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리더에게 필요한 건 신념의 언어 아닌 사실의 언어”

28일은 이순신(1545∼98) 장군의 탄신 466주년이 되는 날이다. 장군의 음력 생일 3월 8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28일이 된다. 소설가 김훈(63)씨를 23일 만났다. 100만 부 넘게 팔린 그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는 이순신 장군의 총체적 면모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1592년 1월 1일 쓰기 시작해 1598년 11월 17일 끝마친 장군의 『난중일기』는 전쟁문학의 백미(白眉)로 꼽힌다. 김씨는 대학생 때 『난중일기』에 감화돼 소설가가 됐다. ‘신문사 사건기자의 6하 원칙에 따른 스트레이트 문장이 가장 위대한 문장’이라는 김씨의 문장론도 『난중일기』의 담백한 문체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지금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고 바로 물었다. 김씨는 “이순신 리더십의 본질은 사물의 밑바탕을 챙길 줄 아는 사실적 정신”이라고 정의했다. “사실에 바탕한 힘으로 거대한 전쟁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인터뷰 도중 ‘사실(팩트)에 입각한 리더십’을 수차례 꺼내들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사실보다 당파성에 매몰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도 사실에 입각한 정신이 부족하다. 리더는 신념의 언어가 아닌 사실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중일기』와 『임진장초』(임금에게 보낸 전황 보고서인 장계(狀啓)를 모은 책)를 짚어가며 ‘이순신의 리더십’을 풀어갔다

 - 이순신 장군 탄신 466주년이다.

 “나는 장군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순신에 대한 내 나름의 느낌과 생각은 있다. 나는 그의 리더십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다. 항상 놀라게 되는 것은 장군이 언제 어떤 경우에나 사실에 입각해서 글을 쓰고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 구체적인 사례는.

 “『난중일기』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서 그런 덕목을 찾을 수 있다. 임진왜란 발생 직전인 1592년 2월 1일 일기를 보면 ‘피라미 떼가 몰려들기에 그물을 쳐서 이천여 마리를 잡았다’는 구절이 있다. 1596년 1월 6일 일기에는 ‘오수(吳水)가 청어 천삼백열 두름을, 박춘양은 칠백여든일곱 두름을 바쳤는데, 하천수가 받아다가 말리기로 했다. 황득중은 이백두 두름을 바쳤다’는 대목이 있다. 오수는 아마 물고기 잘 잡는, 직위 낮은 부하였던 모양이다. 사령관이 물고기 마리 수를 세어봤겠나. 아마 부하들이 센 것을 적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대목에서 장군이 사물을 정확한 사실로 들여다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고지휘관임에도 이런 걸 꼼꼼하게 챙긴 거다.”

 - 그런 리더십이 어떻게 힘을 발휘하게 되나.

 “나는 이순신의 리더십을 파악하는 데 『임진장초』가 더 흥미로운 사료라고 생각한다. 1592년 4월 15일에 보낸 장계는 ‘4월 14일 발송되어 오늘 4월 15일 술시(戌時)에 접수한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원균의 공문에’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순신은 원균의 공문이 언제 발송돼 도착했는지부터 적고 있다. 장군은 이렇게 정확한 사람이었다. 술시는 오후 7~9시다. 장군은 공문을 아마 7시쯤 받았을 것이다. 공문을 보고 수군절도사·병마절도사 등에게 사변(事變)에 대비하라고 지시한다.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임금에게 올릴 편지를 쓰는 데 두 시간이 걸렸을 것 같다. 임금에게 장계를 보낸 시간 역시 술시로 되어 있다. 장계에는 불분명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정보의 유통과정, 즉 두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런 점들이 명백하고 일관되게 나타나 있다. 장군이 전투에서 발휘한 힘의 대부분이 이런 사실의 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 장군은 어떻게 이런 글을 쓰게 됐을까.

 “장계는 군을 지휘하는 장군이 임금에게 보낸 가장 정확한 문서다. 신문사 사건기자가 기사를 쓰듯 6하 원칙에 따라 시간을 먼저 쓴다. 장군의 문장이 결코 아름답거나 철학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장군의 문장을 통해, 나는 그가 사물의 밑바탕을 챙기는 사실적 정신, 사실에 바탕한 힘으로 전쟁을 수행했음을 알게 됐다. 이게 장군의 리더십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신준봉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난중일기』 『임진장초』 중 사실 기술이 돋보이는 대목





난중일기

-1592년(임진년) 2월 1일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선창(船艙)으로 나가 쓸 만한 널빤지를 고르는데, 때마침 수장(水場) 안에 피라미 떼가 몰려들기에 그물을 쳐서 이천여 마리를 잡았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1596년(병신년) 1월 6일

비가 계속 내렸다. 오수(吳水)가 청어 천삼백열 두름을, 박춘양은 칠백여든일곱 두름을 바쳤는데, 하천수가 받아다가 말리기로 했다. 황득중은 이백두 두름을 바쳤다. 종일 비가 내렸다. 사도첨사가 술을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군량 오백여 섬을 마련해 놓았다고 했다.

-1598년(무술년) 10월 7일

맑음. 아침에 송한련이 군량 넉 섬, 조 한 섬, 기름 다섯 되, 꿀 석 되를 바치고 김태정이 쌀 두 섬 한 말을 바쳤다.

임진장초

-1592년 4월 15일 ‘사변에 대비하는 일을 아뢰는 계본’

삼가 사변에 대비하는 일을 아룁니다. 4월 14일 발송되어 오늘 4월 15일 술시에 접수한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원균의 공문에… .

※출전 『교감 완역 난중일기』(민음사), 『충무공 전적보고문 임진장초』(연경문화사)


☞◆난중일기(亂中日記)=이순신 장군이 7년간의 임진왜란 체험을 기록한 진중(陣中)일기. 날씨, 전쟁 상황, 부대 내의 갈등은 물론 당시 정치·경제·사회·군사 등에 관해 폭넓게 다루고 있다. 1962년 국보 76호로 지정됐다.

◆임진장초(壬辰狀草)=전쟁 상황, 군사상 건의 등을 써서 임금에게 보낸 보고서. 1592년 4월 15일 보고서부터 1594년 4월 20일 보고서까지 73편으로 구성됐다. 『난중일기』와 함께 국보 76호로 지정됐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