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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빈 라덴의 죽음과 ‘문명의 충돌’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지난 5월 2일자의 칼럼인 ‘문명의 충돌과 열린 문화’가 나갔던 바로 그날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었다. 물론 우연의 일치다. 그의 격렬한 삶과 처참한 죽음에 대해서는 수많은 평가와 논평이 이어지겠지만 역사의 한 장(章)을 마감하는 상징성을 지닌 죽음이기에 우리에게 연상되는 몇 가지 시대적 과제를 짚어 보기로 한다.

 빈 라덴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반응으로는 우리말 고유의 표현인 ‘딱하다’는 의미로 함축될 수 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자연의 힘, 타고난 운명을 한사코 거역하고 스스로 파멸의 길을 택하는 주인공을 희랍의 비극에선 영웅으로 추대하기도 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때로는 추구하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빈 라덴을 비극의 주인공보다는 딱한 반항아로 보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비롯된다.

 첫째, 빈 라덴의 역사관은 미래를 향한 개척의지보다는 과거의 영광에 대한 집착이 압도적으로 강했다. 세계는 제국주의시대와 동서냉전시대를 지나 새로운 다극화시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는 끝까지 이슬람의 황금시대를 부활시키고 싶은 복고적 환상을 기반으로 정치적 전략과 행동을 기획하는 교조적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문명의 충돌을 예언한 헌팅턴의 이론을 빈 라덴은 그가 지향하는 이슬람세계의 영광을 되찾는 유일한 길이라 믿고 이의 실현을 위해 총력전을 추진하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연출한 격이 되었다. 둘째, 1989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군 축출, 1990년 이라크 침공으로부터 쿠웨이트를 방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미국을 새로운 제국주의시대의 개막을 주도한 세력으로 간주하고 그에 대한 폭력적 공격, 즉 테러리즘을 결심한 빈 라덴의 판단이 이성적이기보다는 좌절과 절망이 뒤섞인 비이성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빈 라덴의 죽음이 문명의 충돌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물론 아니다. 서구와 이슬람 문명 간의 충돌을 반영하는 사건들은 연일 세계뉴스의 앞머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빈 라덴의 죽음은 2001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폭파로부터 시작되어 전쟁 수준까지 도달했던 테러시대를 한 고비 넘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폭력을 동원한 혁명이나 반란에는 격렬하고 상징적인 지도자가 있게 마련이다. 빈 라덴은 문명의 충돌이란 차원에서 그 역할을 담당했다. 아랍권을 휩쓸고 있는 재스민혁명, 즉 봇물 터진 민주화의 물결이 마침 빈 라덴의 죽음과 때를 같이함으로써 문명의 충돌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과연 21세기 지구촌에서 문명의 충돌은 역사의 필연인가, 아니면 피할 수 있는 선택인가라는 근원적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난 100년 제국주의시대와 냉전시대를 지나 보내며, 특히 시장과 정보의 급격한 세계화가 대중을 중심적 권력자원으로 부상시키면서 모든 사회와 국가는 경제성장과 복지향상, 민주화,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 확립이란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떠안게 되었다. 그 과제 가운데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서구문명의 산물로서 비서구사회가 세계화 흐름에 잘못 휩쓸리다 보면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극단적 입장에 섰던 것이 빈 라덴이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대한 그의 입장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이슬람문명을 파멸로 이끈다는 확실한 소신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유일신 신앙의 뿌리는 물론 발상지도 같은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이지만 그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세 문명 간의 역사는 극렬한 충돌로 점철되어 왔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랍민주화의 파장이 역사적 계기가 되어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는 동력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편 교조적 신앙과 배타적 문화의 전통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동아시아는 지구촌시대에 걸맞은 포용적 자세를 가다듬고 이를 전파하는 데 앞장설 수 있을는지 또 이를 가능케 하는 문화적 정체성, 민주주의의 제도화, 복지향상을 보장하는 경제성장을 연계시키는 데 모범을 보일 수 있는지가 우리 시대의 문명사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를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선결조건은 유교문화의 전통을 공유한 한국·중국·일본, 그리고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이면서도 종교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가 스스로 개척하는 열린 문화에 대한 자신과 믿음을 갖추는 일일 것이다.

이홍구 전 총리·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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