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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향신료









프랑스 요리가 질적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치(1519~1589)가 프랑스 국왕 앙리 2세(1519~1559)의 부인이 된 1533년의 일이다(심순철, 『프랑스 미식기행』). 이때 카트린이 데려온 요리사들이 피렌체의 요리기술을 프랑스의 요리사들에게 전수하면서 ‘식탁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프랑스 최초의 요리책 『르 비앙디에』의 저자인 기욤 티렐(필명 타이유방 : 1310~1395)은 샤를 5세와 6세의 전속 요리사였다. 그의 요리 특징은 향신료를 많이 쓰고 지방을 적게 쓰는 것이었다. 향신료(香辛料)는 맵고 향기가 난다는 뜻으로서 오신(五辛) 또는 오훈(五葷), 훈채(葷>菜)라고도 불렀다. 부추[韮]·염교[薤]·파[蔥]·마늘[蒜]·생강[薑]이 오신인데, 겨자 등을 넣기도 한다.



 홍만선은 『산림경제(山林經濟)』의 『향신료 만드는 법(造料物法)』에서 향신료를 손쉽게 만드는 법을 설명한다.



 “마근(馬芹 : 미나리)·후추[胡椒]·회향(茴香)·건강(乾薑 : 말린 생강)·관계(官桂 : 계피)·천초(川椒 : 산초) 등을 따로 가루로 만들었다가 물에 반죽해 환(丸)을 만든다”는 것이다. 홍만선은 “쓸 때마다 부수어서 냄비에 넣는데, 여행할 때 더욱 편리하다”고 전한다.



 향신료는 처음 맛들이기는 어렵지만 한번 빠지면 여행 때도 휴대해야 할 만큼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는 안자(顔子)가 공자에게 “저는 술도 마시지 않고 훈채(葷菜)도 먹지 않으니 재계(齋戒)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그것은 제사 때의 재계이지 마음의 재계(心齋)가 아니다”고 답한다. 공자는 “오직 도는 빈 데에 모이니, 텅 빈 것이 마음의 재계이다(唯道集虛 虛者心齋也)”라고 답하는데 향신료를 먹지 않는 것을 수양의 하나로 쳤다.



 허균은 『한정록』의 섭생(攝生)조에서 수양법에 대해 적으면서 “모든 병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항상 오신을 먹지 마라”고 충고하고 있다. 과거 입춘날에 오신채(五辛菜)를 나물로 만들어 먹는 것으로 봄을 맞이했다. 두보(杜甫)는 시 『입춘(立春)』에 “입춘날 봄 소반엔 생채가 보드라우니/두 서울(장안과 낙양)의 전성기가 홀연히 생각난다(春日春盤細生菜/忽憶兩京全盛時)”고 읊었다. 『미슐랭 가이드 한국편』이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간 조상들이 남긴 음식문화를 체계화하는 데 소홀했다. 이 책 출간이 한국 요리 세계화의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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