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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시장은 공룡들이 펼치는 ‘그들만의 리그’

1 『은밀한 갤러리』(2010)
미술시장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던 2007년 10월 런던 크리스티 이탈리안 세일. 추정가 30만~40만 파운드에 루치오 폰타나 작품 경매가 시작됐다. 50만 파운드에 이르렀을 때 경합자는 두 명이 남았고 경매사의 마술은 이때 시작됐다. 경매사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두 경합자는 홀린 듯 패널을 번갈아 들었다. 한 단계씩 가격이 높아질 때마다 경매장 내 흥분은 고조돼 갔다. 경매사는 현명했다. 말하기 좋고, 기억하기 좋고, 기분도 좋은 100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20억원)에서 경쟁의 종결을 유도했다. 자기 일도 아닌데 흥분으로 얼굴이 벌개진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16> 도널드 톰슨의 『은밀한 갤러리』

함께 박수를 치면서 내 머릿속에는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이 구매는 합리적인 것일까. 갤러리를 통해서라면 추정가 전후의 가격으로 살 수 있는데, 굳이 최고 추정가의 2.5배 이상을 더 주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반대로 썩 괜찮은 작품이 주인을 못 만나 유찰되기도 한다. 경매회사가 신뢰를 얻은 것은 가격을 철저히 공개하기 때문인데,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이 합리적이지만은 않다는 모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이 오래된 의문에 『은밀한 갤러리』(리더스북, 2010, 2만원)의 저자 도널드 톰슨은 답한다. 돈이 문제가 되지 않는 부자에게는 “이 작품을 크리스티에서 100만 파운드에 샀다”는 브랜드가 아주 중요하다고. 경매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보여주는 포지션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열망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학이 통용되는 곳이라고.

2 5월 11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3840만 달러(약 416억원)에 낙찰된 앤디 워홀의 ‘자화상’(1963~64).[AP] .
컬렉터이자 경제학자인 톰슨은 알쏭달쏭한 미술계에 뛰어들어 심도 있는 인터뷰를 진행한 뒤 이 책을 썼다. 미술품 거래의 실태와 뒷이야기, 구체적인 숫자가 궁금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매우 유용하다. 저자의 지적대로 문제가 되는 것은 미술시장 자체가 아니라 현대미술 시장이다. 1970년 이후 제작돼 시간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작품들이 초고가에 팔리고 있는 현상이 그의 관심사다. 인상파 이전의 작품들은 공급되는 작품 수가 제한적이며 이미 감당할 수 없는 고가에 이르러 수익을 내기 어렵다.

결국 구입 가능한 것은 동시대 미술품들인데, 이 시장은 불확실하고 위험하다. 미술 전문지나 크리스티·소더비 경매 도록에 등장했던 작가 명단 중 절반은 10년 후 사라진다. 이 불확실성 때문에 현대미술 시장에서는 ‘브랜드가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작품에서 구할 수 없는 신뢰감을 경매회사, 딜러, 미술관, 컬렉터들의 ‘브랜드화’에서 찾는 것이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 거래는 갤러리의 명성에 의존한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 경우에도 유명 컬렉터, 유명 미술관 전시 경력 등으로 ‘브랜드화된’ 작품이 유명 경매회사를 통해 비싸게 팔린다. 수퍼스타 작가, 수퍼 리치 컬렉터, 수퍼 파워 갤러리와 수퍼 경매회사가 만들어내고 수퍼 미술관이 들러리를 서는 머니 게임이 바로 현대미술의 현주소라고 책은 요약한다. “경매장의 망치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그 가격은 작품의 실제 가치로 변하고 그 가치는 미술사에 오래 남을 하나의 기록이 된다.” 결국 시장의 거래가 학문의 영역까지 점령하고 있다는 말이다.

책을 따라 더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현대미술을 움직이는 것은 수퍼 리치 컬렉터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문화후원자로서 역할보다 성공적 투자가로서의 면모를 노골적으로 과시하며 미술품 유통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구찌를 비롯해 이브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을 가진 명품 기업 PPR의 오너 프랑수아 피노다. 그는 1998년 5월 경매회사 크리스티를 인수했다. 2007년 크리스티는 런던·취리히·베를린에 지점을 둔 다국적 갤러리 혼치 오브 베니슨을 인수하고 록펠러센터에 뉴욕 지점을 오픈하며 1차 시장에 진입했다.

2009년 피노는 거액을 들여 베네치아의 푼타 델라 도가나라는 현대미술관을 개관해 자신의 컬렉션의 가치를 높였다. 이로써 피노는 컬렉터, 경매회사, 갤러리, 미술관 등 미술품 유통의 모든 고리를 완벽하게 장악한 공룡이 되었다. 결국 피노의 핵심에는 “어떻게 하면 매출을 올릴까만 생각할 뿐 작가 세계를 발전시킬 궁리는 전혀 하지 않는 이기적인 존재”인 경매회사가 있다. 돈벌이를 위한 유통사업이 갤러리와 미술관이라는 구조를 통해 예술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됐다는 사실은 우려할 만한 이야기다. 더불어 지금까지 미술시장 독점화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지적되던 취향의 쏠림 현상, 취향의 독점화 현상에 대한 우려 역시 점점 커지고 있다.

투자처로서 미술시장의 전망, 그리고 미술시장의 개미들이 취해야 할 행동에 관해 톰슨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미술품 투자가 전체적인 측면에서는 주식의 수익률과 비슷하다고 답한다. 주식시장에는 개미들이 있고 미술시장에는 유명 컬렉터가 사는 작품을 따라서 구매하고자 하는 ‘블루피시’들이 있다. 미술품은 생필품이 아니므로 계속적인 구매 희망자(블루피시)들은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존재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톰슨은 러시아·중국·브라질·인도 출신 컬렉터들의 새로운 유입과 미술관의 세계적인 증가가 미술시장의 안정성을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지적한다. 전 세계적인 현대 미술품 판매액은 호황기 기준으로 연간 180억 달러였다. 저자의 말대로 이것은 “굉장한 수준으로 보이지만 나이키나 애플의 세계 매출” 정도의 수준이며 “월트디즈니의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는 위대한 미술작품보다 돈이 훨씬 더 많다.” 경제 위기를 겪고 나면 바뀌는 것은 부자들의 이름뿐이다. 부는 이동한 것이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개성 있는 컬렉션을 통해 자기를 확인하고 싶은 부자들과 미술관이 늘어나고 있다고 그는 진단한다.

물론 2008년 발간된 이 책은 미술시장 침체 이전의 낙관적인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1990년대의 미술시장 붕괴가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과는 달리 2008년의 위기는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톰슨의 지적대로 컬렉터들의 다국적화가 미술시장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된 것이다.
한편 미술품을 사면서 적어도 손해를 보고 싶지 않다는 대다수의 사람이 있다. 톰슨은 책의 말미에 충고를 몇 마디 하지만, 공룡들이 펼치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개미 혹은 블루피시를 위한 완성된 매뉴얼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이들이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이진숙씨는 러시아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미술의 빅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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