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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e Shot] 1954년 9월 28일, 중국 국방위원회 창설 주역들

1990년대부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온 중국은 이제 군사 분야에서도 미국과 함께 명실상부한 G2(주요 2개국)로 부상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고, 올 7월이면 첫 항공모함도 취역한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주더, 펑더화이 … 이들도 몰랐다, 57년 뒤 항모·스텔스 띄우게 될지

 중국군 현대화의 역사는 5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4년 9월 28일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열린 제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방위원회와 국방부를 설립한 것이 그 단초다. 당시 국가주석인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이 국방위원회 주석을 겸하고 부총리 펑더화이(彭德懷·팽덕회)가 초대 국방부장을 맡았다. 마오쩌둥이 제의한 14명의 국방위 부주석도 임명했다. 중국군 현대화의 첫발을 내디딘 이날, 국방위원들이 함께 기념촬영한 사진을 중앙일보가 최근 입수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국방위원회 주석단 룽윈(龍雲·용운·①), 장즈중(張治中·장치중·



②), 예젠잉(葉劍英·섭검영·③), 쉬샹첸(徐向前·서향전·④), 덩샤오핑(鄧小平·등소평·⑤), 류보청(劉伯承·유백승·⑥), 주더(朱德·주덕·⑦), 마오쩌둥(⑧), 펑더화이(⑨), 허룽(賀龍·하룡·⑩), 뤄룽환(羅榮桓·나영환·⑪), 녜룽전(⑫榮臻·섭영진·⑫), 청첸(程潛·정잠·⑬, 푸쭤이(傅作義·부작의·⑭). 녜룽전은 천안문 사태 때 군 원로로서 진압 병력 출동을 허가한 인물이다. 마오쩌둥 외에 앞줄에 앉은 사람은 모두 부주석이다. 부주석 중 린뱌오(林彪·임표)와 천이(陳毅·진의)는 불참했다.



 국방위원회 부주석 중 10명이 이듬해인 1955년 9월에 신중국 창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원수 계급장을 달았다. 예젠잉(1897~1986)·쉬샹첸(1901~1990)·류보청(1892~1986)·주더(1886-1976)·펑더화이(1898~1974)·허룽(1896~1969)·뤄룽환(1902~1963)·녜룽전(1899-1992)·린뱌오(1906~1971)·천이(1901~1972)가 그들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국방위원들이다. 둘째 줄 왼쪽에서 넷째가 후일의 국가주석 리셴녠(李先念·이선념·⑮), 일곱째는 총참모장 황커청(黃克誠·황극성·(16), 아홉째는 쑤위(粟裕·속유·(17), 둘째 줄 오른쪽 첫째가 김일성의 88여단 시절 여단장 저우바오중(周保中·주보중·(18). 맨 뒷 줄 오른쪽 셋째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부의)를 자금성에서 내쫓은 루중린(鹿鍾麟·녹종린·(19)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당시 중난하이 전속 사진가 허우보(侯波·후파).



 같은 날 중공 중앙정치국도 당 내에 별도로 군사위원회를 설립했다. 마오쩌둥이 주석을, 10대 개국 원수 전원과 덩샤오핑이 군사위원을 맡았다.



박경덕 지식과학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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