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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시시각각] ‘분노 정치’의 폐해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으로 아랍권 전체가 미국을 향한 분노로 들끓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성전을 예고하고 있다. 분노는 미국과 이슬람의 관계를 채색해 왔다. 물론 미국 온건파들은 이슬람과 이슬람주의(Islamism), 무슬림(Muslim)과 이슬람주의자(Islamist)를 구분해 왔다. 그러나 분노의 국제정치가 미국-이슬람 관계의 다른 모든 면을 압도한다면 그 결과는 파국이다.



 미국의 국내 정치도 분노의 정치다. 빈 라덴의 죽음으로 미국인은 잠깐 일치감을 맛보았다. 하루도 가지 못했다. 미국인들은 기존의 좌파·우파 분열 구도에 따라 그의 처형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을 서로 차지하려는 유치한 모습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 정치는 어느새 분노의 정치가 됐다. 우파가 집권하면 좌파가 분노하고, 좌파가 집권하면 우파가 분노한다. 분노는 분노에 그치지 않고 정치 세력화되는 양상이다. 그 결과는 역시 파국일 수 있다.



 분노의 국내 정치나 국제 정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사람은 석기시대 유전자로 현대를 살아가고 있다. 유전자에는 분노를 일으키는 유전자도 있다. 모든 사람이 분노 성향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 남들보다 분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분노의 정치화에 앞장서는 것은 그들인지 모른다.



 분노에는 긍정적·생산적인 면도 있다. 분노는 생존 수단이다. 분노는 방어와 반격에 필요한 심리 상태다. 분노는 불의에 항거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분노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분노의 통제다. 분노는 객관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모니터링하는 기능이 마비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필요한 타협은 물 건너간다. 분노가 이성을 이기게 되면 민주주의 정치를 할 수 없다.



 미국 이야기할 게 아니다. 우리 사회만큼 분노가 분출되는 곳도 없다. 지난 재·보선 선거 결과는 유권자 분노의 귀착이었다. 선거 후에도 분노가 진화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금융 비리에 대한 분노, 국책사업 입지 선정과 관련된 분노, 농민들의 분노가 ‘분노 정국’을 당분간 이끌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각 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상당수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서로 다른 신문을 본다. 아예 신문을 안 보고 인터넷 매체나 트위터에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정보의 원천 자체가 다르다. 분노한 이들은 상대편 후보의 악수마저 거부한다. 분노한 유권자들은 확실한 지지층이다. 실제로 투표장으로 향할 사람들도 그들이다.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분노의 정치가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다. 민주당·열린우리당 정부에 분노한 유권자들은 10년 동안 ‘불행’했다. 지금은 한나라당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유권자들이 ‘불행’하다. 분노의 정치가 일종의 사이클로 고착화되면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상대편에 분노해 나를 찍어준 지지자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면 잃어버린 5년, 10년을 한탄하며 지난 정권의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새로 취임한 대통령은 첫 6개월간 인기가 드높다. 대통령은 그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후딱 해치워야 한다. 다음 정부에서는 지난 정부의 과오를 되돌리기 위해 모든 정책을 재검토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정치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십 년 걸릴 국책 사업, 교육·안보와 같은 초당적인 분야는 반드시 여야 합의를 통해 입안·추진돼야 한다.



 ‘정권을 심판(審判)하자’는 선거 구호도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런 분노의 정치술은 5년 후 10년 후에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언제까지 상대편 정당을 지옥·감옥으로 보낼 ‘없어져야 할 당’으로 간주할 것인가. 미국식 대통령제의 허점 때문에 분노의 정치가 계속되는 것이라면 분노를 완화시킬 독일식 등 유럽식 권력 공유 방안도 모색해 보자.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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