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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설(世說)] ‘빨리 좌회전’ 같은 ‘빨강 화살표’




유한태
숙명여대 디자인학부 교수


새빨간 적색은 원래 ‘위험’이나 ‘금지’ 또는 ‘긴박한 경고’ 상황을 암시하는 신호(signal)다. 파장이 가장 긴 빨강은 그래서 ‘전진색’의 대표다. 반대로 파랑의 파장은 짧아 ‘후진색’이라고도 한다. 빨강은 부정적, 파랑은 긍정적 인식이라는 전통과 관습도 빨강은 긴박하고 파랑은 완만하게 느끼는 색채심리와 연관이 있다. ‘형식’ 따로, ‘내용’ 따로인 신호등 논란이 뜨겁다. 차라리 빨강 바탕에 검정 화살표였다면 몰라도, 검정 바탕에 빨강 화살표만 유독 두드러져 인식 혼란이 더 컸다.

 이런 빨강의 뿌리 깊은 ‘색채’ 관념에다 방향을 지시하는 화살표의 ‘형태’ 관념이 하나로 만나니 물과 기름이 겉돌 듯 상충의 갈등만 낳는다. 거센 여론의 문제 제기에도 방울만 흔들면서 정작 제 귀는 막고 있는 경찰청의 ‘옹고집’이 안타깝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이상한 ‘빨강 신호등’을 국민들에게 교육시키는 홍보 플래카드와 배너가 서울시내 곳곳에 내걸렸다. 번잡한 도로의 군더더기 시각공해로서 시범운영이라는 빛 좋은 이름의 ‘강압홍보’인 셈이다.

 이번 신호등 평지풍파의 교훈은 현재의 신호등이 글로벌 시대에서 과연 ‘한국 특성’이 무엇이냐를 성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와 똑같은 한국의 신호등이라면 한국의 국가브랜드를 각인시키기 어렵다. 유엔국제표준기구(ISO)의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기존 틀 속에서 ‘한국적 창상력(創想力)’을 고민해야 할 때다. 예컨대 한국의 국가 상징인 태극 모티프나, 에너지 절약의 LED나 재미있는 애니메이션 등의 시각(視覺)적 요소와 함께 시각장애인들에게도 횡단보도에서 남북 방향과 동서 방향을 구분할 수 있고, 비장애인들에겐 청각까지도 편안하고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국적 있는 신호등이 개발돼야 한다.

 4색이냐 3색이냐의 색채 숫자는 의미가 없다. 문제는 운전자가 인지한 신호등의 ‘간명성’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직진 후 직좌(?)’ 등의 잡다하고 애매모호한 한글 보조표지판도 최소화해야 운전 시야가 단순해진다. 창과 방패를 ‘모순(矛盾)’이라고 한다. 화살표는 ‘지시’의 창(矛)이요, 빨강은 ‘경고’의 방패(盾)다. 방패 속에 창이 들어 있는 격이니 말 그대로 자가당착(自家撞着)의 신호등이 아닐까.

유한태 숙명여대 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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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