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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경영] 제 2화 금융은 사람 장사다 (21) 33번째 후발주자의 서러움





“하나은행에 뭐하러 가느냐 은행이 아니라 신탁회사인데…”
남들이 안 하는 상품개발 …‘솔로몬신탁’ 히트시켜 설욕



하나은행은 국내 33번째의 후발은행으로 출발했다. 당시 하나은행은 ‘큰 은행보다는 좋은 은행’을 지향했다. 1995년 4월 풍납동지점 개점식에 참석한 윤병철 하나은행장(앞줄 오른쪽에서 둘째).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절대로 하나은행을 위해서 일하지 마세요.”



 하나은행이 1991년 처음으로 뽑은 대학생 신입사원 50명 앞에서 나는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긴장한 채 듣고 있던 신입사원들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이어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웅성거림이 일었다.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 중에 고교를 졸업하고 의과대학에 가고 싶었는데 주위에서 상과대를 가라고 해서 간 사람 손들어 보시오. 대기업에 들어가서 국제적으로 마케팅 일을 하고 싶었는데 외국 가면 안 된다고 주위에서 말려서 여기 온 사람 손들어 보시오. 하나은행은 33번째로 새로 생긴 은행이라 지금 꼴찌인데 열심히 일해서 불쌍한 하나은행을 내 손으로 키우고 그래서 직원들 월급도 올려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온 사람 손들어 보시오. 지금까지 아무도 손든 사람이 없는데 그럼 여러분은 뭣 때문에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거요? 결국 여러분은 좋은 은행원이 되고 싶어서 여기 온 것 아닙니까. 여러분 바람대로 좋은 은행원이 돼야 하니까 지금부터 은행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좋은 금융인이 되도록 노력하세요.”



  신입사원들 각자가 좋은 행원이 된다면 그 사람은 유능하다고 소문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은행에서 “월급을 더 올려주겠다”며 스카우트하려고 들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은행장이 할 일은 분명해진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직원을 붙잡기 위해 월급과 직급을 올려주고 더 잘해주는 것, 그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은행 전환을 앞둔 시점, 한국투자금융 직원은 남녀 합쳐 200명 정도였다. 은행을 경영하기엔 그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당장 500명이라도 충원해야 했다. 무엇보다 유능한 사람들을 시급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러 은행에서 가장 좋은 사람들을 지목해 리스트를 만들었다.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접촉을 시도해 은밀하게 스카우트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정말 우리가 필요한 사람을 설득하느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 스카우트 과정에서 경쟁사와 갈등을 빚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대신 씁쓸한 기분을 맛봤다. 하나은행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사람들이 다니던 은행에 사표를 내자 상사들이 “하나은행에 뭐 하러 가느냐? 2, 3년만 있으면 합병돼서 없어질 은행이다. 하나 마나 한 은행이다”고 했던 것이다.



 사실 후발은행으로선 시장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91년 당시 은행권의 금리는 아직 완전하게 자유화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느 은행이건 상품 이름만 달랐을 뿐 금리는 비슷비슷했다. 규모가 작고 인지도 또한 낮은 하나은행에는 매우 불리했다.



 당시 미국계 씨티은행은 수익성 높은 신탁상품인 ‘수퍼 신탁’을 개발해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예금과 대출 업무를 중시해온 국내 은행들은 신탁상품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겼다.



 신탁상품에 대해선 우리가 자신이 있었다. 한국투자금융 시절부터 20년간 어음할인 업무를 하면서 기업의 속사정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씨티은행의 ‘수퍼 신탁’만은 반드시 따라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은행은 자체적으로 ‘솔로몬신탁’을 개발했다. 95년 2월 선보인 솔로몬신탁은 국내 최초로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상품이었다. 이런 절세효과 덕분에 1억원 이상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솔로몬신탁은 크게 히트를 쳤다.



 다른 은행들은 “하나은행이 저렇게 출혈경쟁을 벌이다간 곧 망하게 될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저건 은행이 아니라 신탁회사”라는 손가락질도 받았다.



 관행을 깨는 곳엔 논란이 따르기 마련이다. 출시한 지 석 달 만에 재무부가 갑자기 솔로몬신탁에 대해 판매중지 결정을 내렸다. 채권만 편입하는 특정금전신탁은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 안 된다는 유권해석을 뒤늦게 번복한 것이다. 재무부를 설득하고 설득한 끝에 솔로몬신탁은 판매중지 2개월 만에 다시 판매가 허용됐고, 판매 1년 만에 4000억원의 자금을 모으는 큰 성과를 올렸다.



 솔로몬신탁을 판매한 지 몇 달이 지나자 조흥·한일·제일·서울·국민·신한은행 등 거의 대부분의 은행이 신탁상품을 앞다투어 출시하기 시작했다.



 33번째 후발주자로 시작한 하나은행이 금융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며 훗날 선도은행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관행과 상식을 깨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한 덕분이다.  

정리=한애란 기자  

윤병철 전 우리금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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