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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자전거 도둑 2011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로마는 물질적·정신적으로 극심한 황폐를 경험했다. 고대 제국 시절의 찬란한 영광과 당당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거리의 민심은 매우 각박했고 살벌하기조차 했다. 하루하루 먹을거리 해결을 위해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대로에 넘쳐났다. 안토니오도 가족들을 위해 일감을 찾아나섰다. 간신히 벽보 붙이는 일을 구했다. 이를 위해 안토니오에게 꼭 필요한 것은 자전거 한 대였다. 아내 마리아는 남편의 자전거를 구하기 위해 소중히 간직했던 새 침대시트를 전당포에 맡긴다.



 희망찬 첫 출근 아침, 안토니오는 자전거를 도둑맞게 된다. 안토니오와 어린 아들 브루노는 도둑맞은 자전거를 되찾기 위해 하루 종일 시내를 헤맨다. 가까운 친구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교회도 힘이 되지 못한다. 경찰 공권력도 안토니오의 도둑맞은 자전거에 무관심하다.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 도둑을 찾아내지만 잃어버린 자전거를 돌려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좌절과 분노에 싸인 안토니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였다. 안토니오는 결국 그 자전거를 훔치게 된다. 현장에서 바로 잡힌 안토니오와 브루노는 눈앞의 현실에 망연자실한다. 간신히 풀려나 브루노의 손을 잡고 돌아오는 안토니오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없이 흐른다. 1948년 극장에 나온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의 ‘자전거 도둑’ 이야기다.



 정부가 아무 문제없다고 단언했던 부산저축은행이 결국 영업 정지된 뒤 지금까지 밝혀진 이야기들은 매우 충격적이다. 영업정지 바로 전날 밤까지 소위 VIP들은 모두 자신의 예금을 인출해 갔다. 금융감독원 직원들이 너그러운 감독의 대가로 뇌물을 받은 정황도 드러났다. 전직 금융감독원 출신이 부산저축은행을 포함한 금융권 곳곳에 포진해 제대로 된 금융권 감독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왔다고 한다. 순진하기 그지없었던 보통의 개인들이 은행과 정부를 믿다가 소중한 재산을 도둑맞은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질타했고, 검찰이 법적 책임 소재를 캐고 있다. 정부는 금융감독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축은행 금융 피해자들은 물론 보통의 국민도 사태를 수습하겠다는 당국의 진정성에 믿음을 주고 있지 않다. 이 대목에서 자전거 도둑을 찾다가 실패한 뒤 자신이 자전거 도둑이 되고 만 안토니오의 희망 잃은 눈빛이 중첩돼 연상된다.



 국제 과학비즈니스벨트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전 지역 선정 등과 관련해 지역 간 갈등의 조짐이 확산되고 있다. 국무총리까지 직접 나서 이야기했다. 특정 지역이 선정에서 희생된 것은 매우 유감이지만 국가 전체의 미래를 위해 이해해 달라고 한다. 사실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특정 정부사업을 유치해 달라고 먼저 이야기한 것도 아니다. 선거철 정치인들이 한 이야기들이었을 뿐이다. 지역 주민들은 전후 사정도 파악하지 못한 채 약속된 선물에 대해 큰 기대를 가졌을 뿐이다. 그러나 일단 기대가 무너졌을 때는 좌절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 좌절이 지금은 분노의 수준으로 발전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정당과 정치인들의 반응 또한 가관이다. 사업을 유치하는 데 실패한 지역의 단체장·국회의원들은 여당·야당 할 것 없이 모두 몰려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그 진정성이 또한 의심스럽다. 지역과 주민들을 위한 순수한 열정이라고 믿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총선은 일 년 앞으로 다가와 있다. 북 치고 장구 치는 정치권 거대구조의 장단을 배경음악으로 영화 속의 아들 브루노의 눈물이 또한 오버랩된다.



 정부·입법부·사법부는 헌법이 규정한 국가 통치기구다. 국민이 위탁한 통치기구이기도 하다. 통치기구가 통치 능력을 잃을 때 국민의 기본 권익은 사각(死角)에 놓이게 된다. 당장의 물질적 손실 못지않게 큰 것이 국민의 정신적 황폐로 인한 국가 손실이다. 일단 상실된 믿음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국민은 지금 영화 속 로마의 거대하지만 한없이 무심한 콘크리트 벽들의 높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비토리오 데 시카의 영화가 2011년 이 시점 우리 극장가에서 재개봉 혹은 리메이크된다면 흥행에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영화 수입사·제작사들이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일이다. 브루노보다 더 큰 좌절을 경험한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눈물이 보이기 때문이다. 안토니오보다 더 큰 분노를 경험한 지역사회 주민들의 외침이 들리기 때문이다.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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