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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을 위한 변명

속내를 털어놓고 이 글을 시작하겠다. 요즘 뭇매를 맞고 있는 금융감독원을 변호할 생각이다. 그렇다고 금감원의 비리와 불법을 정당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금감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뇌물이 횡행했다. 불법을 눈감아 주고 대출을 알선한 대가로 거액의 뇌물을 챙겼다. 구속됐거나 수사받는 사람만도 벌써 12명이다. 돈 뇌물뿐인가, ‘자리 뇌물’을 챙긴 사람은 훨씬 더 많다. 금융회사 감사 자리를 독차지했다. 그러면서도 본연의 업무인 감독엔 소홀했다. 부산저축은행 오너가 4조6000억원을 불법 대출받고 2조5000억원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는데도 적발하지 못했다. ‘금융강도원’으로 불려도 할 말 없게 됐다.

김영욱의 경제세상

이런 판국에 ‘변명’이라니. ‘도둑들의 무도회’로 보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장 아누이의 희곡에 나오는 그 도둑들보다 오히려 못하다. 희곡의 도둑에게는 가난한 주머니를 털었다가 되돌려 주는 인정이라도 있었지만 금감원에는 그런 미담조차 없다. 그런데도 변명하려는 건 ‘무도회’에 참가한 도둑이 과연 금감원뿐일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더 큰 도둑들이 있을 것 같다는 짐작에서다.

한번 따져 보자. 금감원은 부산저축은행의 불법과 비리를 정말 몰랐을까. 2년마다 정기적으로 검사했고, 지난해엔 4개월 이상 조사했다. 부실의 진원지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은 무려 두 차례나 ‘전수조사’를 펼쳤다. 게다가 은행의 최고경영진은 불법 대출로 이미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터다. 금감원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몰랐을 리 없다. 알았지만 묵인했을 걸로 짐작하는 이유다. 최근 검찰 발표도 그렇다. 금감원이 부산저축은행의 거액 부실 여신을 적발하고도 눈감아 줬다고 했다. 짐작이 맞다면 도둑은 금감원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의 목숨을 쥐고 있는 윗선의 입김 없이는 묵인이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라서다.

예전에도 늘 그랬다. 같이 털러 들어갔다가 주인에게 들키면 짝패는 쏙 빠지고 힘 약한 사람만 혼자 뒤집어썼다. 금융위도 저축은행의 부실이 심각하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고 실토한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저축은행 문제를 터뜨리면 시스템 자체가 흔들렸을 것이라고 한다. 더 윗선 얘기도 흘러나온다. 지난번 저축은행 청문회 때 야당 의원들은 “금융 당국이 저축은행 부실을 빨리 해결하자고 했지만 청와대가 공적자금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불법과 비리를 적발했는데도 윗선에서 달가워하지 않았다면, 그게 사실이라면 금감원이 도둑으로 전락하는 건 시간 문제다. 도덕적 해이가 팽배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도둑들의 무도회’를 벌인 게 잘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금감원에만 책임을 묻는 청와대와 정부는 책임질 일이 없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낙하산 감사도 마찬가지다. 금감원만 낙하산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안다. 낙하산은 피라미드 구조로 돼 있다는 것도. 5대 금융지주 회장 자리는 청와대 몫이다. 최소한 청와대 동의 없이는 차지하기 힘들다. 수출입은행장 등 그 다음 자리는 재경부 출신 등 전직 관료들이 차지한다. 금감원이 갖는 건 그보다 못한 감사 자리다. 이 정부가 진정으로 낙하산을 없앨 요량이라면 ‘더 큰 낙하산’부터 해결하는 게 정석인 까닭이다. 대통령이 금감원만 족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은 금감원의 ‘공룡 권력’이 아니다. 종범일 뿐이다. 감독권력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게 근본 이유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감독권이 정치권과 정부의 자의에 따라 좌우됐기 때문이다. 당연히 해법도 달라져야 한다. 감독권력의 분산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독립성 확보가 관건이다. 외풍이 차단되고 정치와 정책으로부터 자유로운 감독기관이 돼야 한다. 총리실이 주도하는 ‘금감원 개혁 TF’가 내놓아야 할 개혁의 핵심도 이것이다. 독립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설령 한국은행이 감독권을 나눠 가져도 ‘도둑들의 무도회’는 또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쩌랴. 물가가 치솟는데도 금리 하나 제대로 올리지 못하는 한은 역시 독립성에선 금감원과 오십 보 백 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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