책상을 치면서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줘 말했다. 그는 마치 국가경제위원장으로서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국가경제위원장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에게 어떤 전술을 조언하고 싶은가.



  “우선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 재정문제를 두고 협박하거나 위협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 의회와 협상의 여지를 넓혀야 한다. 셋째, 재정적자를 줄이고 정부의 수입을 키우는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건강보험 비용을 억제하는 게 급하다. 연방정부 예산 가운데 건강보험 재정이 차지하는 비율은 앞으로 5년 동안 해마다 1%씩 늘어날 것이다.”



 서머스의 조언 가운데 건강보험은 오바마의 현재 정책과 좀 다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 등은 “서머스가 국가경제위원장 시절 건강보험 전면 확대에 반대해 오바마와 충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 쪽은 여전히 건강보험 확대를 수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조언이 오바마나 가이트너의 방침과 다르다는 느낌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이나 가이트너 재무장관 모두 재정문제가 심각한 상태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다. 정부의 재정상태를 놓고 협박하는 전술은 용납할 수 없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재정문제를 놓고 나와 오바마·가이트너의 의견은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서머스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대가로 긴축 처방을 내놓은 중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듯했다.



 -얼마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는가.



 “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뒤에도 서너 차례 한국을 찾았다. 하지만 한국이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한 것이 아주 인상적이다.”



 -한국에선 빈부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어떻게 조화를 찾을 수 있을까.



 “노동자들의 교육기회를 늘리는 데 예산을 더 많이 써야 한다. 그들과 대화하고 협상할 때 공직자는 아주 공정해야 한다. 공개입찰이 아닌 방식으로 큰돈이 되는 프로젝트나 면허를 부자들에게 주지 말아야 한다.”



 서머스는 이렇게 말한 뒤 검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한마디만 더하겠다는 뜻이었다.



 “한국 재벌 지형은 98년 이후 많이 바뀌었다. 많은 재벌이 사라졌다. 지배구조도 개선돼 외부 투자자의 의견이 경영진에 전달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재벌들의 대마불사(too large to fail)는 여전히 큰 문제다.”



강남규 기자



◆로런스 서머스= 1954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났다. 16살에 MIT에 들어갔다. 박사학위는 하버드대에서 받았다. 미 재무부 부장관 시절인 98년 티머시 가이트너(당시 국제담당 차관)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배후에서 한국에 대한 구제금융 작전을 사실상 지휘했다. 70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새뮤얼슨과 7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가 그의 삼촌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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