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장대익 ‘다윈의 정원’] 소통 없는 연구는 공허하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그럴 시간 있으면 실험실에 가서 네 연구나 더 하지.” 존경해 마지않는 과학자들 중에서 이런 과격한 말을 내뱉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들에게 과학자의 소임은 ‘오직 연구’다. 그들은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특급 학술지에 논문 내는 것을 가장 큰 영예라 생각하며 밤낮으로 연구와 실험에 매달린다. 그 밖의 다른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시간 낭비고 사치며 심지어 부도덕한 행위다. 리그 밖의 것들엔 철저히 무관심하지만 자신들의 활동 무대에서는 그렇게 성실하고 근면할 수 없다.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전문가 정신이 없는 과학자가 많아서 더 문제 아닌가? 오히려 “가서 연구나 더 하라”는 말이 따끔한 충고처럼 느껴진다.



 물론 나는 그들의 열정에 존경을 표한다. 개인의 야망이든 사회적 공헌이든, 과학자의 몰입은 그것 자체로 숭고하다. 무엇보다도, 어떤 이유에서든 연구를 사실상 포기한 사람들보다는 자신의 원칙을 엄격히 사수하고 있는 그들이 더 존경받을 만하다. 사실 우리 과학자 사회의 문제 중 하나는 실험실 문을 너무 빨리 닫는다는 점일 것이다. 중년이 넘어서까지 자신의 연구 주제를 직접 수행하고 있는 연구자의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쉽게 말해 연구에 관한 조기 은퇴자가 많다는 뜻이다. 게다가 연구 자체보다는 각종 행정적인 일들로 너무 바빠 관리자 노릇밖에 할 수 없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연구의 끈을 놓지 않는 과학자가 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학자의 소임을 ‘오직 연구’에 두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연구가 잘못된 소임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럴 리 있겠는가? 단지 그 정도로는 이제 부족하다는 말이다. 과학자에게 ‘탁월함’이라는 가치뿐만 아니라 ‘소통과 나눔’이라는 가치도 점점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과학 저널리스트인 존 브록먼과 몇몇 과학자는 ‘에지 재단’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이 재단의 구성원은 현재 전 세계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지식인(특히 과학자)들인데 그네들의 홈페이지(www.edge.org) 대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지식의 최전선에 다다르기 위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한 방에 몰아넣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묻고 있는 질문들을 서로에게 묻도록 해보자.” 이것이 에지 재단의 기본 이념이다.



 사실 이 재단은 조그마한 클럽으로부터 시작했다. 81년부터 96년까지 몇몇 과학자, 심리학자, 철학자, 예술가 등이 편하게 만나 수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98년부터 홈페이지를 열어 전 세계 누구든지 그들의 호기심과 열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재단 참여자들은 과학과 인문의 단절과 대립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두 문화’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다. 자연과 인문, 연구와 소통과 같은 낡은 이분법을 참지 못하는 ‘제3의 과학자’들이다. 일급 과학자로서 특급의 소통 능력으로 우리 사회에 참신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진화생물학자 도킨스, 심리학자 핑커, 유전학자 벤터, 물리학자 그린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석학이면서도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과 『물리학 강의』의 리처드 파인먼 등은 원조 격이다.



 아직도 ‘오직 연구’를 고수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우리도 그들의 소통 노력 덕택에 이 자리에 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 우리를 과학과 사랑에 빠지도록 한 것은 이 제3의 과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나눠준 그들의 지식이지 않았는가? 그들은 연구와 소통을 모두 중시했던 사람들이다. “과학 없는 종교는 공허하고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라던 아인슈타인의 화법을 차용하면 어쩌면 “연구 없는 소통은 공허하고, 소통 없는 연구는 맹목”일지 모른다.



 국내 스포츠계는 한동안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엘리트 교육에 매진해 왔다. 재능이 있는 선수 몇 명을 뽑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선수촌 정책은 메달 수를 늘려주기는 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스포츠를 즐기도록 유도하지는 못했다. 우리 과학계는 어떤가? 엘리트 과학교육 정책의 성공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과학 지식을 즐기는 일반 대중 층이 좀처럼 두꺼워지지 않는다.



 “한두 명의 천재가 몇 만 명을 먹여살린다”고들 한다. 물론 첨단 지식 사회에서 몇 명의 탁월한 과학기술인을 길러내는 일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몇 명을, 지식을 즐기는 수많은 보통 사람 중에서 발굴해 키우는 일은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의 과학 지식을 특급의 요리 솜씨로 우리의 밥상에 올려줄 제3의 과학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