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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 디자인 총괄 나카무라 시로 ‘우리가 BMW·벤츠처럼 럭셔리 카 된 비결’

일본 자동차 회사 닛산의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는 성공한 럭셔리 브랜드로 꼽힌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등 기존 고급 브랜드가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차별화된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인피니티의 성공 뒤에는 나카무라 시로(中村史郞·61) 닛산·인피니티 디자인 총괄 겸 브랜드 담당 수석 부사장이 있다. 그는 닛산과 인피니티 자동차 디자인을 총괄하며, 고객이 차량 구매를 고려하는 순간부터 애프터 서비스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책임지는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Chief Creative Officer)도 맡고 있다. 최근 방한한 그를 만났다.



j Biz
“럭셔리는 국적이 중요하다 우린 ‘일본’ 내세웠다 기모노 머리핀 디자인 땄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인피니티는 럭셔리 자동차 업계에선 후발주자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캐딜락 등 유럽과 미국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이미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뛰어들었다. 1980년대 일본의 3대 자동차 회사는 중저가 이미지를 벗기 위해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를 별도로 운영하는 전략을 택했다. 혼다 자동차의 아큐라(86년 출시), 도요타 자동차의 렉서스(89년)와 닛산의 인피니티(89년)가 차례로 미국 시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 인피니티는 어떻게 탄생했나.



 “‘고성능 럭셔리 차’를 목표로 89년 미국에서 출범했다. 초반엔 지지부진했다. 브랜드 전략이 명확하지 않았던 데다 90년대 닛산의 재정 악화가 겹쳤기 때문이다. 닛산보다 비싼 가격, 가죽시트 정도로 럭셔리가 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럭셔리는 가격이 아닌데 말이다.”



● 그럼 럭셔리는 뭔가.



 “럭셔리는 경험이다. 구매와 소유의 전 과정에서 운전자에게 가치 있는 경험이 자동차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철학과 스토리가 뒷받침돼야 강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나카무라 부사장은 99년 닛산에 합류했다. 그해 르노가 닛산을 인수한 뒤 부임한 카를로스 곤 회장이 ‘닛산 재건 계획’을 추진하면서 그를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영입한 것이다.



● 후발주자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나.



 “인피니티는 일본 차 중에서도 고급 브랜드 시장에 늦게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런 늦음이 오히려 약이 됐다. 후발주자, 즉 도전자였기 때문에 보다 창의적일 수 있었다. 초기 인피니티는 미국 소비자들이 ‘화장품 회사야?’라고 할 정도로 인지도가 낮았다. 자동차는 아시아의 발명품이 아니다. 솔직히 그동안 일본과 한국 자동차 회사는 서양 자동차를 거의 베끼는 수준이었다. 내 고민은 ‘서양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서 어떻게 인피니티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느냐’였다. 나는 그 해답을 일본 문화에서 찾았다. 손님을 극진히 모시고 배려하는 일본 특유의 서비스 정신.”



인피니티는 자동차 업계 선두 업체를 연구하는 대신 페덱스, 포시즌스 호텔, 노드스트롬 백화점 등 각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을 벤치마크 대상으로 삼았다. 지금은 흔해졌지만, 20여 년 전 인피니티가 도입한 리셉션 데스크와 고객 서비스 공간은 진정한 럭셔리를 대변했다.



 인피니티는 디자인에서 ‘일본스러움’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차갑고 기계적인 서양 브랜드와 반대로 좀 더 편안한, 운전자가 환대받는 느낌을 차별화 포인트로 삼았다.



● 일본 특색을 어떻게 반영했나.



 “일본 스타일을 자동차에 있는 그대로 도입하면 너무 낯설어진다. 차는 기본적으로 서양에 뿌리를 둔 물건이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올 땐 그 감성과 철학에서 영감을 얻는 것이다. 문화는 모양이나 문양이 아니지 않은가. 그걸 현대적으로 변환할 줄 알아야 한다. 기존 자동차와 ‘자연스럽게 다른’ 게 핵심이다.”



 지난달 서울모터쇼에서 선보인 컨셉트 카 ‘에센스’의 옆면 통풍부는 기모노를 입을 때 사용하는 ‘간자시’라는 머리 장식품에서, 인테리어 가죽은 일본 전통 칠기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다. 인피니티 M시리즈의 인테리어는 전통 다실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그는 일본 전통미(美)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예로 ‘박스카’의 원조인 닛산 큐브를 꼽았다. 각진 상자 형태의 큐브는 넉넉한 실내공간을 내세워 베스트셀러가 됐다. 닛산의 수퍼카 GT-R은 일본 만화 ‘건담’에서 영감을 얻었다.



 “역동적이라기보다 정적인 컨셉트가 일본 스타일이다. 큐브의 가로·세로 직선 축은 다다미나 처마 선을 연상케 한다. 한국의 유선형 처마와 달리 일본 처마는 직선으로 떨어진다. 일본인은 딱딱한 선과 각을 더 편하게 느낀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낯선 모양이지만, 일본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보여줬다.”









인피니티 전시장은 마치 예술품을 감상하듯 자동차를 둘러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자동차를 사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동차를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서울 강남 전시장(맨 위)은 이 같은 디자인 표준을 인피니티가 진출한 35개국 중 최초로 적용한 곳이다. 한 층에 자동차를 1~3대만 전시하고 나머지 공간은 미술·사진 등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인피니티 M의 인테리어(맨 아래)는 일본 전통 다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 글로벌 브랜드를 추구할 때 출신국을 얼마나 드러내는 게 적절한 마케팅인가.



 “공략하고자 하는 시장에 따라 다르다. 대중 시장을 목표로 하면 출신국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대중 상품은 품질과 모양, 가격이 좋으면 그만이다. 브랜드의 유산(heritage)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는 국적, 원산지가 중요하다. 럭셔리 상품은 비용에 비해 가격이 월등히 높다. 그 간극을 메우는 게 무형의 가치다. 그 가치를 제대로 소비자에게 전달해야 럭셔리가 된다. 당연히 내력이 중요해진다.”



● 대중화에 성공하고 이젠 럭셔리 시장을 공략하려는 기업에 조언해 달라.



 “타 브랜드와 명확하게 차별화되는 상품을 가져야 한다. 럭셔리는 상품 자체를 말하진 않지만, 상품 없이는 시작할 수 없다. 인피니티의 경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인 FX 시리즈가 그런 상품이었다. 그 이전에는 럭셔리 브랜드에 크로스오버 SUV 차종이 없었다. 인피니티가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강력한 상품이 있어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 일본식 ‘배려’를 디자인에 어떻게 반영하나.



 “디테일에 공을 들였다. 닛산 본사에는 ‘상호작용 디자인’팀이 있다. 기계와 사람의 상호작용을 연구해 디자인에 반영한다. 한 예로, 주차장에서 장시간 머물며 관찰해 보니 차 문을 열 때 남성은 주로 한 손을 쓰지만 여성은 양손을 쓰더라. 손 힘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노약자도 해당된다. 그래서 오른손이나 왼손 어느 쪽으로 열어도 쉽게 열 수 있는 손잡이를 고안했다.”



 운전자의 사소한 고민을 덜어주기도 한다. 자동차 표면에 흠집이 나면 페인트가 자동으로 덮여 복원되는 ‘스크래치 실드(scratch shield)’ 기술을 개발해 인피니티 모든 차종에 적용했다. 기계적인 품질이 아닌 ‘감성 품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인지 품질’ 부서도 운영한다. 좋다고 느끼는 촉감, 온도, 습도 등 감각을 연구한 결과 사람 피부와 비슷한 촉감과 지문 모양과 비슷한 표면을 가진 합성피혁을 개발하기도 했다.



● 닛산·인피니티 디자인의 강점은.



 “다양성이다. 닛산은 일본 가나가와현 본사에 있는 디자인 센터와 도쿄의 ‘크리에이티브 박스’를 비롯해 미국 캘리포니아, 영국 런던, 중국 베이징에 디자인 센터를 두고 있다. 다섯 곳에서는 다양한 국적의 디자인 인력 900여 명이 일한다. 한국인도 10명 이상 있다.”



● 한국 디자이너들을 평가하면.



 “정서가 풍부하고 다이내믹한 감각이 발달했다. 일본 디자이너들은 정적이면서 디테일에 강하다. 각국 디자이너들이 가진 서로 다른 재능을 적절히 버무려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게 닛산 디자인의 강점이다.”



● 좋은 자동차 디자인이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디자인이다. 동시에 회사에 수익을 가져와야 한다. 아무리 디자인이 근사해도 자동차가 팔리지 않으면 사회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협력회사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 디자인이란 그런 것이다. 내게 자동차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친환경이 화두인 상품이 아니라 계획한 만큼 반드시 팔아야 하는 제품이다. 디자인은 반드시 비즈니스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 효율성과 스타일이 충돌하는 경우의 해법은.



 “둘은 언제나 충돌한다. 디자인이란 그 사이에서 최상의 균형과 최적화된 해결책을 찾는 일이다.”



● 향후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직면하게 될 도전은 뭘까.



 “친환경, 고유가 같은 과제는 얼마든지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 가장 어려운 건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브랜드가 많이 생겨나고, 시장에 플레이어가 점점 늘어난다. 중국·인도·러시아 등지의 자동차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런 과밀한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는 디자이너들에게 달려 있다.”



● 한국 자동차 디자인을 어떻게 보나.



 “일본 업체들과 같은 수준에서 경쟁하고 있다. 디자인과 퍼포먼스 등 제품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와 있다. 다만 럭셔리 분야에서는 브랜드를 구축하고 브랜드 경험을 쌓는 게 필요할 듯싶다.”



●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조언해 달라.



 “ 사람에 대해, 사회와 문화에 대해 뭐든지 호기심을 가져라. 자기와 다른 사람, 다른 사회에 대해 마음을 열고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사람을 알지 못하면 자동차 껍데기 디자인에 그치게 된다.”



 나카무라 부사장은 어려서부터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꿨다. 또래 남자 아이들처럼 자동차와 기차를 좋아했는데, 갖고 노는 것보다 그리기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적 명문인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아트센터 디자인대학에 유학했다. 이스즈의 유럽·미국 디자인팀장과 GM 디자인 스튜디오를 거쳐 영어가 유창하다.



● 당신의 ‘드림 카’는 뭔가.



 “나만을 위한 차. 30년 넘게 차를 디자인했지만 나를 위한 차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언제나 머릿속엔 브랜드, 고객, 회사 생각으로 가득했다. 은퇴 후 나만을 위한 차를 만들 거다. 아주 단순하게.”





동양화처럼 선·여백 중시하는 인피니티











‘모든 것(디자인)은 하나의 선에서 시작한다(It all starts with a single line).’ 일본 가나가와현에 있는 닛산 글로벌 디자인센터에는 이런 문구가 걸려 있다. 나카무라 시로 닛산·인피니티 디자인 최고책임자 겸 브랜드 담당 부사장의 디자인 철학이다. 선과 여백을 중시하는 동양화 기법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그는 자동차를 디자인할 때 붓으로 하나의 선을 먼저 그리면서 시작한다고 한다. 이런 동양적 감성을 반영한 디자인으로 인피니티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 성공했다. 아래 사진은 그가 붓으로 그린 ‘루프 라인’과 해당 인피니티 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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