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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⑪ 스타 탄생 (하)





신상옥 감독이 다짜고짜 물었다 “나하고 3년 고생할래?”



평범한 젊은이였던 ‘강신영’을 하루아침에 스타 ‘신성일’로 만든 신상옥 감독. 신 감독은 1960년대 한국 영화산업의 기초를 닦았다. [김한용 사진집 『꿈의 공장』(눈빛·2011)에서]





열망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1959년 8월, 신필름 신인 배우 오디션 현장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광화문 뒷골목 일대가 북새통을 이뤘다. 오죽했으면 기마경찰이 출동해 현장을 정리할 정도였을까.



 나는 그날 공군 조종사인 형의 옷장에서 몰래 훔친 빨간색 반팔 몽탁 티셔츠를 걸쳤다. 당시 몽탁은 사치품으로 통했다. 나일론을 뛰어넘는 최고의 옷감이었다. 원서도 넣지 않았지만 발걸음이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여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밀려든 지원자·구경꾼 때문에 인근 KBS 국제방송 건물 처마까지 떠밀려 갔다. 그 밑에서 비를 그으면서 오디션 풍경을 그냥 넋 넣고 구경했다.



 그때 한 구두닦이 소년이 다가와서 건너편 취미다방에서 누군가 나를 찾는다고 알려주었다. 세상에, 서울 하늘 밑에서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니…. 헤엄치듯 인파를 가르며 예총회관 건너편 취미다방으로 갔다. 너무 궁금했다.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다방 맨 구석에서 얼굴이 까맣고 깡마른 사람이 나를 불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신상옥 감독을 도와 일하는 이형표 기술감독이었다. 이 감독은 신 감독과 말을 놓는 사이였다. 그는 대뜸 “원서는 냈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지원하러 들어가고 싶니?” 하고 다시 물었다. 얼떨결에 그렇다고 했다.



 “너 신상옥 감독 얼굴은 아냐? 몰라? 그럼 여배우 최은희씨 얼굴은 알아? 그래, 최은희 옆에 머리 길고 덥수룩한 사람이 신상옥 감독이야.”



 여배우 최은희는 영화 ‘마음의 고향’을 통해 알고 있던 터였다. 이 감독은 흰 종이에 자기 사인을 한 후 이걸 보여주면 신 감독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이 사인을 보여주니 오디션장 스태프들을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어떤 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테이블에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는 최은희를 알아 보았고, 그 옆에 신 감독이 앉아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신 감독은 나를 위아래로 쓱 훑어보더니 “오후 5시에 다시 와!”, 이 한마디만 던졌다. 기분이 묘했다. ‘뭘 어떻게 하려는 걸까?’라는 긴장 속에서도 뭔가 흥분이 됐다.



 그때가 오후 2시 무렵. 세 시간 말미가 있었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냥 어슬렁어슬렁 남산공원을 배회했다. 당시만 해도 시계를 찬 사람이 100명에 2~3명이 될까 말까 했다. 남대문을 거쳐 덕수궁으로 내려오니 시청 앞 시계탑이 오후 4시50분을 가리켰다. 시간을 꼭 맞춰 방에 들어가니 이번엔 신 감독 혼자 앉아 있었다. 신 감독은 내게 앉으란 소리도 안 하고 말했다.



 “나하고 3년 고생할래?”



 귀가 번쩍 뜨였다. 3년 전속 계약하자는 뜻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부터 사무실로 나와.”



 그게 바로 합격통지였다. 귀갓길 내내 구름 위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신 감독은 원래 말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 몸은 중학교 때부터 평행봉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미술에 조예가 있던 그는 눈썰미로 내 근육을 포착한 것이었다. 내 본명은 강신영이다. 신 감독은 ‘뉴 스타 넘버원’이란 뜻으로 내게 ‘신성일(申星一)’이란 예명을 지어주었다. 며칠 후 각 신문 조간에 다음 같은 기사가 떴다. ‘신성일, 5081대 1 스타 탄생’. 나도 믿기 어려운 기적이었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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