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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보는 세상] 노예를 부리는 개미

"병든 사람과 죽은 사람은 헌신짝처럼 바다로 던져졌다. 아프리카에서 신대륙 아메리카로 가는 노예선에서 차곡차곡 관처럼 포개진 흑인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똥오줌도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었고 위에서 떨어지는 오물을 그대로 밑에서 뒤집어써야 했다." 18세기 미국의 백인들이 노예로 쓰기 위해 아프리카 중남부에서 죄 없는 양민들을 잡아 이송하는 도중 선박에서 인간 이하로 학대받는 흑인들의 참담한 모습을 줄리어스 레스터는 '자유의 길'에서 이렇게 고발하고 있다.



개미들 중에서도 다른 종의 개미집을 습격해 부모.형제를 물어 죽이고 알과 번데기를 집에 데려와 키워서 노예로 부려먹는 악명 높은 개미가 있다. 이 악명 높은 개미들을 노예화개미, 이들의 노예가 되는 개미를 노예개미라고 부른다. 노예화개미는 혼자서는 살지 못하고 다른 종의 개미를 노예로 만들어야 생존이 가능한 특이한 개미들이다. 노예화개미 집의 여왕개미가 신혼비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노예로 삼을 개미종의 집을 확인한 뒤 일시에 습격해 성충개미들을 물어 죽인다. 이들은 알과 번데기가 있는 집만 골라 습격한다. 잡혀 온 번데기들이 성숙하면 어린 일개미가 된다. 이들은 자기 부모.형제를 죽인 원수인 줄도 모르고 그들을 친부모와 형제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충성을 다한다. 이 노예개미들은 노예화개미의 여왕개미가 낳은 알을 잘 돌봐서 일개미로 키운다. 이들이 성장한 뒤 다시 다른 개미집을 습격할 사악한 존재임을 노예개미들은 전혀 모른다.



노예화개미들은 진화과정에서 일개미 계급을 상실한 종이다. 일개미는 있지만 일을 전혀 하지 않으니 일개미라 할 수 없다. 신혼비행을 마친 노예화개미의 여왕개미는 노예가 될 개미의 집을 습격해 대부분 물어 죽이지만 일부 일개미와 여왕개미는 생존하기도 한다. 따라서 노예화개미의 집에서는 계속해서 노예개미의 여왕개미가 자손을 생산하지만, 그들의 여왕개미와 수개미는 생산이 안 된다. 반면 노예화개미의 여왕개미는 여왕개미와 수개미를 생산하기 때문에 이 집단을 통솔할 수 있는 것이다.



후버는 최초로 분개미(Formica sanguinea)가 곰개미(Formica fusca)의 집을 습격해 노예로 만드는 장면을 목격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노예개미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목숨을 연명할 수도 없다. 노예들이 없다면 이들은 1년 내에 멸종하고 만다. 수개미와 여왕개미뿐 아니라 노예를 포획할 때 그렇게 힘세고 용맹스러웠던 일개미들조차 전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그들의 용맹성과 민첩함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짓지도 않고 유충을 돌보지도 않는다. 심지어 살고 있던 집이 불편해 다른 곳으로 이사해야 할 때도 이사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노예개미들이다. 이사할 때도 노예화개미들은 노예개미들에 물려 이동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노예들만 부려먹고 사는 동물은 노예화개미밖에 없다.



개미들은 근면과 성실의 상징으로 인간에게 많은 귀감이 돼 왔다. 그러나 노예화개미처럼 악명 높은 개미들도 있다. 우리 인간들도 좋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유 없이 사람을 납치해 죽인 뒤 화장시켜 흔적을 없애버린 '지존파'나 불특정한 사람을 대상으로 살인을 일삼은 '막가파'같이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도 상당수 있다. 노예화개미들이 인간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우리는 노예 없인 살 수 없어 다른 종의 개미들을 죽였지만 만물의 영장인 너희는 취미로 사람을 죽이느냐"고 크게 힐책할 것 같다.



김병진 원광대.곤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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