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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⑮ ‘성춘향’ vs ‘춘향전’





신상옥·최은희 vs 홍성기·김지미 … 바르샤와 레알의 전쟁만큼 대단했다



국내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와이드스크린)로 주목 받은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1961)에서 타이틀 롤 춘향을 맡은 최은희. [김한용 사진집 『꿈의 공장』(눈빛·2011)에서]





지난달 말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 메시와 호날두의 대결을 지켜보며 밤잠을 설쳤다. 놀라운 개인 돌파로 레알 마드리드 수비진을 무너뜨리고 골을 넣은 메시는 숙명의 라이벌 대결에서 진정한 영웅으로 떠올랐다.



 1961년 1월 영화 ‘성춘향’과 ‘춘향전’의 승부가 그러했다. 신상옥 감옥의 신필름이 제작한 ‘성춘향’과 홍성기 감독의 선민영화사가 제작한 ‘춘향전’은 당대 최고 감독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었다. 열흘 간격으로 개봉했을 정도로 양자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승부였다.



 신필름은 이 영화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나는 숨을 죽이며 이 대단한 전쟁을 지켜보았다. 당시 이만한 화젯거리도 없었다. ‘성춘향’은 김진규·최은희가, ‘춘향전’은 신귀식·김지미가 이몽룡과 춘향으로 나섰다. ‘성춘향’의 최은희와 ‘춘향전’의 김지미라는 최고 여배우의 맞대결이었을 뿐 아니라 신상옥·최은희 부부, 홍성기·김지미 부부의 벼랑 끝 승부이기도 했다.



 원래 신필름이 ‘춘향전’ 제작에 들어갔는데 신필름에서 일하던 제작자 박운삼씨가 홍성기 감독 쪽에 붙으면서 두 회사가 ‘춘향전’ 경쟁에 나서게 됐다. 뒤늦게 뛰어든 선민영화사가 일정을 단축하며 1월 18일 국제극장에서 먼저 개봉했다. 신필름은 그로부터 열흘 후 명보극장에 작품을 올렸다.



 결과는 싱거웠다. ‘성춘향’(107분)의 완승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성춘향’은 장장 74일간 관객 38만 명을 동원하며 한국영화·외화 통틀어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반면 ‘춘향전’(110분)은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언론도 비판적이었다. ‘새로운 해석이 없을 바에야 차라리 원본의 풍자성이나 개그를 살렸으면 좋았을 것’ ‘어설픈 다이제스트로 극적인 악센트가 약했다’ ‘홍성기 감독의 평면적인 연출과 캐스트의 빈곤으로 덤덤한 뒷맛’ ‘한 가닥 기대했던 코스튬 플레이도 세트가 빈약해 어그러졌다’ 등의 반응이었다.



 ‘성춘향’은 캐스팅에서도 ‘춘향전’을 압도했다. 김진규·최은희 외에도 방자 허장강, 향단 도금봉, 월매 한은진, 변학도 이예춘, 목낭천(睦郎廳· 목가 성의 줏대 없는 관리) 양석천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가 포진했고, 양훈·김희갑·구봉서 등이 배꼽 빠지는 코미디를 연기했다. 또한 국내 최초의 컬러 시네마스코프(와이드스크린 방식의 대형영화)로 주목 받았다. 신 감독은 고가의 코닥필름을 사용했고, 햇빛이 필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세심하게 고려해 최고의 화질을 구현했다. 오후 3시 이후에는 색이 잘 밀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촬영을 중단했다. 필름 현상도 한국은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일본에서 했다. 신필름은 서두르지 않고 치밀하게 준비했다. 그 결과 ‘성춘향’의 화면은 유리알처럼 선명했고, ‘춘향전’은 칙칙했다.



 신필름은 ‘성춘향’에 이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라이벌 선민영화사를 거꾸러뜨렸다. 선민영화사는 ‘춘향전’의 실패로 문을 닫게 됐고, 힘든 상황에 직면한 홍 감독과 김지미는 다음 해 3월 1일 결혼 4년 만에 이혼했다. 나 역시 경쟁의 비정함에 몸을 떨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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