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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섣부른 핵무장론을 반박한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최근 핵무장에 대한 공론화 작업이 대두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핵에는 핵’이라는 핵 억지논리에서 우리도 핵무기를 개발해 보유해야 한다는 핵 민족주의를 제기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전술핵을 한국에 재배치해 대북 협상력이나 핵 억지력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북한이 핵 무장력을 계속 증강시켜 나가고 있다 보니 이런 주장이 나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한반도 핵 군비경쟁과 동북아 핵 도미노 현상이란 부정적 영향을 논하지 않더라도 국제법적 제약 때문에 핵무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해 있으므로 핵무기와 기폭장치를 생산하거나 외부에서 들여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NPT 제2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safeguard)와 그에 따른 사찰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같은 은밀한 핵무기 개발이 불가능한 이유다.

그럼에도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자면 북한처럼 NPT를 탈퇴하면 되겠지만, 그 대가는 실로 막중하다. 우선 미국을 포함한 핵 공급그룹(Nuclear Supply Group)으로부터의 우라늄과 농축우라늄, 관련 장비의 공급이 중단되고 이미 제공받은 핵연료는 반환해야 한다. 21기의 원자로를 운영 중에 있고 11기를 추가 건설할 예정인 한국의 원자력산업은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결의에 따른 국제적 고립은 더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한국이 북한이나 이란 같은 불량국가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다.  

 미국 또한 자국(自國)의 원자력에너지법에 따라 1954년에 체결된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을 파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과의 모든 원자력 관련 협력이 중단되고 미국이 제공해 왔던 농축우라늄을 반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핵무기 비밀개발을 둘러싼 70년대식 한·미 갈등이 재현되면서 동맹의 미래조차 불투명해질 수 있다.

설령 핵 개발 의도가 없다 해도 핵무기 보유 논의 자체만으로도 2014년 개정 예정인 한·미원자력협력협정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핵 확산을 극도로 우려하는 미국으로서는 우리 측이 강력히 희망하고 있는 사용후 연료의 재처리(후행주기 완성)를 연구목적으로조차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축인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가능성을 따져보자. 중앙일보 2월 28일자에 미 백악관 대량살상무기조정관 게리 새모어의 긍정적 반응이 보도되면서 이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고조되고 있지만, 이미 미국 정부가 명확히 했듯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핵 없는 세계’를 외교정책의 모토로 내건 오바마 행정부는 그 일환으로 전술핵을 전향적으로 감축하고 있다. 2010년 핵태세검토보고서(NPR)는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지 수단으로 전술핵보다는 전략핵을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그 주요 수단 중 하나인 함대지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의 전면폐기 계획도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 1971년 7300기에 달하던 유럽배치 전술핵이 2010년 현재 200여 기까지 줄어들었고, 그나마 실전보다는 확장 억지를 위한 상징적 의미로 남겨둔 것에 가깝다.  

 백번을 양보해 미국이 전술핵 재배치에 동의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북핵 문제 해결이 더 용이해질 수 있을까. 오히려 6자회담과 같은 대화를 통한 해결방식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북한의 적대적 핵 무장력 강화의 명분으로 작동할 공산이 더 커 보인다. 또한 자국의 코앞에 배치된 전술핵에 자극을 받은 중국은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더구나 전술핵 재배치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전술핵 시설이 북한의 핵, 화생, 특수전 및 재래식 전력의 집중타격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핵안보정상회의 2차 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 ‘핵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회의의 의장국이 다른 한쪽에서 ‘핵무기 개발’이나 ‘전술핵 재배치’를 되뇐다면 국제사회는 우리를 위선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나라로 볼 것이다. 무엇보다 확장 억지의 틀 안에서 핵우산을 제공해 주겠다고 약속해온 동맹국 미국을 믿지 못하고 어설픈 핵 민족주의나 현실성 없는 전술핵 재배치를 부르짖는 것은 애국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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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