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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파이오니어] 민족 정체성 찾기 50년 ② 임동권 중앙대 명예교수




임동권 중앙대 명예교수는 국내 민속학자 1세대다. 그는 “아라비안나이트는 대단한 걸로 알면서 우리 옛날 이야기는 대단치 않게 여기는 것도 일종의 사대주의”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정월대보름 달밤에 부녀자들이 손 잡고 빙빙 돌며 춤추던 놀이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 되리라고. 강강술래는 2009년 세계무형유산에 올랐다. 1세대 민속학자로 꼽히는 임동권(85) 중앙대 명예교수는 1966년 강강술래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앞장섰다. 마이너 중의 마이너였던 민속을 세계의 보물로 바꿔놓기까지, 반세기가 흘렀다.

 당시 최연소 문화재위원이던 그는 맨 처음 강강술래를 중요무형문화재 후보에 올렸다. 그보다 20~30살 많던 위원들의 반대가 쏟아졌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팔월 보름날 모여 손 잡고 노는데 그게 무슨 놈의 문화재냐는 것이었다.

 “어느 민족이든 달밤이 되면 모여서 축제를 벌여요. 기후나 환경이 좋아서 먹을 것이 넉넉할 때의 일이지. 그런데 외국에선 노래가 정리돼 있지 않은데, 우리나라는 노래가 제대로 돼 있다고. 6개월 걸려 설득했지. 푸대접 받는 아낙네가 모여 하룻밤 노래하고 춤추는 건 한국여성사에서 높이 평가할 민족 유희야.”

 그 다음은 충남 부여군 은산 별신제다. 역시 무당이 무슨 인간 문화재냐는 반대가 쏟아졌다.

 “사람이 마음속에 지닌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면 말이 되지. 감동하면 노래를 부르게 돼 있어. 노래만 가지고도 안 되면 일어나 춤을 추는 거야. 이것이 예술형성의 과정이야. 원시예술은 무당 세계에 도달해야 해. 우리나라 직업 가수·무용수는 무당이야. 인간의 간절한 소원을 비는 것이라 지금 무용가들이 무대에서 하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요. 그때 마침 서울대 의대 김두종 박사가 한국의학사의 시원(始原)을 무당부터 잡았어. 나중에 그것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서울대 그만두고 숙명여대로 옮기지. 비극이지. 그땐 우리나라가 그 수준이었어요.”

 강릉 단오제 때도 무당만 올린다고 핀잔을 들었다. 강릉 단오제는 유교와 무속이 합쳐진 것이다. 옛말에 ‘굿 간 어미 기다린다’고 했다. 굿판에 가면 어미가 집에 와서 젖 먹이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그만큼 굿판의 매력은 컸던 게다.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인 강릉 단오제. 임 교수는 수 많은 자료를 1980년대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무속을 얕보지 말고 한국 역사에서 생각하자며 억지를 써서 지정했어. 나중에 유네스코 세계유산도 됐지. 안동 차전놀이도 그렇고 줄다리기도 그래. 농촌집단의 공통의식을 형성하는 거야. 다행히 내가 민속학을 하고 있었고, 서구 이론을 주장했더니 할 수 없이 인정해줬지. 지금 돌아보면 억지 쓰길 잘했어.”

 그는 썰물처럼 사라져가는 민속의 현장을 기록하고 학문으로 승화시켰다. 새마을 운동 이전 세대로서 민속의 원형을 경험했다는 것이 큰 무기였다.

 “새마을운동은 큰 성과를 거둔 반면 민속문화를 사라지게 했지. 서낭당 없애라, 장승도 없애라 하니까. 새마을 노래에서 초가지붕 없애라는 구절을 빼라고 했더니, 대통령 각하가 작사한 거라 안 된다는 거야. 그 시대 정치가의 이념과 민족이 갖고 있던 것이 상반되는 경우가 있지. 우리는 그걸 갑오경장 이후 근대사에서 한번에 겪어버렸어. 전통이 다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의미는 한번 검토하고서 취사선택해야지.”

 그는 한민족의 진짜 모습은 민속에 있다고 봤다.

 “민중들이 아악 듣고 놀았나? 풍장 치고 놀았지. 그것이 백성들의 솔직한 음악적 감정이야.”

 장승을 연구하고 문화재로 지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다. 마을 경계에 서낭당을 만들고 장승 세워 우리 동네 성역임을 나타낸 것이 바로 한국 민중의 심미안이라는 것이다.

 “그땐 민속학은 학문으로 알지도 않았어. 미친놈 취급도 많이 받았지. 그런데 외교부연수원에서 민속학을 강의하게 됐다고. 외국인들이 ‘너희들은 아리랑을 부르는데 그게 언제 시작된 노래냐’고 물으면 외교관들이 답할 수가 없는 거야. 중동 사람들은 노동자들도 얼굴을 가리라고 하는데 우리는 도저히 더워서 쓸 수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 그런 문제가 대두된 거야.”

 임 교수는 30년이 넘도록 문화재위원을 지냈다. 인간문화재(무형문화재) 재목을 찾아 버스 타고 곳곳을 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그러나 “지금은 문화재 시켜달라고 운동을 하고, 거기서 승리한 사람이 지정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언젠가 인간문화재협회란 곳에서 당국에 건의서를 내는데 내 서명을 받아야겠대. 문건을 보니 노동조합 투쟁 문구야. 문제를 해결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했어. 모든 인간문화재가 사표를 내면 된다고. 그런 자세론 인간문화재 타이틀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 전통 문화는 제대로 계승하지 못해.”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단오’라는 단원이 있었다. 그러나 5년 전에 빠졌다. 현대·산업 관련 분량을 늘리면서 전통 분야를 줄인 것이다.

 “민속이라면 천한 것으로 아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 속에서 살아오고 성장했어. 당시엔 그것이 최선이거나, 그 방법밖에 없었으니 선택했다는 걸 생각해야 해. 우리 민속은 빨리 발굴하고 학문으로서 의미를 부여해야 해. 그 속에서 한민족 생활사를 부각시키고 바르게 써야 한다고.”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월산(月山) 임동권=1926년 충남 청양 출생. 문화재위원(1962~99), 서울시 문화재위원(1969~2003)을 지냈다. 민속학회 회장,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심사위원, 한국민요학회 초대회장 등을 지냈다. 현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국민훈장 모란장, 은관문화훈장, 일본 후쿠오카시 제 16회 아시아문학상 등을 받았다. 『한국세시풍속』 등 수십 권의 책을 남겼다. 2003년 월산민속학술상을 제정, 후학들을 격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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