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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이원숙 여사 93세로 별세





‘정 트리오’라는 명작 남긴 자녀교육의 ‘신화’





한 시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15일 노환으로 별세한 ‘정 트리오’의 어머니 이원숙(사진) 여사다. 93세.



 고인은 오랜 세월 한국 사회 자녀교육의 ‘신화’처럼 여겨졌다. 정명화(첼로)·경화(바이올린)·명훈(피아노·지휘) 남매 트리오는 이씨가 남기고 간 대표적 ‘작품’이다. 1948년 빚을 얻어 산 피아노 한 대를 밑천으로 그들을 길러냈다. 첫째 명소(플루트 연주자·2007년 작고), 둘째 명근(사업가), 넷째 명철(교수·99년 작고), 일곱째 명규(의사)씨 등 일곱 남매 모두 각자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성공을 거뒀다. 이런 공로로 1970년 장한어머니상, 90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고인의 교육철학은 ‘소질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고, 진로를 정하면 전폭 지지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명화(67)씨는 “여섯째 명훈이 지휘를 한다고 했을 때 우리 남매들은 ‘말수 적은 아이가 어떻게 하느냐’고 의아해 했는데 나중에 보니 어머니가 옳았다. 아이들 각자의 특성을 기가 막히게 파악하고, 개성에 맞춰 서로 다른 악기를 쥐어주셨다”고 기억했다.



 정명훈(58)씨는 “어머니는 기다리는 데 명수였다. 나는 두 살부터 발레·노래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그러다가 피아노를, 또 지휘를 하겠다고 결정할 때까지 어머니께서 기다리셨다. 내가 본 최고의 교육 전문가”라고 말했다.









1992년 한 자리에 모인 ‘정 트리오’와 가족. 왼쪽부터 장남 정명근, 어머니 고(故) 이원숙, 셋째 명화, 넷째 경화, 여섯째 명훈씨. 고인이 공연 기획자인 정명근씨와 함께 낸 『음악 이야기』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중앙포토]






 고인은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천재적 연주로 이름을 날리던 정경화(63)씨 관련 에피소드 하나. 경화씨는 막 유럽에 데뷔해 승승장구하던 1970년대에 연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다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이때 이 여사는 “사람이 먼저다. 네가 힘들면 당장 그만두자”고 대담하게 응했다. 고인의 저서 『통 큰 부모가 아이를 크게 키운다』 『너의 꿈을 펼쳐라』에 소개돼 유명해진 얘기다.



자신이 진심으로 바이올린을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 경화씨는 더 큰 연주자가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은 스스로 공부하는 마음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는 것이었다.



 고인은 여느 어머니처럼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했다. 자녀들의 연주회가 열릴 때면 가방 속에 못과 망치를 넣고 다니기도 했다. 연주회장에 일찍 도착해 객석을 일일이 점검했다. 혹시 연주 중 삐걱대는 소리가 날까 걱정을 했던 것이다. 공연장 근처에 기찻길이 있으면 철도청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는 일화도 있다. 또 서울 명동과 미국 시애틀에 한식당을 차리고, 양송이·와이셔츠를 수출하는 무역회사도 세우며 자녀들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여걸이었다.



 고인의 첫째 사위인 구삼열(명화씨 남편) 서울관광마케팅주식회사 대표는 “목표를 정하면 밀고 나가는 성격이었지만 자녀들에게만큼은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 없었다. 이들을 길러낸 건 결국 사랑이었다”라고 회고했다.



 고인은 1918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났다. 서울 배화여고와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공부한 유학파였다. 80년 남편 정준채씨가 작고한 뒤 84년 미국의 신학대학에 등록했다. 66세 때였다. “지금부터 5년 공부하면 10년 써먹을 수 있겠다”며 일흔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90년엔 세화음악장학재단을 세워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본지가 주최하는 중앙음악콩쿠르에도 ‘이원숙 음악상’을 제정해 미래 연주자들을 북돋웠다. 고인의 자녀들도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아 ‘음악 나눔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1호실, 발인은 18일 오전 11시. 02-2258-5951.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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