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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노무현의 ‘정신적 지주’ 송기인 신부





“대선 때까지 말 안하겠다”던 그는
“누가 친노인가, 그런 건 없다”



송기인 신부가 20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에 있는 한옥 자택의 정원을 거닐며 꽃을 쳐다보고 있다. 담장엔 마삭꽃, 정원엔 작약꽃이 가득했다. 정원 곳곳엔 작은 흙 한 줌에도 마거리트나 채송화·장미·수선화가 심어져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밀양=송봉근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에 ‘정신적 지주’라고 부른 사람이 있었다. 부산 지역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렸던 송기인 신부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82년 시작됐다.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피의자의 변론을 송 신부가 노 전 대통령에게 맡기면서다. 그는 86년엔 노 전 대통령에게 ‘유스토’란 세례명을 지어 줬다. 유스토는 ‘정의’란 뜻이다. 정치할 생각이 없던 노 전 대통령에게 88년 13대 총선에 출마할 것을 권유한 것도 그였다. 노 전 대통령의 운명을 바꿔 놓았던 출마 권유였다.



 노 전 대통령 서거 2주년을 맞이해 지난 19일 송 신부를 찾아갔다. 그는 경남 밀양시에서 택시로 30분 더 들어가는 삼랑진읍 용전리에 살고 있었다. 마삭꽃 덩굴이 돌담을 싸고 있는 한옥에서 이날 오후 7시쯤 송 신부를 만났다. 단정하고 고즈넉한 집안 분위기 때문에 생전에 노 전 대통령이 “집 바꿔서 살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기자와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은 채 “인터뷰는 안 한다. 왜 왔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야구 볼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을 테니 조용히 야구나 보다 가라”고 했다. 마침 TV에선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SK의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실제로 야구 중계를 보는 동안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딱 한 번 농담을 했다. 6회 초 롯데 이대호 선수가 1루에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이닝이 끝나자 “잘됐네. 어차피 (몸집이 큰 이대호 선수는) 뛰기 싫었을 텐데”라며 웃었다.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박석(薄石) 묘역에 송기인 신부가 적은 글. 이슬비는 오는 듯 안 오는 듯하면서도 온 세상을 다 적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꽤 오랜 침묵이 흐르고 야구가 끝났다. 다시 한 번 인터뷰를 청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송 신부는 “가 보니 (송 신부가) 벙어리가 돼서 한마디도 못 하더라’고 전하라”고 말했다. 필담이라도 나누자는 말에 “이제 늙어 손이 떨려 필담도 어렵다”며 끝내 사양했다.



 다음 날인 20일 오전 6시30분, 다시 송 신부의 집을 찾았다. 송 신부는 “인터뷰 안 한다는데 계속 그러네”라면서도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침이나 먹고 서울로 돌아가라”고 했다. 오전 8시쯤 아침이 나왔다. 삶은 콩을 간 것에 쑥떡·사과·토마토·은행 그리고 직접 키운 오골계에서 얻은 계란 한 알이 전부였다. 송 신부는 식사 후 정원을 둘러본 뒤 소파에 앉아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송 신부의 말문이 조금씩 열렸다.



 -인터뷰는 왜 안 하려는 것인가.



 “나 자신과 약속했다. 2년 동안 안 하기로.”



 -내년 총선·대선 때까진 말을 안 하려는 건가.



 “(끄덕끄덕) 최소한 그때까진. 진실화해위원장(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을 하면서 언론에 완전히 질려 버렸다.”



 -추모사나 편지라도 써 달라.



 “이번 추도식에서 말 한마디 안 할 것이다. 강연도 안 하고, 글도 안 쓸 것이다.”



 -이슬비가 온다.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의 박석에 ‘대통령님 평화가 이슬비처럼’이라고 쓰셨는데.



 “그러게. 평화가 소나기처럼 온다고 했어야 했나?”



 마침 이날 아침엔 비가 내렸다. 그는 창밖의 비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슬비는 오는 듯, 안 오는 듯하면서 잔잔하게 내리지만 온 세상을 다 적시지 않나.”



 -노 전 대통령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언제 드나.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지금 여기 없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싶어 하겠나. (희미하게 웃으며) 세상은 다 변하는 것이다.”









2007년 청와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오른쪽)과 만난 송기인 신부. [중앙포토]






 -4·27 김해을 보궐선거에서 친노그룹의 조정력 부재로 선거에 졌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송 신부께서 친노 진영의 원로 역할을 맡을 생각이 없나.



 “누가 친노인가. 그런 건 없다. 문재인이나 이런 사람들은 내가 예전부터 알았던 사람이니 지금까지 보는 거지.”



 -그래도 진보 진영에서 신부님께 기대하는 게 있지 않겠나.



 “그런 건 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는 거지. 꼭 내가 안 해도 되는 것이다. (한참 침묵 후) 세상은 더디지만 변화하고 있다. 내가 못하면 후배가 하는 것이고, 후배가 못하면 또 그 다음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할 수도, 다 바꿀 수도 없다.”



 -노무현 정신을 표방하는 정치인이 많은데 노무현 정신은 뭔가. 그들이 잘 계승하고 있나.



 “노무현 정신은 바로 함께 사는 것이다. 지금 그와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도 다 발전을 위한 과정이다. (손으로 좌와 우 그리고 중간을 그리며) 세상은 정반합으로 가는 것이다. 이제 그만하자.”



 그는 인터뷰를 중단하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앨범을 들고 와 “이거나 보고 가라”고 했다. 앨범에는 노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딱 두 장 있었다.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찍은 기념사진과 노무현재단에서 보내 준 사진 한 장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인이던 시절에 그는 세 가지를 충고한 한 적이 있다. 당시 노 당선인과 아침을 같이하면서 “개혁을 쉬지 마라, 돈 모을 생각일랑 마라, 가족은 특별감옥에다 격리시켰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송 신부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오래전부터 정곡을 찌르고 있었던 셈이다.



 -아까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만난다고 하셨는데.



 “아하, 그런 건 말할 수 없다. 문재인이랑은 가끔 점심을 같이한다.”



 -문 전 실장에게는 야당에서 차기 대선에 출마하라는 요구가 있다.



 “(잠시 침묵하다) 허, 문재인 본인부터가 신통치 않아 하잖아?”



 -본인이 뜻이 없는데 주변에서 자꾸 부추긴다는 건가.



 “몰라, 난.”



 -권양숙 여사도 가끔 만나나.



 “권 여사도 가끔 뵙지.”



 정치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꺼냈다. 종전과 달리 말수가 확 늘었다. 그는 스스로를 ‘시골농부’이라고 불렀다. 그의 집 작은 텃밭엔 쪽파·상추·배추 등이 심어져 있었다. 닭장에선 오골계 8마리가 ‘꾸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고, 집안 연못엔 잉어가 10여 마리 헤엄치고 있었다.



 -밭농사가 힘들지 않으시냐.



 “논농사도 짓는다. 쌀농사는 올해가 3년째다. 지난해엔 800평 논에서 쌀 700㎏밖에 못 얻었다. 하하하. 첫해는 노무현재단에서 나와서 오리를 넣어 놨다. 60마리 넣어 놨는데 나중에 16마리가 남아 있더라. 안 되겠다 싶어 지난해 우렁이를 한 가득 넣어 놨더니 오소리가 와서 다 잡아먹더라. 울타리를 쳐놔야 오소리가 못 오는데 몰랐다. 그러나 울타리는 치지 않을 생각이다.”



 -꽃 중에 특별히 아끼는 꽃은.



 “(활짝 웃으며) 마삭꽃이다. 그게 온 동네에 향기를 풍긴다. 그래서 우리 동네 ‘갑장(동갑내기)’이 ‘좋은 향기가 우리 집까지 날아온다’고 좋아하기에 향기 값을 내라고 했더니 지난해 쌀 두 가마니나 주더라. 쌀 두 가마니짜리 향기다.”



 -신부님에 대해 ‘차가운 따뜻함’이란 수사가 붙는다.



 “(슬며시 웃으며) 그런가 부지 뭐.”



 낮 12시가 다 돼 가자 송 신부는 “할 일이 있으니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가끔 이웃이 집 밖에서 ‘갑짱~’ 하고 부르면 ‘소주~’ 라고 답하고 한 잔씩 하는 걸 낙으로 산다. 이렇게 살고 있는 사람을 언론에서 귀찮게 하면 되느냐”면서다. 그는 대문 앞까지 기자를 배웅 나왔다. 기자에게 연방 “(말을 많이 안 해) 미안하다”며 기자가 골목길을 다 돌아 나올 때까지 마삭꽃 덩굴 사이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밀양=김경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유스토’ 세례명 주고 노무현 정치입문 권해

송기인 신부는




1938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원예고와 가톨릭대를 나와 72년 사제로 서품을 받았다. 70년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창립 멤버로 활동하며 박정희 정권을 향해 유신 철폐와 민주 회복을 요구했다. 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열렸던 3·1 민주구국선언에도 참여했다. 부산인권선교협의회장·부산민주시민협의회장 등을 지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인사 중 하나로 꼽혔다. 참여정부에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05년 사목(司牧)직에서 물러난 뒤 조선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인 김범우의 묘가 있는 삼랑진읍 용전리에서 ‘능참봉’을 자처하며 지내고 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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