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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네티컷 시골의 사색 … 88세 키신저 ‘중국 성찰’을 낳다

“88세의 나이에 책을 쓰다니… 놀랍다. 가장 주목해야 할 책이다.”

 CNN 진행자이자 국제문제 전문가인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47) 박사는 15일(미국 동부시간) CNN에서 이렇게 말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도 읽었다는 『미국 이후의 세계』의 저자인 자카리아가 감탄한 사람은 바로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전 국무장관이었다. 키신저는 이달 27일이면 만 88세가 된다. 생일을 열흘 앞두고 그는 새 저서 『중국에 관하여(On China)』를 펴냈다. 17일 미 전역 서점에서 발간된다. 뉴욕 타임스(NYT)를 비롯한 미 주요 언론들은 일제히 이 책을 소개하면서 그의 혜안과 쉼 없는 연구 열정에 찬사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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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신저는 미 동부 코네티컷주 켄트의 시골, 주변과 고립된 자신만의 널따란 사유지에서 산다. CBS방송이 15일 그를 찾아 산책로를 함께 걸으며 물었다. “뭐가 그리 당신한테 중요하기에 도시를 벗어나 이런 시골에 왔는가?” 키신저는 간략하게 “(이곳은) 평온하다(tranquil)”고 답했다. 현실정치에서 그 누구보다 치열했던 외교관이자 국제전략가였던 그가 차분한 사색의 삶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에 대한 책으로 미국 사회를 놀라게 한 그의 깊이 있는 성찰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저서 『중국에 관하여』

 키신저는 CBS 인터뷰에서 “존 F 케네디를 시작으로 10명의 대통령과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라며 지나온 삶을 회고했다. 그는 자신을 국무장관(1973~77 재임)으로 기용하고 미·중 수교의 문을 연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사임하기 하루 전날 그에게 ‘훗날 역사는 지금보다 당신을 더 우호적으로 대접할 것’이라고 말해 줬다”며 “닉슨은 외교정책에서 매우 창의적이었고, 또 단호했다”고 말했다. 이제 G2로 자리 잡은 중국의 부상에 대해 키신저는 “중국은 늘 스스로를 이 세상의 최고라고 여겨왔으며, 서방세계가 자신들의 약함을 순간적으로 이용했던 시간에서 벗어나 다시 전통의 강국 자리로 되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과 관련해선 “미국이 큰 피해를 준 사람을 끝까지 추적하고 이를 응징하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선 “사담 후세인을 축출하는 데 국한하고 국가 재건 등의 후속조치는 국제사회에 맡겼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 외교정책에서 자신의 역할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누구도 자기가 마치 (방법이 다 적힌) 요리책과 같은 유산을 남겼다고 주장해선 안 된다”며 “어느 정부나 그들만의 외교정책을 재발명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곤 웃음 섞인 발언으로 마무리했다. “나처럼 과거에 활약했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유산을 묻지 말라. 그들은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

 키신저는 이번 저서에서 미·중 수교의 배경에 대해 그간 일반적 통념과는 다른 새로운 사실을 공개했다.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키신저는 “지금까지 학계에선 닉슨 대통령이 수렁에 빠진 베트남 전쟁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 여론을 돌리기 위한 깜짝카드로 미·중 수교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이해했지만 실제는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이 관계개선에 더욱 적극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냉전 초기 친소반미 노선을 추구했던 마오는 69년 소련과 국경분쟁을 겪으면서 소련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해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71년 중국 땅에 첫발을 디딘 키신저는 그 뒤 80여 차례 방중했다. 이 과정에서 마오에서부터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장쩌민(江澤民·강택민)·후진타오(胡錦濤·호금도) 국가주석까지 4대(代)에 이르는 중국 지도자들과 교분을 나눴다. 마오와는 다섯 차례나 만났다. 마오는 연로해 건강이 여의치 않을 때도 2시간씩 키신저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키신저는 그와 만나 당시의 미·중 관계뿐 아니라 철학·역사까지 두루 화제로 삼았다며 마오를 “제왕적 철학자(王者 哲學家)”로 묘사했다. 15차례 만난 덩에 대해선 “우울한 눈빛을 가진 용감한 작은 거인”이라고 회고했다.

 수시로 접촉했던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1949~76 총리 재임) 에 대해선 “공자와 같은 고매함과 지혜를 지닌 정치인”이라고 묘사했다. 키신저는 자신이 만난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전체적으로 현실을 중시하는 실무형 “자기중심주의자”였다고 회고했다.

 미·중 관계의 미래에 대해 키신저는 “미·중 관계의 역동성과 미래상에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중 간에 냉전이 발생하면 태평양 양안에서 한 세대에 걸쳐 발전이 지장을 받을 것”이라며 “양국이 (네가 이익이면 내가 손해다라는 식의) 제로섬 관계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과의 지속적인 관계는 미국의 안보에도 매우 중요하다”며 “이런 나라에 대해 ‘비민주적인 정부는 교체’하는 (미국의 종래) 정책을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홍콩=김정욱·정용환 특파원

◆헨리 키신저(88)=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 나치 박해를 피해 1938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하버드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가르치다 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됐고 닉슨과 제럴드 포드 대통령 아래에서 국무장관(1973~77)을 지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61~63) 시절 국책연구소 자문활동을 시작으로 린든 존슨(63~69), 닉슨(69~74), 포드(74~77), 지미 카터(77~81), 로널드 레이건(81~89), 조지 H W 부시(89~93), 빌 클린턴(93~2001), 조지 W 부시(2001~2009), 지금의 버락 오바마(2009~ )까지 10명의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외교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73년 북베트남과 평화협정을 맺은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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