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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호의 시시각각] 저축은행 때리느라 잊은 것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제2 금융권엔 ‘10년 주기설’이라는 게 있다. 사(私)금융이나 서민금융에 관한 제도가 10년마다 크게 바뀐다는 것이다. 시발은 1972년의 8·3조치다. 사채 동결과 사금융 양성화가 주요 내용이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축은행들은 그때 상호신용금고라는 이름으로 처음 나왔다. 지역 서민금융회사로서 은행이 못하는 틈새 서비스를 하게 한다는 게 정부 의도였다. 미국식으로 말하면 서브프라임 금융사를 만든 셈이다.

 82년 7월엔 ‘사채 양성화 및 금융거래 정상화를 위한 경제조치’가 나온다. 그해 4월 이철희·장영자 어음 사기사건의 후유증에 따른 대책이다. 사금융과 공금융의 이중구조를 정상화하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추진하는 게 골자다. 다만 반대여론에 밀려 실시는 연기됐다. 그러다 금융실명제가 전격 도입된 것은 93년 8월 12일이었다. 이어 2002년엔 대부업이 합법화됐다. 불법 사채(私債)였던 고리대금업이 시민권을 얻은 것이다. 신용금고가 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단 것도 이때였다.

 그러고 보니 내년이면 10년 주기가 돌아온다. 물론 지난 4월 18일 금융위원회가 ‘서민금융 기반강화 종합대책’이란 걸 내놓긴 했다. 하지만 기존 틀의 미세조정이어서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게다가 요즘 저축은행 부실화가 뜨거운 감자가 됐으니 내년엔 뭔가 큰 틀이 또 바뀌지 않겠나 하는 전망이 나오는 거다.

 이처럼 사금융이나 서민금융은 제도의 틀 속에 오래 가둬두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이 동네에 도는 돈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일까. 신용금고가 처음 나왔을 때 그 자금원이 모두 서민을 위한 ‘착한 돈’은 아니었다. 통제받기를 싫어하는 음성자금이 많이 섞여 들어왔다. 40년이 지나도록 그 유전자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부산저축은행 사태에서 잘 드러났다.

 그래서인지 이 기회에 저축은행을 말끔히 손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대로 된 곳만 남겨 서민금융을 하게 하고, 의심 나는 곳은 화끈하게 구조조정하자는 주장이다. 또 그런 음습한 저축은행과 결탁한 금융감독원은 조만간 대수술을 받을 듯하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게 있다. 모두들 흥분하고 개탄하는 동안 정작 중요한 문제를 잊고 있는 듯하다. 바로 서민금융의 위축이다. 올 들어 불안감 탓에 멀쩡한 저축은행에서 돈이 빠진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예금이 안 늘면 대출도 묶인다. 저축은행에 대한 건전성 감독도 한층 엄격해졌다. 부실을 막자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론 서민대출도 영향을 받게 된다.

 여기에서 밀려난 서민들이 갈 곳은 어디인가. 대부업체 아니면 사채시장이다. 그런데 대부업체들은 주로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려 쓴다. 저축은행의 자금여력이 달리면 연쇄적으로 대부업체들도 움츠러든다. 미소금융·햇살론이 있다곤 하나 한계가 있다. 이런 구조에서 저축은행 사태를 어설프게 손대다간 자금중개 기능의 일부가 뻥 뚫릴 위험이 있다. 시장에서 그런 공백이 생기면 음성자금, 즉 불법 사금융이 파고드는 법이다.

 그런데도 정부나 제2 금융권 모두 이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하기야 이들에게 서민금융 챙길 틈이 어디 있겠나.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책임 문제로 온통 얼이 빠져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홈페이지를 열어 보라.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대해선 일언반구의 언급이 없다. 앞으로 서민금융을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도 안 보인다. 금감원은 어떤가. ‘금융은 믿음 가득, 국민은 행복 가득’이라는 표어를 넉살 좋게 걸어놓았다. 금융위는 ‘미래로 세계로, 함께하는 선진금융’이란다. 모두들 사고정지(思考停止) 아니면 후안무치(厚顔無恥)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이미 가계부채는 위험수위다. 꼬리에서 시작된 작은 충격이 몸통을 뒤흔들 수도 있다.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추궁은 엄정히 하면서도, 서민금융 정상화를 위한 근본대책에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10년 주기는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다.

남윤호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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