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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은 서라, 화살표는 가라…3색 신호등은 ‘기호학의 충돌’





학계 “차렷도 열중쉬엇도 아닌 어정쩡 신호”
유한태 숙명여대 교수 “인간 상식에 반하는 난센스”
송치만 건국대 교수 “즉각적으로 판단 어려워”
이성일 성균관대 교수 “정신적 혼돈 유발 요소”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던 신호등을 갑자기 바꾼 이유가 대체 뭡니까?”



 숙명여대 유한태 교수(디자인학부)는 28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기자가 새 신호등의 장단점을 묻자 이렇게 반문했다. 그는 30여 년간 도로표지판 등 시각디자인을 연구해온 전문가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자연보호 표지판을 디자인했고, 지난해 말에는 직접 신호등 샘플을 만들기도 했다.



 “새 신호등은 국제 기준으로 볼 때 ‘차렷’도 아니고 ‘열중쉬엇’도 아닌 어정쩡한 신호체계입니다. 머리엔 갓을 쓰고 발에는 서양 구두를 신은 격이지요.”









왼쪽부터 유한태, 송치만, 이성일



 그는 경찰이 시범운영 중인 화살표 3색 신호등을 “인간의 상식에 반하는 기호학적 난센스(non-sense)”라고 규정했다. 유 교수는 특히 가장 큰 문제로 좌회전 금지를 뜻하는 적색 좌회전 화살표를 꼽았다. “금지와 지시가 하나의 신호에 들어가 있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국제표준화기구(ISO) 규정을 보면 빨간색 신호는 금지 또는 위험을 뜻하는 반면 화살표의 경우 ‘이쪽 방향으로 가라’라는 ‘지시’의 의미”라고 말했다. 빨간색은 멈추라고 하고 화살표는 가라고 하니 자가당착이란 것이다. 그는 “가만히 서서 신호등을 보는 것도 아니고 차를 운전하면서 신호등을 보는 사람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유 교수와의 문답.



 -경찰은 ‘도로교통에 관한 빈 협약’이 국제 기준이라고 주장하는데.



 “빈 협약은 유럽 국가들에 맞는 기준이다. 유럽 국가의 도로와 환경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반면에 ISO는 아프리카 오지부터 미국 뉴욕의 번화가까지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암묵적인 규칙이다. 1946년 만들어진 ISO는 69년에 체결된 빈 협약보다 23년 더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경찰이 3색 신호등 도입을 앞두고 세계 5개 대도시에 시찰단을 파견했다.



 “백 번을 가더라도 전문가들이 장기간에 걸쳐 제대로 둘러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건수 올리기 식은 안 된다. 행정은 짧지만 신호등은 길다. 이번 일은 정부가 성과주의에만 매몰돼 국민에게 불편을 준 케이스다.”



 다른 전문가들도 유 교수와 비슷한 생각이다. 건국대 송치만 교수(커뮤니케이션학)는 “빨간색 좌회전 화살표는 이중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왼쪽 방향’이라는 지시적 속성과 ‘멈춤 또는 금지’라는 위험의 속성이 그것이다. 송 교수는 “이러한 이중의 속성은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하지 마라’라고 해석될 수는 있지만 시속 60㎞ 정도로 움직이며 즉각적인 판단이 필요한 운전자들에게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보행자 신호(서 있는 사람 형태의 빨간색 신호와 걷는 사람 형태의 녹색 신호)의 경우 일관된 메시지를 중복적으로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성균관대 이성일 교수(시스템경영공학) 역시 “사람들은 일단 화살표가 보이면 움직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면서 “인지심리학 측면에서 볼 때 빨간 화살표는 정신적 혼돈을 유발하는 ‘간섭(interference)’ 현상을 일으켜 운전자를 갈등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한길 기자



◆기호학=사람은 문자와 말 외에 상징과 그림, 색깔 등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예를 들어 이성에게 건네는 장미는 사랑을 상징하고, 백합은 애도를 의미한다. 이런 상징들의 의미를 분석하는 학문이 기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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