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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스페셜 - 월요인터뷰] 학생 자살 파문 KAIST 서남표 총장




서남표 KAIST 총장이 지난 3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역경에 시달리다 자살을 생각해 본적은 없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서 총장은 “자살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조문규 기자]

서남표(75) KAIST 총장은 ‘원조 조기유학생’ 출신이다. 서울사대부고 2학년(1954년) 때 미국으로 떠나 명문 사립고교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졸업했다. MIT 기계공학과 교수 시절에는 외부 연구비의 3분의 1을 혼자 유치했다. 60명 교수 중 단연 톱이었다. 그의 특허 보유 건수는 전체 MIT 교수 중 2위. 그런 빛나는 성공 체험이 거꾸로 소통에 취약한 리더십을 부른다는 분석도 있다.

 사회를 들끓게 한 KAIST 학생·교수 자살 사태가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4월 28일과 5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서남표 총장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기자와는 그가 1993년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 시절 취재차 만난 이래 18년 만의 인터뷰다.


-서 총장이야말로 고교·대학의 공부 스트레스를 가장 잘 아는 분이다. 어릴 때 미국에 유학 가서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을 텐데.

 “아버지를 따라 54년 하버드대 부근의 브라운 앤드 니콜스(매사추세츠주의 명문 사립고교로 현재는 ‘버킹햄 브라운 앤드 니콜스’로 이름이 바뀜)에 전학 갔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 대사가 알고 보니 고교 동문이더라. 미국에 갓 입국해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 나를 미국 학생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바람에 고생 좀 했다.”

 -어떻게 가르치던가.

 “예를 들어 예일대 영문학 박사인 마이클스라는 선생님이 계셨다. 셰익스피어 작품 원전을 지정해 숙제를 내고 시험도 쳤다. 힘들었다. 마이클스는 내가 써낸 에세이에 가차없이 0점을 매겼다. 충격이었고 잔인하다고까지 느꼈지만, 지금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렇게 1년을 혼나고 대학(MIT)에 들어가니 ‘서양문명사’ 같은 과목은 오히려 고교 때보다 쉬워 보였다.”

 (서남표 총장의 부친 고 서두수 박사는 일제 시절 이화여전 교수였고 광복 후 연세대·서울대 교무처장을 역임했다. 뒤늦게 미국 유학을 떠나 52년 컬럼비아대에서 교육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로 옮겨 한국학과 신설·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대학에서도 공부하랴 학비 조달하랴, 고학(苦學)의 연속이었다고 들었다. 좌절도 했을 법하다.

 “어떤 때는 세상이 다 끝난 것 같기도 하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혹시 역경에 시달리다 자살을 떠올려 본 적은 없나.

 “자살? 나는 그런 것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일하는 방식이 독선적이고 일방통행이라는 지적도 많다.

 “남들이 그렇다니까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그런 점이 아주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 하는 분들 중에는 자기 의견이 강한 분들도 있다. 자기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니 나를 독선적이라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워낙 짧은 시간에 많은 개혁을 했으니까.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교수님들 의견 듣고 의논도 한다고 생각한다. 어제(2일)도 수학과 교수들과 두 시간가량 토론을 벌였다.”

 -KAIST는 전국에서 모인 수재들이 경쟁하는 곳이다. 학생들의 정서적 측면을 더 잘 배려할 수 없을까.

 “입학 후 고립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있다. 한두 명 입학하는 일반고 출신들이 그러기 쉽다. 어제 장영신 애경 회장께서 발전기금 30억원을 기부했는데, 학생 상담센터부터 새로 짓겠다. 현재의 교내 병원 정신과는 접근성이 약하다. 누구나 스스럼 없이 상담받도록 하겠다. 학생들이 5명 정도씩 그룹별로 활동하고 공부하게끔 유도하려 한다. 앞으로 학생 중심 교육시스템으로 가겠다. 국제, IT기반, 통합, 독립의 네 원칙을 담은 ‘i-4’ 교육방안을 포함한 ‘비전 2025’를 5월 17일 발표할 예정이다.”

 -혁신비상위원회가 만들 학사운영 개선책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사회 토론을 거쳐 정책으로 확정된다.”

 -하지만 이사회 멤버가 대부분 ‘친(親)서남표’라는 지적이 있다.

 “그렇지 않다. 내가 KAIST에 오는 것을 반대한 분도 계시고, 연임에 반대한 분들도 이사로 모시고 있다. 오히려 그분들이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엄격한 교수 정년 보장(테뉴어) 심사가 국내 다른 대학으로도 파급되고 있다.

 “처음엔 내가 주도했지만 지금은 교수 인사위원회가 더 앞서 나간다. 나보다 기준을 더 높게 잡고 있다. 이제는 자리를 잡았다고 본다.”

 -지난해 연임(임기 4년)이 됐다. 총장직 사퇴를 생각한 적은 없나.

 “그건 더 두고 보자. 그 문제는 보는 분들 시각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사실 자살 사태와 별도로 기성 세대에선 KAIST뿐 아니라 요즘 대학생이 전반적으로 나약해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쎄. 미국과는 문화부터가 다른 것 같다. 우리는 부모가 아이에게 간여하는 기간이 너무 길다. 미국은 18세만 되면 독립이다. 학생 성적도 본인 동의 없이는 부모가 못 본다. 우리 대학원생의 어머니가 나에게 ‘아이가 기숙사가 춥다고 한다’고 호소하는 e-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추우면 자기가 얘기해야지 왜 엄마가 나서나. 남에게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 이해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일이 있다. 결혼하는 자식에게 집까지 사주는 풍조다. 정 돈이 없으면 아버지에게 정식으로 빌리든가 해야지 왜 부모 돈으로 집을 사주는가.”

 -성격이 직선적인가.




3일 오전 서울 조선호텔에서 서남표 KAIST 총장과 나눈 대화를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QR(Quick Response·빠른 응답)코드 리더기를 작동시킨 뒤 위쪽에 있는 QR코드를 화면 중앙 네모 창에 맞추면 동영상이 뜹니다.

 “가끔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에둘러 얘기하지 못하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총장 이름으로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는 e-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교수님들 99.99%가 무관한 일이니 완곡하게 쓰면 될 것을 ‘성희롱·성추행에 대해서는 무관용 정책을 펴겠다’는 식으로 딱딱하게 표현해 많은 교수님이 기분이 상한 것 같더라.”

 -노무현 정부 시절 KAIST 총장에 영입(2006년)됐고, 지난해 연임 과정에서 교육과학기술부와 갈등도 있었다. 본인의 정치적 성향은.

 “정치엔 일절 관심이 없다. KAIST는 국민 돈으로 움직이는 국민을 위한 학교이므로 정치적으로 철저히 중립이어야 한다.”

 서남표 총장은 인터뷰 다음 날인 4일 유럽으로 출장을 떠났다. 6일 유럽 지역 명문인 덴마크공대(DEU) 개교기념일 행사장에서 과학기술교육 분야 공적을 인정받아 금메달을 받았다. 14일 귀국한다.

글=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미 NSF 재직 땐 과학자 1600명 ‘반기’ … 백악관이 막아 줘

◆서남표 총장
=1936년생. 매사추세츠 공대(MIT) 학사·석사, 카네기멜런대 박사. 마찰공학·제조과학기술과 설계과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MIT 기계공학과 교수를 거쳐 84~88년 공화당 정부에서 국립과학재단(NSF) 공학담당 부총재로 일하면서 미국 산업계·대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그의 산학협력 개혁 작업에 반기를 든 공학자 1600명이 연명으로 부총재 해임을 촉구하는 서한을 백악관에 보냈으나 일소(一笑)에 부쳐졌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2006년 제13대 KAIST 총장에 취임했으며 지난해 7월 연임됐다. 동갑내기 부인 서영자씨 사이의 네 딸은 각기 뉴욕 타임스지 에디터, 환경과학자, IBM 간부, 다큐멘터리 제작사 대표로 명실공히 ‘딸 부잣집’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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