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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당당한 전업주부 남편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주말이면 즐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줄거리 중에 전업주부 남편이 한 명 나온다. 학원 원장이던 전형적인 마초 남자가, 학원이 망하게 되면서 살림과 육아를 떠맡는다는 설정이다. 밖에 나갈 때면 다른 주부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숨어서 장을 보는 것으로 전업주부 남편의 일은 시작된다. 숨어 일하는 밖에서와는 달리,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집 안에서는 당당하게 전공까지 살려 애들 공부도 칠판에 써가며 프로답게 하는 남편. 그런 그가 든든하긴 하지만 어째 맘 한 구석은 불안하다. 제발 우스꽝스럽지 않게, 그리고 기죽지 않고 당당한 전업주부 남편으로 표현해줬으면 하는 맘 때문이다. 환경이나 여건에 따라 부인과 교대로 집안일을 하는 남편들. 직장에서 하던 대로 프로의식을 가지고 살림도 육아도 전문가같이 하는 남자라면 왠지 섹시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외국에선 벌써 가사노동과 양육에 동참하는 남성의 수가 점점 늘어 이제는 여성의 수와 비슷해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남성에게만 강요해 온 전통적인 부담을 줄이고 자녀 양육의 모든 단계에서 남성을 포함시키는 것이야말로 ‘혁명적인 여성 해방’이 될 것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꽤나 설득력 있어 보인다. 사실, 경제력이 상실된 남자들이 자진해서 가사나 육아의 부담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여자들 또한 일하는 배우자 덕분에 누렸던 안정된 생활과 보장을 스스로 포기하고 일터로 향하기가 두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정된 성 역할 분담을 떠나 각각 처한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나눠 하는 사회가 진정 차별 없는 사회 아닐까. 남자만 등 떠밀어 죽을 때까지 일터로 내몰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육아 휴직, 아니 전업주부의 꿈을 꾸고 있는 남자들. 생각보다 꽤 많이 있을 게다. 축 처진 어깨와 쓸쓸한 뒷모습이 그걸 말해준다. 과중한 업무의 스트레스가 연속인 회사 일을 잠시 떠나, 아이들에게 요리도 해주며 같이 놀고 이참에 아빠 노릇도 제대로 하고 싶은 꿈. 그러나 꿈은 꿈일 뿐, 아침이면 그는 또다시 회사로 향한다. 이쯤에서 미디어가 나서 주면 어떨까. 거액 연봉의 일터를 박차고 나와서 기죽지 않고 신나게, 그리고 프로페셔널하게 전업주부 노릇을 하는 남자 하나만 만들어주면 된다. 요리하는 남자를 ‘찌질한’ 남자에서 ‘자상한’ 남자로, ‘귀농’을 ‘도시 부적응자의 귀환’이 아닌 ‘제대로 된 삶 찾기’로 이미지 변신을 시킨 것이 바로 미디어 아닌가.

우리네 가족의 삶은 ‘장거리 연이어 달리기’다. 한 사람이 밖에서 죽도록 달리다가 힘들면 집에 들어와 일하고, 죽자고 지겹게 집안일 하던 사람이 바통을 이어받아 나가서 일하고. 이러다가 보면 직장과 살림이란 것이 남녀 구분 짓지 않고 모두의 일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될 것이고, 자연스레 남녀 임금의 격차도 좁아질 것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멋지고 당당한 전업주부 남편의 탄생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돈 벌고 애 키우고 살림하는 이 모든 것. 같이하며 같이 잘살자.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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