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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가계 빚 1000조원, 탄식만으론 안 된다







심상복
논설위원




시한폭탄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터진다. 그런데도 무서워하는 이들이 별로 없다. ‘시한(時限)’장치를 제거하는 영화를 많이 봤든지, 아니면 워낙 고위험에 많이 노출된 탓일 게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화끈하게 터지는 것이 어디 한둘인가. 최근에 제대로 터진 것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농협 전산망 해킹사고다. 전 국민의 60%를 고객으로 둔 금융회사의 보안의식이 구멍가게만도 못한 수준에 놀랐고, 그런 사이버 테러를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북한 정찰총국이 저질렀다는 점 또한 충격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별 느낌이 없는 듯하다. 청와대를 비롯한 이 나라 주요 기관 사이트가 북한으로부터 디도스 공격을 벌써 두 번 받았고, 이번에 한 번 더 뚫렸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 빚이 시한폭탄이라고 해봤자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 규모는 937조원에 달했다. 전년보다 약 7% 늘어난 것이다. 지금은 95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며 연말에는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1000조원은 얼마나 많은 돈일까. 1만원짜리를 늘어놓으면 달나라까지 19번 왕복하는 거리가 된다고 한다. 더 이상 뭉갤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거치식 대출을 줄여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거치(据置), 참 말도 어렵다. 그래도 은행 돈 안 빌려본 사람이 없기에 이 정도는 생활경제용어가 됐다. 부채 상환을 일정 기간 보류하는 걸 거치라고 한다. 은행에서 보통 3년 기한으로 돈을 빌린 뒤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걸 뜻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이 방식이 널리 통용됐다. 집을 사기만 하면 집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자만 갚아나가는 동안 집값이 대출금 이상 오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은 다른 대출에 비해 금리가 낮고, 근저당 설정비도 내지 않는 이점이 있어 빌리는 사람도 좋아했다. 은행들은 외형 경쟁을 벌이면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수익성도 좋은 집담보 대출을 마구 늘려갔다. 하지만 이제 집값도 떨어지는 세상이 되면서 문제의 심각성은 커지고 있다. 가계 부채가 많은 상황에선 금리정책도 제대로 구사할 수 없다. 인플레 억제를 위해 금리를 올리고 싶어도 서민들이 이자에 질식한다고 아우성치면 주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146%로 사상 최고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인 2007년에 비해 10%포인트나 높아졌다. 미국과 영국의 이 비율은 2007년에 비해 각각 16%포인트, 10%포인트 낮아졌다. 고통을 감수하며 가계 부채를 정리했다는 얘기다. 한국은 가계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금융위기를 견뎌냈다고 하지만 지금 천문학적 빚에 신음하고 있다. 고통이 따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거치식 대출을 원리금 상환방식으로 점차 바꿔가야 한다. 원리금 상환 대출은 지금도 있지만 전체 대출의 20%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중 원금은 놔두고 이자만 갚는 대출이 거의 80%에 달한다. 만기가 되면 다시 대출을 받는다. 이렇게 최장 30년까지 갈 수 있다. 가계 빚이 줄어들기 어려운 구조다.



 기존 대출금을 한꺼번에 모두 이런 식으로 바꿀 순 없다. 만기 대출금을 연장할 경우 그중 20~30%는 강제로 갚도록 하든지, 그럴 여력이 안 되면 연장 대출금부터는 원리금 동시 상환식을 적용하는 것이다. 원리금 상환을 강제하면 그 자체로 은행 돈을 쉽게 못 빌리는 효과도 생긴다. 지금도 이런 제도가 있지만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다. 강제성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거치식 대출’이라는 과거의 습관과 이별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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