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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세상읽기] 악역을 자처해야 산다







김종수
논설위원
경제부문 선임기자




참 먼 길을 돌아왔다.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된 박재완 장관 말이다. 옛 재무부 출신으로 학계와 청와대 수석, 노동부 장관을 거쳐 드디어 친정 격인 기획재정부의 수장으로 돌아왔으니 감회가 새로울 터다. 다들 의외의 발탁 인사라고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평소 인사 스타일로 미루어 볼 때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전형적인 MB식 인사 패턴을 따랐다. 제한된 인재풀 안에서 한 번 쓴 사람을 이리저리 돌려쓰는 회전문 인사 그대로다. 일부에선 정부 밖을 떠돌다 돌아온 그의 이력을 들어 전문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딱히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재무부와 청와대, 감사원에 근무하면서 웬만한 재정부 업무는 다 꿰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하버드대 정책학 박사 아닌가. 그의 말대로 부족한 부분은 참모들의 도움을 받아 채우면 그만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구멍 난 자리마다 구원투수로 차출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고 대통령의 신임마저 두터우니 임기 말 경제정책을 책임질 경제수장감으론 제격일 수 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말에 경제운용을 맡기기에 정통 경제관료보다는 믿을 수 있는 측근이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집권 후반기의 핵심 정책인 ‘동반성장’과 ‘물가안정’을 추진하는 데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기에는 박 내정자만 한 인물을 정부 안팎에서 찾기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대통령의 신임과 임기 말이라는 시기가 박 내정자의 앞날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우선 경제를 잘 안다는 대통령과 그의 측근인 경제수장의 조합은 자칫하면 일방통행식 정책운용을 불러올 우려가 크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부의 정책이 좌우되고, 장관과 관료들이 온통 대통령의 손가락 끝만 바라보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측근은 결코 대통령의 지시에 적극적으로 ‘노(NO)’라고 하기 어렵다. 오히려 대통령의 기운을 살펴 대통령의 발언이 어느 방향으로 기운다 싶으면 그쪽으로 목소리를 증폭시킬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MB 정부의 최대 약점으로 꼽히는 ‘소통의 부재’가 갈수록 더욱 두드러지고, 그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만 키울 수도 있다.



 혹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도 잘 극복했고, 성장률도 웬만큼 회복된 만큼 박 내정자가 호시절에 경제사령탑을 맡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임기 말에 새로운 일을 벌이지 말고 경제를 지금대로만 안정적으로 관리하면 될 것이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지금 겉으로 드러난 경제 여건이 괜찮게 보일지 모르지만 박 내정자가 앞으로 부딪힐 경제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서 다음 정권에 무난하게 넘긴다는 것 자체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거시경제 여건만 봐도 성장은 둔화되는 가운데 물가는 치솟고 있다. 경제성장의 과실은 체감하기 어려운데 물가마저 뛰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안정적 관리’는 물 건너간다. 이와 함께 경제를 살렸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박 내정자는 내정 발표 직후 “서민생활 안정과 일자리 창출에 전념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자리 창출이야말로 최고의 친서민정책이라는 평소 그의 소신에 걸맞은 발언이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의 관건인 서비스업 선진화는 아직도 이익집단의 반발과 부처 간 이견으로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의 다짐대로 일자리 창출에 전념하자면 취임하자마자 서비스업 규제라는 벽에 부닥칠 것이다. 새로운 일을 벌이지 말라지만 해묵은 문제의 해결마저 미룰 수는 없다.



 박 내정자가 직면할 최대의 난관은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벌어질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다. 야당의 복지 포퓰리즘은 단골 메뉴가 됐고, 이제는 여당마저 대놓고 포퓰리즘의 대세에 편승하고 있다. 당장 감세안의 처리를 두고 여야는 물론 여당 내에서조차 격돌이 벌어지고 있다. 평소 감세론자를 자칭하는 박 내정자가 감세안 철회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포퓰리즘 극복의 첫 단추가 될 것이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정부 스스로도 포퓰리즘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친서민을 앞세운 정책기조는 필연코 복지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중심과 균형을 잡는 일은 지난한 과업이 될 것이다.



 임기 말 경제수장의 자리는 영광스럽기보다는 험난하고 고달픈 자리가 될 것이다. 오죽하면 전임 윤증현 장관이 “무거운 짐을 그만 내려놓고 싶다”고 했겠는가. 이제 박 내정자가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는 길은 악역을 자처하는 것뿐이다. 정치권과 이익집단은 물론 대통령에게까지도 ‘노’라고 말할 수 있고, 사방에서 쏟아질 포퓰리즘의 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박 내정자가 살고, MB 정부가 사는 길이다.



김종수 논설위원·경제부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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