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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⑬ 풋내기 배우 데뷔 시절





데뷔작 ‘로맨스 빠빠’서 만난 엄앵란
엉성한 내 연기에 가장 짜증을 냈다



신성일의 스크린 데뷔작인 ‘로맨스 빠빠’. 당대 은막을 주름잡던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왼쪽부터 최은희·신성일·남궁원·도금봉·김진규·엄앵란·주증녀·김승호.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데뷔작에서 드러난 내 연기 실력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시쳇말로 ‘발연기’인데 가장 짜증냈던 사람이 지금의 아내인 엄앵란이었다. 그 모든 과정이 훗날 뼈가 되고, 살이 됐다.



 데뷔작은 1960년 1월 1일 명보극장에서 개봉한 ‘로맨스 빠빠’였다. 많은 식구를 거느린 월급쟁이 아버지가 실업자가 되자 온 가족이 아버지를 위로해주는 홈드라마였다. 그 당시 최고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김승호·주증녀가 아버지·어머니 역을, 최은희·김진규가 큰누나와 그 남편 역을 맡았다. 김석훈·남궁원·도금봉·엄앵란·주선태·김희갑 등이 조연으로 중량감을 주었다. 신상옥 감독은 나를 막내아들로 기용했다.



 촬영은 개봉을 한 달도 안 남긴 시점에서 돌입했다. 세트 촬영 장소는 서울 종암동 개천가에 자리한 연탄공장. 하루 촬영을 끝내고 나면 코가 연탄가루로 시꺼멓게 되곤 했다.



 졸지에 엄청난 배우들 틈에 끼었으니 발걸음조차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촬영장 풍경은 한 편의 코미디 드라마 같았다. 영화 ‘마부’로 유명한 김승호 선생은 “준비해라”고 지시한 후 내가 등장하는 컷만 나오면 코를 골고 잤다. 내 존재감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다른 사람들은 막간을 이용해 고스톱을 쳤다. 조명·세트를 설치할 때 틈만 나면 배우들은 무조건 고스톱이었다. 선배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배운 것이 고스톱이었다. 그래서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놀음이 고스톱이다.



 동시 녹음이 아니어서 대사에 큰 부담은 없었다. 옆에서 망치 소리가 나도 우리의 촬영에는 전혀 영향 없었다. 그런 까닭 덕에 촬영 속도는 빨랐다. 내가 그간 540편이 넘는 작품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영화를 비롯해 TV 드라마도 초창기에는 컷 없이 한 번에 쭉 찍었다. 심지어 69년 TBC 드라마 ‘124군부대’의 경우 생방송으로 찍어대 아슬아슬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편집 기술도 없거니와 테이프도 아깝다는 이유였다.



 녹음실 시스템도 열악했다. 녹음실에는 대사 녹음용 마이크와 음향효과 내는 마이크, 딱 두 개뿐이었다. 녹음용 마이크 하나를 두고 여러 명이 몸싸움을 벌이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했다. 음향의 거리감도 배우가 스스로 냈다. 나 같은 초짜 배우는 녹음실에 얼씬도 할 수 없었다. 거추장스러운 존재이니 말이다.



 이 영화는 엄앵란과 처음 연기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연기를 잘 못하는 탓에 점점 주눅이 들었다. 엄앵란은 57년 ‘단종애사’로 데뷔한 이후 청춘 스타로 떠올랐고, 나와는 비교가 안 되는 위치에 있었다. 여동생 역인 엄앵란은 나와 엮이는 장면만 되면 쭈뼛거렸다. 같이 연기하기 싫다는 짜증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당시 내 공군 형님은 수원에 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수원과 내 가회동 하숙집을 왔다 갔다 하셨다. 난 기억이 없는데 어머니는 그 때 내가 집으로 돌아오면 매번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엄앵란이 콧대 세고, 건방지다”고 말이다. 내가 엄앵란을 무의식적으로 욕했던 것이다. 그런 우리가 부부가 되다니. 인생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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