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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와 용서, 우리 식으로 지랄맞게 곰삭혀 보여줄 겁니다”

1 오태석 대표
8월 12일부터 3주간 영국에서 열리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공연 관련 문화축제다. 1947년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매년 클래식 콘서트부터 뮤지컬·연극·오페라 등 모든 공연을 두루 선보인다. 축제 총감독이 그해의 축제 주제에 맞춰 초청한 단체만 공연할 수 있다. 공연 전반에 관한 모든 비용은 축제 주최 측이 지원한다.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초청받은 극단 목화 레퍼터리 컴퍼니 오태석 대표

이 페스티벌에 올해 3개의 한국 공연단체가 처음으로 초청됐다. 그중 하나가 오태석(71) 대표의 목화 레퍼터리 컴퍼니다. 2006년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오태석 연출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본 현 에든버러 축제 총감독이 그에게 “다른 셰익스피어 작품을 하나 만드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오 대표는 “지랄맞은 연극을 하고 싶었”기에 ‘템페스트’를 골랐다.
“우리 극단이 만드는 연극이 좀 지랄맞거든. 지랄맞으니까 복수와 용서를 우리 입맛대로 삭혀 발효시키는 거지.”

‘템페스트’ 공연 모습
어떤 작품이냐는 질문에 그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일관성 있게 설명해주기보다 몽타주처럼 여러 주제를 툭툭 던지는 특유의 연출 스타일과 그의 말투는 무척 닮았다.
“다 얘기해줄 필요가 없어. 무를 설렁설렁 써는 것처럼, 그냥 해도 무맛은 그대로 나. 여태까지 해온 대로 생략, 비약, 즉흥성, 의외성이 강조될 거요.”폭풍을 뜻하는 ‘템페스트’는 원작의 배경이 이탈리아 밀라노와 나폴리다. 동생과 나폴리 왕에게 작위를 빼앗긴 밀라노의 영주가 그 둘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들이 탄 배를 향해 마법을 부려 폭풍을 일으키지만, 결국 나폴리 왕의 아들과 자신의 딸의 사랑을 축복하며 결혼시킴으로써 복수극을 화해로 끝 맺는다.

오 대표는 2010년 국내에서 먼저 ‘템페스트’를 선보였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를 접목시켜 나폴리는 신라로, 밀라노는 가야로 그렸다. 아쟁·해금·대금·피리 등의 전통 악기로 색다른 느낌을 확 살렸다. 배우들의 대사는 우리나라 시조에서 많이 활용되는 3·4조, 4·4조의 운율을 따랐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는 사뭇 다른 오태석만의 ‘템페스트’가 한국 전통 역사와 가락을 입고 다시 태어난 셈이다.에든버러에서 공연될 ‘템페스트’는 이것보다 더 간결해진다. 상대방에게 직선적으로 본론을 말하지 않는 우리나라 어법 특유성을 강조한 대사는 다 긁어낸다. 대신 음률은 더 강조하고, 전통적인 여백의 미와 틈새의 미는 부각한다. 영국 사람들에게 색다른 셰익스피어를 보여주고 싶은 오 대표의 열정이다.

‘템페스트’ 공연 모습
“창호지 바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 같은 거예요. 딱 떨어지지 않는 그 틈새에서 사고의 유연성과 여유, 활력을 보여줄 겁니다. 그걸로 그 나라 사람들 숨 좀 쉬게 할 거예요.” 점심시간 이후부터 지하철이 끊길 때까지 이어지는 대본 연습 중 그는 계속 귀로 듣고 말로 대사를 고친다. 그렇게 바뀌는 대사를 받아 적은 뒤 대본을 새로 정리하고 기억하는 것은 배우들 몫이다. 오 대표의 대본은 까만 펜으로 온통 줄이 그어져 있다. 소리 내 읽어보면서 불필요한 것들을 다듬고 잘라낸 흔적이다. 왜 굳이 말로 하는 대본 작업을 이어가는 것일까. 그는 “한국말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보존하기 위한 나만의 노력”이라고 잘라 대답한다.

“인터넷 정보매체나 휴대전화에 너무 의지하고 있어요. 우리말을 기호화·부호화·약음화시키다 보니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희석돼 가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말하면서 살아가니까 언젠가는 복원이 될 거예요.” 그는 유독 우리 옛날 말에 애착이 깊다. 예를 들어 ‘아치형’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오면 ‘기와 곡선’이라는 말로 바뀐다.

“여인들의 한복 어깨선이 예쁜 건 곱다고 표현합니다. 창호지나 문창살 같은 소품도 공연에서 자주 사용하죠. 그리고 계속 반복해서 얘기합니다.”
이런 단어들을 못 알아듣거나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대번에 일침을 놓는다. “우리의 것을 우리나라 사람이 듣고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반성해야 될 일”이라면서.

그는 전통 운율에 맞춰 주고받는 우리말은 외국인들에게도 반응이 뜨겁다고 들려주었다.
“말도 못 알아들을 텐데, 외국인들이 더 감동합디다. 외국에서 공연하면 우는 사람이 많아요. 언어가 장벽이 되지 않고 재미가 되거든.”

배우들의 몸짓과 목소리 리듬에 맞춰 각자 머리와 가슴속에서 극의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 상상이 극과 맞아떨어질 때 감동은 배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연극은 부채다. “종이에 부챗살을 더하고 그 부챗살을 자꾸자꾸 펼치면 더 큰 부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말에 대한 관심만큼은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는 오 대표에게, 우리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단지 극의 음악성을 높이고 재미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배, 6·25전쟁 같은 커다란 생채기가 생기면서 우리 문화가 너무 훼손되었기에, 이런 근대사의 아픔 이전에 번창했던 우리 극 문화를 제대로 이어가자는 취지다.
“아직도 좌익, 우익 편 가르기를 하죠. 이런 것만 보여주면 젊은 아이들은 이 나라 떠나고 싶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렇지 않다고 얘기해 줘야지. 그 숨결을 이어야 되는 건 너무 당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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