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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같은 건 대중 공감대 확보해야…그래서 첫날 새벽 방송국 장악했지”





JP가 말하는 5·16 선전·홍보의 기획



13일 오전 서울 남산공원을 찾은 김종필 전 총리. 외손자며느리 품에 안긴 증손자를 대견한 듯 가리키고 있다. 50년 전 5·16이 일어나던 그날 새벽에도 그는 방송국이 있던 남산에 왔었다. 거사의 취지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김태성 기자]













5월의 남산은 화사했다. 13일 오전 11시, 그랜드 하얏트 호텔 건너편 남산공원을 돌며 JP(김종필 전 총리)가 산책을 하고 있다. 남산 일대를 수놓은 보라·주홍·하얀 빛깔의 꽃들 사이를 걷는 김 전 총리 옆엔 외손자며느리가 동행했다. 외손자며느리는 JP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고 부르는 증손자를 안고 있었다. 기자는 ‘5·16 50년…JP 3700명의 레볼루션을 말하다’(본지 5월 13일자 1, 4, 5면)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독자들의 추가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가 운동하는 현장을 찾아갔다. 거사의 그날, JP가 혁명 공약과 취지문을 인쇄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남산에 있는 KBS 방송국(당시 중앙방송국) 접수였다. 혁명은 선전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을 JP는 꿰뚫고 있었다.



-거사는 무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혁명 같은 걸 해서 제일 먼저 확보해야 하는 것은 방송국이야. 방송하는 것뿐 아니라 송신소도 장악해야 해, 그래야 왜 혁명했는지를 알릴 수 있지. 별도로 송신소 장악팀도 있었어. 대중의 공감대를 확보하는 게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거야.”



 -주도면밀하네요.



 “항공기로도 혁명 공약을 뿌렸어. 이원엽 장군이 5기생인데, 그때 대령이야, 육군 항공대장이거든 육군 항공대장이 L-19를 직접 조종하면서 혁명 공약, 취지문을 서울·대구·부산 상공에 마구 뿌렸어.”



 -KBS에 진입하니 어떻던가요.



 “그날 새벽 박정희 소장과 함께 갔는데, 군복 입은 사람들이 들어오니까 다들 북한 공비가 쳐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하드만.”



 -박종세 아나운서가 혁명 공약을 읽었죠. 거사군 쪽에서 직접 발표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 박정희 소장이 읽으면 어떻겠느냐 생각도 했는데…그가 목소리가 좀 딱딱하잖아. 그래서 아나운서에게 시키는 게 듣는 사람이 안심할 수 있겠다 생각한 거지. 애청자들이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나 알 정도로 박종세가 유명했잖아, 국민들이 편안하게 듣고 안심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본 거지. 본래 전날 밤부터 어디 못 가게 하려 했는데 마침 당번이라 방송국에서 자드만. 박종세 아나운서 요즘 뭐하나 궁금하네. 처음엔 조심스럽더니 읽어 내려가면서 점차 흥분을 하는 거 같더라고. 허허.”



 -방송사를 거사의 목표로 삼은 거군요.



 “목표는 무슨, 그게 시작이지.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게 시작이야.”



 -혁명 공약과 취지문을 총리(JP)께서 만드셨죠.



 “그랬지.”



 -그 안에 4·19 정신을 계승한다는 얘기가 들어 있는데 좀 이상합니다.









김종필 전 총리와 전영기 중앙일보 편집국장이 남산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은 나라를 망친다. 이런 정권은 뒤집어 엎어야 한다. 그러면서 일어난 게 4·19 아닌가. 많은 시민이 환호했지. 5·16도 그런 부패·무능 정권을 확 부숴버리는 정신으로 일으킨 거야.”



 -반공을 국시로 한다는 건 왜 넣었습니까.



 “우리 자신이 확립할 자세를 명백히 한 거 지. 그전엔 반공이고 용공이고 없어, 뭐가 뭔지 몰라. 학생들이 전부 어깨동무하고 판문점 가서 북쪽하고 협상하자 뭐 하자 하고, 국회에 들어가선 ‘너희들이 무슨 국회의원이냐고’ 막 그래. 국회도 열지 못했어…그게 뭐 나라여.”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또 다른 의문을 이어갔다.



 -5·16 성공 뒤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을 왜 박정희 소장이 아닌 장도영 참모총장이 맡게 했습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게 하라고 그랬어. 나는 반대했지만. ‘아니 장도영 장군이 무슨 관계가 있는데 그가 혁명위원회 의장을 맡느냐’고 하니까 박 소장이 눈을 감고 한참 있더니 ‘임자도 알잖아. 육군 참모총장 아닌가’ 그러는 거야. 그 한마디 속에 깊은 한이 섞여 있는 걸 알았어. 박 대통령이 마치 ‘나를 빨갱이로 모는 놈들이 있으니까 내가 지도자가 되면 혁명이 안 될지도 모른다. 현역 참모총장이면 국민이 믿어줄 것 아니가’… 그런 소리는 안 했지만, 그렇게 알아들었지. 차 한잔 마시고 ‘네 알겠습니다’ 그랬어.”



 -장도영 총장이 나중에 문제가 되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래서 내가 7월 2일 제거했잖아. 박 대통령에겐 얘기도 하지 않고…엄청난 일을 한 거지.”



 JP는 1995년 김영삼 정부가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세력의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 때 찬성했다. 그때 기자가 ‘본인은 쿠데타를 했으면서 왜 다른 사람의 쿠데타를 처벌하려 하느냐’고 묻자 JP는 웃으며 “내가 해봤으니까 나쁜 줄 알지”라고 묘한 답을 한 적이 있다.



 -다시 혁명하라면 하겠습니까.



 “이젠 못해.”



 -혁명은 30대(당시 JP 35세)에 하는 건가요



 "30대고 20대고 50대고 간에, 뭣 모르고 한 거지. 지금 생각하면 무서워, 아찔해. 5월 15일 일이 제대로 안 풀렸으면 그냥 총살당했어.”



 -총리에겐 풍운아라는 말이 따라다니는데요.



 “풍운아는 무슨…. 풍운이 바람과 구름이라는 뜻인데. 얼마 전까지 일본에선 ‘천의 바람’(千の風)이란 노래가 유행했는데 이런 구절이 있어요. 죽은 다음에 묘비를 세우지 마라/묘비에서 내 혼은 빠져 나왔다/나는 천 개의 영혼으로 우주를 날아다닐 뿐이다…. 인생이든 혁명이든 열심히 살아 남에게 다 주고 빈 껍데기로 가버리는 거지.”



대담=전영기 편집국장, 정리=배영대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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