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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생산은 의술인데 …” 단단히 화난 정몽구 회장






정몽구(73·사진)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은 “자동차 생산은 의술과 마찬가지”란 말을 즐겨 한다. 자동차는 소비자의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단순한 조립산업이 아니라 사람을 고치는 의술이라는 것이다. 그런 정 회장이 단단히 화가 났다. 이 회사가 국내에 시판 중인 디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이상이 있다는 환경부의 올 3월 조사 결과 때문이다. 그래서 이 회사 연구소 최고책임자가 사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투싼·싼타페·스포티지·쏘렌토·베라크루즈가 현대·기아차에서 생산하는 디젤 SUV다.

사연은 이렇다.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는 올해 초 한 달에 걸쳐 국내에서 2006년부터 시판한 완성차 5개사 디젤 SUV의 배출가스 대기오염 물질 허용기준을 점검했다. 그 결과 일반 상태에서는 해당 차량 모두 합격했다. 문제는 에어컨을 켰을 때였다. 다른 4개 자동차 메이커 차량은 에어컨을 켜지 않았을 때보다 많아야 10∼20% 질소산화물이 더 나온 데 비해, 현대·기아차의 SUV에서는 에어컨을 켜면 기준치의 6∼11배에 달하는 질소산화물(NOx)이 나왔다. 이에 해당하는 차량은 80만 대가량 된다. 기준치의 6~11배는 호흡기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정부는 2007년부터 배출가스 농도가 허용 기준치보다 서너 배 이상 높을 경우 계기판에 엔진 이상을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OBD)’의 부착을 의무화했다. 그런데 이번 교통환경연구소 조사 때 현대·기아차의 SUV는 이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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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환경부로부터 이런 통보를 받은 현대·기아차는 현행법상 에어컨을 켠 상태에서의 배출가스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국내 대기환경보전법에는 에어컨을 켰을 때 배출가스 기준을 별도로 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다르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에어컨 사용이 부쩍 늘면서 2009년부터 에어컨을 껐을 때와 켰을 때 모두 같은 배출가스 기준을 적용한다. 유럽도 비슷한 기준을 만들고 있다. 배출가스 조사를 담당한 교통환경연구소는 한국 운전자의 에어컨 가동 기간이 연간 8개월 이상이라, 미국과 같은 기준을 만들기 위해 표본조사를 했다가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가 주행 연비를 높이기 위해 이런 배출가스 문제를 개선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진택 자동차 평론가는 “현대차는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이번 문제는 연비를 좋게 하기 위해 벌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현대차 관계자는 “이런 사실을 연구소에서도 확인해 해당 차량 무상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에는 배출가스 보증기간(5년 또는 주행거리 8만㎞) 내에 있는 자동차를 대상으로 환경부가 자체 조사를 해 결함이 발견될 경우 자동차 메이커에 원인을 규명하게 하고 시정 명령을 내리거나 제작사 스스로 결함을 인정하면 리콜이나 무상 서비스로 결함을 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는 9일 환경부에 배출가스 결함의 발생 원인과 시정내용 등이 담긴 시정 계획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환경부에 제출될 계획서에는 정몽구 회장의 품질안전 우선주의를 최대한 반영한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생산기술=의술’이라는 정몽구 회장의 생각은 튼튼한 차를 개발하는 것뿐만 아니라 품질이 뒷받침돼야 안전한 차가 만들어진다는 철학에서 나왔다. 이런 이유로 정 회장은 늘 품질·현장 경영을 강조한다.

심지어 현장에서 공장장이 교체되는 일도 있었다. 지난해 8월 미국 앨라배마 공장장의 경우다. 당시 미국 출장 길에 오른 정 회장은 조립 라인을 둘러보면서 공장장에게 “YF쏘나타의 보닛을 열어 보라”고 지시했다. 공장장이 보닛을 열려고 했지만 보닛 후크(잠금걸이)를 찾지 못하자 다른 사람이 대신 보닛을 열었고, 공장장은 현장에서 해임됐다. 지난해 2월에는 미국에서 생산한 투싼과 쏘나타 차량이 안전 문제로 미국에서 리콜을 하자 즉각 앨라배마 공장장을 교체하기도 했다. 그때 정 회장은 “국내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보고된 내용이 어떻게 미국 현지 언론에 나오느냐. 품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객을 위한 최고의 가치”라고 질타했다.

정 회장은 2000년 현대차 울산공장을 방문해서는 당시 막 생산된 테라칸의 보닛과 도어를 여러 번 거세게 여닫기도 했다. 볼트의 조임새와 마지막 마무리를 직접 점검, 현장 작업자에게 소비자의 안전과 밀접한 자동차 생산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것이다.

 정 회장은 불시에 현장을 찾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임원회의를 하다가 갑자기 “충남 당진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현장을 둘러보고 싶다”며 떠난 게 여러 번이다. 그것도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옥상에 마련된 헬기장에서 전용 헬기로 40분 만에 이동하는 기동성까지 보인다. 이처럼 제철소 건설 현장에 자주 간 것은 비용을 줄이기 위한 공기 단축뿐만 아니라, 현장 관리자에게 안전한 시공을 위한 긴장감을 불어넣자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당진 공사 현장에서 보고를 받다 문제점을 발견하곤 현장에서 현대제철 건설소장(부사장)과 공사를 맡은 계열 건설사 현대엠코의 임원을 경질하기도 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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