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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③ 앙드레 김의 추억




앙드레 김이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1964년 결혼식과 2004년 벽옥혼식(결혼 40주년 기념식)을 올린 신성일·엄앵란 부부. [중앙포토]


지난해 8월 앙드레 김이 타계했을 때 가장 슬퍼한 사람은 집사람 엄앵란이 아니었을까. 1964년 11월, 당시 대단한 화제였던 우리 결혼식 때 집사람은 앙드레 김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앙드레 김이 스타덤에 오른 계기였다. 그는 평생 집사람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다. 거친 사나이만 보아온 나로선 그의 외모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앙드레 김은 그때에도 하얀 옷을 입고 있었고, 가부키 배우처럼 얼굴 화장을 진하게 했다. 옷에 풀을 빳빳하게 먹여 사각사각 소리가 날 정도였다. 향수는 어찌나 진했는지 곁에 가면 속이 울렁거렸다. 게다가 어떤 남편이 집사람과 외간 남자가 30~40분씩 전화를 잡고 있는 걸 좋아하겠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대한 비호감은 서서히 사라졌다. 암만 봐도 앙드레 김에게선 사내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패션 디자이너는 여자의 몸을 만지는 직업이다. “엘레강스~” 하는 여성적 말투 속에서 그가 의식적으로 남성을 지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 하는 게 남편들의 경계를 받지 않고 패션계에서 성공하는 데 유리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앙드레 김 (1935~2010)

 앙드레 김은 우리 가족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다. 친척이라도 그렇게는 정성스럽게 못했을 거다.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앙드레 김이라는 사람을 인정하게 됐다. 그는 겨울이 되면 고아원에 점퍼를 수백 벌씩 보냈다. 해외 패션쇼를 열며 한국 문화를 알렸고, 주한 외국인 대사 부인들과 교류를 가졌다. 당시 미국 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그에게 비자를 부탁하면 금방 해결됐다. 우리 부부는 경복궁 맞은편에 있었던 그의 의상실(현재 갤러리현대 부근)을 가끔씩 들르곤 했다. 거기서 만난 고(故) 김옥길 이대 총장, 김동길 교수 남매와 훗날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앙드레 김은 언론에 내 기사가 나오면 빠짐없이 축하 전화를 해주었다. 우리 아이 이름이 강석현이었는데, 그는 “서켜니 아버지~, 참 영화 좋고 상 탄 것 추카해요”라고 특유의 어조로 말했다. ‘석현이’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던 것. 하지만 그런 정성에 앙드레 김의 ‘홍보대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큰 모임에 그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저 사람, 또 왔다”며 위화감을 드러냈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홍보대사로 나섰다.

 “그러지 맙시다. 저 사람은 우리가 못하는 일을 해요. 고아원에 옷 보내고, 민간 외교관 하는 건 칭찬해줘야 합니다.”

 앙드레 김은 내가 그를 칭찬하고 다니는 걸 알고 내게 더욱 잘했다. 그럼에도 난 아직 그가 ‘패션의 지존’이라고 하는 데 선뜻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 그의 옷이 패션쇼용으론 독보적이지만, 대체 누가 입고 다닐 수 있겠는가. 내가 인정하는 우리나라 패션의 지존은 노라노와 그의 수제자 박윤정(에스모드 파리 서울분교 이사장)이다.

 앙드레 김은 엄 여사의 소식통이었다. 85년 LA에서 나의 ‘결혼 후 첫사랑’인 김영애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집사람에게 알려준 이도 앙드레 김이었다. 그는 한 해도 빠짐없이 백장미가 100송이 넘게 담긴 큰 꽃바구니를 집사람 생일(음력 3월 20일)에 보냈다. 지난해에도 숨을 거두기 전, 몸이 그렇게 아프면서도 백장미 선물을 챙겼다. 세상에 이런 정성이! 그래서 나는 지금도 앙드레 김의 홍보대사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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